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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육과 탄압, '여·순'만이 아니었다-R

박광수 기자 입력 2018-10-16 07:30:00 수정 2018-10-16 07:30:00 조회수 0


◀ANC▶
여순사건 70주기를 맞아
여수MBC가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과 뉴스로
시청자 여러분과 공론의 장을 마련하고
소통하기 위한 기획보도 3주쨉니다.

여순사건은,명칭은'여수순천'을 지칭하고있지만
실제로는 전남북, 경남일대 매우 광범위한 지역에서 벌어졌던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 이었습니다.

박광수 기자입니다.
◀END▶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구례군 산동면.

여수에서 밀려난 반군의 거점이 되면서
주민들의 평화로웠던 일상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INT▶ 홍순례(당시 9세)
"빨갱이들이 마을에 왔다고 하니까 군인들이 불을 붙여 버렸어요. 우리 마을에다가 학교 운동장에 전부 덕석을 치고 거지처럼 살았어요."

밤이면 반란군의 수탈이,
낮이면 진압군의 보복이 반복됐고
마을은 그야말로 전쟁터가 돼버렸습니다.
◀INT▶ 조순남(당시 8세)
"우리 엄마는 총소리가 나니까 뒷마당에 숨기느라고, 엄마 엄마 죽어 얼른와 얼른와,
(그러니까 엄마가) 가만이 있어라 먹고 살아야지"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은 좌익이라는 낙인이었습니다.

친형의 행적이 의심을 받으면서
영문도 모른채 빨갱이로 몰렸던 이윤재 할아버지.

갖은 고문끝에 즉결 처분을 받을뻔 했던
70년전의 끔찍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INT▶ 이윤재(당시 19세)
"공산당이라고 죽인다고 하기에...(내가)나이 19살이 뭘 알겠느냐 공산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내가 뭘 아냐 아무것도 모른 사람을 생사람을 잡아다 죽일라고 하냐고..."

마을 주변으로 통행금지 조치를 내려
주민들의 굶주림을 유도하는 악랄한 탄압도
자행됐습니다.
◀INT▶ 주철희(역사 연구가)
"당시 신문에 어떤 기사가 나왔냐면요. 구례 산동면의 한 목사가 이승만 정부에 탄원서를 씁니다. 뭐라고 탄원서를 쓰냐. 먹고 살 것이 없습니다. 산동 주민들은 쥐를 잡아먹고 살고 있습니다. 국가가 왜 이렇게 해야 되는 겁니까."

심각성은 이런 사례가 구례 뿐만이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고흥, 광양, 보성은 물론 전북 남원,순창
경남의 남해하동거창까지
피해지역이 전국 37개 시군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INT▶ 김득중(국사편찬위 편사연구관)
"전국적인 파급력을 지닌 사건이거든요. 여수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한마디로 큰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여순사건의 진실규명,

여수와 순천지역의 해원을 넘어
한국의 현대사를 바로 세우는
의미 심장한 과제라는 관점과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MBC NEWS 박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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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pospks@ysm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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