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추천여행지
나무들을 엿보다, 장성·담양 숲 여행 등록일 : 2008-08-19 14:21
어쩌면 우리의 시야는 수평으로만 고정돼 있는지 모른다. 앞만 보고 달려야 하고, 경쟁자를 살피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뒤를 돌아보는 정도이다.
때로 땅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쉴 때도 있지만…. 단단한 뭔가로 목뼈를 고정시켜 놓은 듯 세상은 하루에 한 번 하늘을 보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고정된 ‘수평의 세계’ 위로 펼쳐지는 환상적인 풍경을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아름다움에 빠지면 쳐다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을.
우리의 시선 위로 펼쳐지는 세상 가운데 대표적인 예가 숲이다. 숲은 편안한 휴식과 달콤한 환각의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특히 전남 장성 축령산의 편백·삼나무숲, 담양의 대나무숲과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은 수평의 원칙을 거부한 채 완벽한 ‘수직의 세계’를 연출,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교훈까지 암시하는 듯하다.
■장성 축령산 편백·삼나무숲
영화 ‘태백산맥’ ‘내 마음의 풍금’ 등을 촬영한 북일면 금곡마을에서 임도를 따라 고개 부근에 이르면 하늘을 가리듯 거침없이 솟아오른 편백나무와 삼나무의 위용에 기가 질리고 만다. 어디 한 곳 구부러짐 없이 쭉쭉 뻗은 아름드리 나무들이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갖춘 채 이방인을 맞는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과 어우러진 풍경은 침엽수림으로 뒤덮인 북유럽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전해준다.
수십만 그루의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축령산은 국내 최초의 인공 조림지로 산림청이 ‘22세기 후손에게 물려줄 숲’으로 지정했을 만큼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숲은 한 인간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조성됐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크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치러진 남벌로 황폐화됐던 산은 한국 조림의 선구자인 춘원 임종국(1915~1987) 선생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모습은 없었을 것이다.
양잠 등으로 적지않은 재산을 모은 그는 1955년 인촌 김성수 소유의 야산에서 쭉쭉 뻗은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이후 본업도 포기한 채 모든 재산을 투자해 축령산 매입과 동시에 편백나무와 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68년에는 위기도 있었다. 전국을 뒤덮은 극심한 가뭄이 축령산에도 찾아들어 조림한 나무들이 전부 말라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물지개를 지고 수없이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며 나무에 물을 줬고, 그의 이같은 우직한 행동에 감동한 마을 주민까지 가세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가 87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림한 숲은 여의도만한 면적에 이른다.
그러나 숲을 일구기 위해 전 재산은 물론, 빚까지 져야 했던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산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리고 숲은 돈벌이를 위한 벌채로 상처를 입기 시작했고, 근본마저 흔들릴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2002년 산림청이 임종국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숲을 매입한 이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경영·관리 덕분에 예전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게 됐다.
편백나무와 삼나무는 피톤치드를 많이 발산시켜 삼림욕에 큰 효과를 준다.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은 약 6㎞. 삼림욕을 겸해 두 시간이면 넉넉한 거리다.
■담양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대나무골 테마공원
담양에 가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다. 1970년대 초반 담양읍 주변 도로에 가로수로 조성한 메타세콰이어가 이젠 30m 높이의 아름드리 숲으로 변해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한 때 도로 확장을 위해 베어질 위기에 있었으나 주민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우회도로를 만들면서 온전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2002년에는 산림청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됐고, 2006년에는 건설교통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포함된 가로수길 가운데 특히 읍에서 금성면으로 가는 약 5㎞ 구간이 아름답다. 이 구간은 차량 운행을 통제, 주민의 산책로로 이용되고 있다.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을 지나 금성산성 방향으로 가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 눈에 띌락말락 자그마한 이정표가 보인다. 담양군 금성면 봉서리 대나무골 테마공원(www.bamboopark.co.kr)으로 향하는 표식이다. 농로를 포장한 듯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약 2㎞ 들어가면 대나무 세상을 만난다.
9만 9000여㎡(약 3만평)에 이르는 야산에 두 손을 모아도 모자랄 정도로 굵게 자란 대나무가 빼곡하다. 30m 넘게 하늘을 찌를 듯 길게 자란 놈을 바라보자면 고개가 아플 지경이다. “쏴아~ 쏴아” 바람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내는 소리는 마치 깊은 산중 절간의 풍경소리마냥 편안하다.
대나무골 테마공원의 출발은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일보 사진부 기자로 근무하던 신복진(68) 씨가 이 일대에 대나무를 심기 시작했고, 1996년 정년 퇴임 후부터는 아예 이곳에 상주하면서 숲을 일궜다. 이곳은 휴대폰 CF 촬영지가 되면서 외부에 알려졌고, 영화·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촬영이 줄을 잇고 있다. 입장료 2000원(어린이 1000원). 061-383-92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