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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더하우스 등록일 : 2009-07-16 15:58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떠올린 건 당연히 사이다였다. 뽀골뽀골 거품이 올라오는, 백두산 천지 맑은 물,.. 어쩌고 하는 그런 사이다. 거기에 청량한 하늘, 목가적인 들판 한가운데에 떡하니 자리잡은 빨간 사과. 책 소개나 리뷰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봤어도 이미 책은 보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두권 합해서 거의 천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이 책,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사이의 미국 메인주의 작은 마을 세인트 클라우드, 벌목 회사가 한창 신나게 나무를 베어내고 떠나 버려서 쇠락한 마을. 거기에 고아원을 운영하는 닥터 윌버 라치. 젊은 시절 한 모녀의 죽음 이후 결심한 바 있어 병원과 고아원을 같이 운영한다. 그냥 병원이 아니라 아기를 낳으러 오는 여자들을 받아 주는 병원, 그렇게 아이를 낳아 고아원에 남기게 하는 건 '주님의 일'. 낙태가 금지되었던 그 당시, 불법시술로 어이없는 목숨잃지 않도록 낙태를 원하는 여인에게 시술을 하는 건 '악마의 일'. 그렇게 아내도 자식도 없이 두가지 일 모두 다 묵묵히, 그러나 소명을 가지고 하는 인물.

세인트 클라우드에서 나서 네번이나 입양에 실패하고 결국엔 고아원에 속하게 된 호머 웰즈. 남아들에겐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여아들에겐 '제인 에어'를 읽어 주고, 대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도 닥터 리치의 조수로 분만과 낙태를 훌륭하게 시술할 수 있는 "쓸모있는 인물"로 크는 소년.

여기까지 읽다 보면 잠시 낙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과연 "원치도 않고 키울 수도 없는데 아기를 낳을 수밖에 없"는 여자들과 "아기를 낳아봐야 아무도 좋아해줄 사람이 없고, 아기를 세상에 내보내 가정을 찾아주고 싶은 생각도 없는 아주 강한 여자들", 둘다에게 뭐라 할 것인가. 주인공 호머 역시 그런 고민을 하면서 닥터 리치와는 다른 생각을 갖는다.

그러다 낙태를 위해 세인트 클라우드에 찾아온 사과 농장을 하는 부유한 집안의 아들 윌리와 그의 약혼녀 캔디. 그들을 따라 하츠 헤이븐으로 가면서 호머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 세인트 클라우드가 아닌 사과 농장에 속해서 캔디와 앤젤과 윌리와 가족을 이루고, 손끝에는 수술을 위한 에테르 냄새대신 사과 냄새가 밴다.

고아원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성장해서 결국엔 고아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이 천페이지 짜리 책은 어둡기만 한건 아니다. 뜻밖에 쿡쿡거리며 웃게 되는 대목도 있고, 나름 남녀간의 이야기도 들어 있고,.. 이래저래 정신없이 쭉 읽다가 보면 어느새 끝에 와있다. 그러다 "닥터 스톤도, 닥터 리치도 심장에 아무 결함이 없었으며, 그들이야말로 메인의 왕자요 뉴잉글랜드의 왕들이었다"라는 마지막 문장을 읽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찡한 것이다.

닥터 리치, 간호사 앤젤라와 에드너, 멜로니, 윌리, 캔디, 앤젤, 로즈로즈,.. 그리고 호머. 책속에 살아 숨쉬는 모든 인물들과 함께 하면서 책장을 덮고 나면 왜 제목이 The cider house rules일 수밖에 없는지, "이야기를 짓는 목수"라는 저자에게 진심으로 탄복하게 되는 그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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