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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을 사간 날 등록일 : 2013-02-25 10:58

귤을 사간 날
저는 이제 결혼한 지 8년차입니다.
3년 전 쯤 이혼의 위기를 겪었지요.
주로 아내에게서
이혼하자는 얘기가 자꾸 나오더군요.

저도 회사 일과 집안일로
지쳐있었던 터라 맞받아쳤고,
결국 우리는 각 방을 쓰게 되었죠.
불신은 갈수록 커져만 갔죠.

아들도 이런 분위기를 알았는지
언제부터인가 말수가 줄고
시무룩한 성격으로 바뀌더군요.
매일이 싸움의 연속이었죠.

저는 집이 싫어서 가끔 외박도 했답니다.
나중에는 외박하고 들어가도
아내는 신경조차 쓰지 않더군요.

그러기를 몇 달,
하루는 퇴근길에 귤을 사서 집으로 들어갔어요.
주방 탁자에 귤을 올려놓고는
샤워하고 나와보니,
아내가 제가 사온 귤을 먹고 있더군요.
몇 개를 까먹더니 '귤이 참 맛있네.' 하면서
방으로 쏙 들어가더군요.
순간 제 머리를 쾅 치듯이 떠오른 기억.

아내는 결혼 전부터 귤을 아주 좋아했었는데..
결혼한 뒤 8년 동안
제 손으로 귤 한번 사가지고
들어간 일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연애할 때 길에서 귤 좌판에서
항상 천 원이든 이천 원이든 사서
하나씩 사이좋게 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한참동안 방에서 울었습니다.
뭔가 잃어버렸던 걸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아내가 주방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더군요.
사이가 안 좋아진 다음부터는
아침을 해준 적이 없었는데..
식탁에 앉아 첫술을 뜨는데,
목이 메여 밥이 넘어가지 않더군요.

아내가 이토록 작은 일에 감동을 받아
제게 돌아올 수 있다는 걸 몰랐던 저는
정말 바보 중에 바보였습니다.
냉정하게 아내를 대했던
못난 제 자신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 후, 우리 부부의 위기는
시간이 좀 걸렸지만 잘 해결되었답니다.
가끔은 싸우지만 이젠 걱정하지 않습니다.

- 백민호 *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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