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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막걸리 등록일 : 2009-07-12 19:56
"개도 먹는다는 개도막걸리 맛보았소?"
"몸과 맘이 심들 때는 이 막걸리 한 사발이 보약이제. 요즈음 사람들이야 하도 먹을 게 지천으로 넘쳐나니까 막걸리 요놈을 아주 상머슴 취급하지만 예전에는 막걸리 요놈을 배부르게 한번 먹고 싶어 안달을 했당게. 특히 오뉴월 요맘 때 막걸리 맛이 제일이제. 하긴, 그때는 보릿고개라 해서 어찌나 먹을 게 없었던지......"
전남 여수에서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선소로 들어가면 그 나들목 맞은편에 막걸리를 파는 허름한 집이 하나 있다. 선소 슈퍼. 이곳에 가면 여수, 순천 사람들이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이름 높은 개도막걸리를 맛볼 수 있다. 개도 막걸리는 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여수시 화정면 개도(蓋島)에서 전통 방식으로 만든 막걸리를 말한다.
개도막걸리를 파는 그 집은 아주 작고 허름한 구멍가게였다. 그 가게 안에 들어서면 사람들 서넛 앉아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비좁은 평상이 하나 놓여 있고, 가게 밖 선소로 들어가는 들머리에 작은 탁자가 두어 개 놓여 있다. 하지만 허름한 구멍가게와는 달리 말쑥한 손님들이 제법 많다. 간혹 연인끼리 막걸리를 마시는 모습도 눈에 띤다.
조선시대 때부터 만들었다는 개도막걸리 맛의 비밀은 천제산 물맛
"거 참! 막걸리를 어떻게 만들기에 이런 독특한 맛이 나죠?"
"물맛이제. 개도에 가면 천제산이 있는데 그 산에서 내려오는 물맛이 특히 좋아 막걸리 맛도 좋다 그라제."
"그동안 전국 곳곳에 있는 막걸리란 막걸리는 다 먹어봤는데 이곳 개도막걸리만큼 맛있는 막걸리는 처음이네요. 이러다가 개도막걸리에 완전 중독되것네."
"이 집 주인이 없어서 못 판다고 그라지 않소."
그날 우리는 가게 안에 앉아 개도막걸리를 시켰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50대 중반 남짓한 주인에게 막걸리를 시키자 2병 이하는 팔지 않는다 했다. 조 기자가 "아따! 3~4병 먹고 갈 테니까 싸게 싸게 주씨요이~" 하자 주인이 묵은지와 멸치볶음, 다시마무침, 열무김치, 풋고추와 된장을 밑반찬으로 내놓는다.
안주로 두부(2천5백원) 한 접시 시킨 뒤 개도막걸리 병을 들어 세차게 몇 번 흔들어 병을 비스듬이 기울여 뚜껑을 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탄산가스가 들어 있는 막걸리가 분수처럼 치솟아 올라 옷과 술상을 몽땅 버리기 일쑤다. 물론 어떤 이는 막걸리 병을 꾹꾹 몇 번 눌러 탄산가스를 약간 빼낸 뒤 뚜껑을 따는 사람도 있긴 있다.
두껑을 따서 잔에 막걸리처럼 허연 잔에 개도막걸리를 따르자 우유처럼 뽀오얀 막걸리가 거품을 뽀글뽀글 뿜어 올린다. 풋고추 하나 된장에 포옥 찍어 아삭아삭 씹어 먹은 뒤 시원한 개도막걸리를 입에 대자 사이다처럼 톡 쏘는 듯한 맛 속에 새콤달콤한 맛이 입안을 확 감돈다. 그대로 한잔 쭈욱 들이키자 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선소를 바라보며 처음 맛본 개도막걸리! 하지만 다른 막걸리 맛과 별 차이는 없는 듯했다. 근데, 참 신기한 것은 개도막걸리는 마시면 마실수록 새콤달콤 혀끝을 톡 쏘는 맛과 함께 깊은 감칠맛이 자꾸만 당긴다는 점이다. 사이다 맛도 아니면서 사이다처럼 톡 쏘며 혀끝을 맴도는 독특한 감칠맛이라니.
개도막걸리가 세상 시름 물고 썰물지고 있는 선소
"오늘 영 기운이 없어 보이요"
"며칠 연휴 때 고향 다녀오느라 개도막걸리를 통 못 먹어서 그런 것 같소"
"내 그럴 줄 알고 3~4병 사왔소"
"하, 그 개도막걸리가 사람 입맛을 확 바꿔놓아 버렸소. 다른 막걸리는 맛이 없어서 통 못 먹을 것 같으니, 이 일을 우짠다 말이요"
"이곳에서 그냥 눌러 살면 될 거 아니요"
하지만 그 다음날 아침 취기가 돌거나 머리가 아팠던 때는 한번도 없었다. 그런 어느날 하루는 조 기자가 개도막걸리가 떨어졌다며 여천에서 파는 막걸리를 사왔다. 하지만 여천 막걸리는 개도막걸리가 지닌 독특한 톡 쏘는 맛이 없었다. 그 뒤 여수나 순천 등지에서 나오는 막걸리도 골고루 맛보았는데 역시나 개도막걸리 맛에 비길 술은 아니었다.
선소 앞바다를 바라보며 마시는 개도막걸리 맛! 텁텁하지도 않고 뻑뻑하지도 않으면서 사이다처럼 술술 넘어가는 순하면서도 새콤달콤한 깊은 맛! 오뉴월 경제보릿고개로 몹시 힘겨운 이맘 때,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만들었다는 선소를 바라보며 살가운 벗들과 마주 보며 개도막걸리 한잔 마셔보라. 세상사 시름이 선소 앞바다에 몽땅 썰물지리라.
이종찬님 글에서 퍼왔다.
한번 먹어보러 가야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