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자 MBC FM ‘이소라의 음악도시’의 구성작가 이병률이 1994년부터 2005년 올 초까지 약 10년 동안 근 50개국, 200여 도시를 돌며 남긴 순간순간의 숨구멍 같은 기록. 모든 여행의 시작이 그러하듯 뚜렷한 목적 없이 계산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주저앉았다 내처 길 위에 머무는 동안 그는 서른의 목전인 스물아홉에서 마흔의 목전인 서른아홉이 되었다. 아찔한 그 시간…… 동안, 성숙의 이름을 달고 미성숙을 달래야 하는 청년의 목마름을 채워준 것은 다름 아닌 여행, 여행! 누군가 여행은 영원히 안 돌아오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지만 그에게 여행은 또다시 떠나기 위해 반드시 돌아와야만 하는 끊을 수 없는 제 생의 뫼비우스 같은 탯줄이었다. 그러니까 어떤 운명, 달리 말하자면 이 짓을 이리 할 수밖에 없는 나아가 숙명, 그에게 여행은 그런 것이었다.
책속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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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 공중에서 새 한 마리가 날아와 내 어깨에 내려앉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는 내 귀에다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됐어. 그녀가 침묵을 깨고, 이제 시작한 거야. 축하한다구.」 나는 그렇게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당신의 습관을 이해하고, 당신의 갈팡질팡하는 취향들을 뭐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당신이 먹고 난 핫도그 막대를 버려주겠다며 오래 들고 돌아다니다가 공사장 모래 위에 이렇게 쓰는 것. 「사랑해.」 --- 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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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은 끈을 느슨하게 매야 하리라. 말소리를 낮추어야 하리라. 바람보다 빨라서는 안 되리라. 눈을 감더라도 마음을 감아선 안 되리라. 전생에 혹은 그 전생에 살았던 땅의 냄새를 맡게 되더라도 그 냄새에 흔들려서는 안 되리라. 순간을 포착하되 거리를 두어야 하리라. 그래야 모든 것들은 매혹적이리라. 갖가지 열매들을 대접받고 심장은 사과의 양 볼처럼 두둑해지리라. 아무 것도 없을지 모르리라.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전부가 있을지도 모르리라. 내가 버렸던 전부와 내가 만나야 할 전부가 큰 숲으로 우거져 몇 평 땅을 내주고 쉬라 할지도 모르리라. 그 땅을 가져야 하리라. 그리고 조금 욕심을 내어 조금 더 달라고 말해야 하리라. 씨를 뿌려도 좋으리라. 내 것이 아닌 씨앗을 뿌려, 대접할 것들이 자라기를 기다려 식탁에 올려도 좋으리라. --- p.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