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 기간 인파로 바글대는 백화점에 들어서자 정신이 멍해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면?
맞선을 보는 상대방이 입은 격자무늬 정장 때문에 눈앞이 심하게 어지럽다면?
제사음식 냄새를 조금만 맡아도 속이 메슥거린다면?
십중팔구 편두통 환자일 것이다.
자신이 편두통 환자인지 모르고 종합 진통제만 습관적으로 복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한두통학회가 최근 성인 남녀 150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두통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받고 약을 복용한 사람은 11.6%에 불과했다.
그러나 두통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진통제를 자주 먹으면 오히려 만성두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머리 전체가 지끈거리는 편두통도 있어
머리 전체가 아프면 두통이고, 한쪽만 콕콕 쑤셔야 편두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편두통은 머리 한쪽에서만 나타날 수도 있고, 관자놀이 양쪽이나 머리 전체가 지끈거리는 형태로 나타날 수도 있다. 가장 흔한 두통인 긴장성두통과 편두통을 일반인이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대체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거나 컴퓨터를 오래 사용한 뒤, 또는 매우 피곤할 때에 두통이 나타난다면 긴장성두통일 확률이 높다. 머리 주변이 꽉 조이는 느낌을 받을 때도 이 두통일 확률이 높다. 긴장성두통은 원인이 제거되면 해소된다. 그 때문에 시험이 끝나거나, 잠깐 업무를 중단하거나,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리면 증상이 사라진다.
반면 뚜렷한 이유가 없는데도 두통이 나타난다면 편두통일 공산이 크다. 어둡고 조용한 곳에 누워 있을 때 두통이 사라진다면 이 역시 편두통일 확률이 높다. 편두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빛이나 소리,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 있을 때 유달리 두통이 심하다면 십중팔구 편두통이다. 머리만 아픈 게 아니라 복통이나 메슥거림, 눈의 통증이 함께 나타난다면 이 또한 편두통에 가깝다. 편두통은 뇌가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나타난다. 따라서 사람에 따라 두통의 강도와 횟수가 다르다. 유전적인 요인도 있어 부모가 편두통이 있을 때 자식에게 편두통이 나타날 확률이 높다. 여성의 경우 호르몬의 분비량이 급격하게 변하는 생리 기간에 자주 나타난다.
연인이 사랑스럽더라도 초콜릿은 피해야 한다. 초콜릿은 편두통 환자에게 가장 안 좋은 식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편두통이 있다면 특히 먹을 것에 신경을 써야 한다. 대체로 적포도주, 치즈, 땅콩, 호두, 파인애플, 바나나 같은 것은 좋지 않다. 이런 음식에는 ‘티라민’이란 성분이 많은데, 이 성분이 뇌혈관을 수축시켰다 팽창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과정 때문에 뇌가 예민한 사람들은 편두통이 심해지는 것이다. 인스턴트식품이나 조미료를 많이 쓰는 일부 중국음식도 피해야 한다. 어떤 음식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가는 사람마다 편차가 있다. 따라서 특정 음식을 먹거나 냄새를 접했을 때 두통이 나타났다면 메모를 해 뒀다가 그 음식을 피하는 게 좋다. 식사를 불규칙하게 하면 공복시간이 길어져 혈당이 떨어진다. 아침 식사도 안 하고 출근하면 아직 덜 깨어난 뇌혈관은 여전히 수축돼 있는 상태다. 그러다 오후가 되면서 뇌혈관이 확장되면 두통이 생긴다. 따라서 잠을 잘 자고, 밥을 제때 챙겨 먹는 것도 편두통을 예방하는 방법이다.
진통제 자주 먹으면 만성화 부작용 위험
진통제를 자주 먹으면 편두통뿐 아니라 긴장성두통도 악화될 수 있다. 이 경우 10년쯤 뒤에는 만성두통으로 진행될 확률이 매우 높다. 약은 계속 먹지만 오히려 몸은 망치는 셈이다. 종합 진통제에는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다. 약을 자주 먹으면 약효가 조금만 떨어져도 몸이 약을 더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직장인이 아침에 커피를 한두 잔 마시지 않으면 두뇌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느끼는 것처럼 진통제도 중독성이 있는 것이다.
신경과 전문의들은 편두통 원인이 다양한 만큼 환자 스스로 병원에 가서 ‘병을 자랑하라’고 권한다. 언제부터 아팠는지, 어떤 경우에 특히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두통이 어느 정도 지속됐는지를 의사에게 털어놔야 치료할 수 있다는 것. 편두통은 아직까지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다. 그러나 뇌를 안정시키는 예방 약제를 3∼6개월간 먹으면 꽤 통증이 줄어든다. 치료효과가 좋은 사람의 경우에는 두통 횟수가 한 달에 1회 이하로 줄어들기도 한다.
(도움말=김병건 을지병원 신경과 교수, 김용재 이화여대 신경과 교수, 정재면 인제대 신경과 교수)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