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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국립공원^^ 등록일 : 2006-11-05 14:50

부모님이 몇달전에 다녀오시더니 무척이나 좋았다고 하십니다.

저희 엄마께서는 오늘 모임에서 또가시구요^^

갔던곳을 또 간다는것은 말 안해도 얼마나 좋은지 아시겠죠?ㅋ

추천합니다. 저도 꼭 가보려구요

주왕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개를 들어 보이는 것이 바로 이 기암으로 산에 들어서는 사람을 압도하는 위엄을 갖추고 있다.

주왕이 신라 마장군과 일전을 벌일때 이바위에 이엉을 두르고 쌀 뜨물을 흘러 보내 적을 현옥시켰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웅장한 자태는 주왕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청송군 부동면 이전리에서 약 2km 거리에 위치한 주산지는1720년 8월 조선조 숙종 46년에 착공하여 그 이듬해 10월 경종원년에 준공하였으며 6천여평 남짓한 면적 으로 60여 가구가 이 물을 이용, 농사를 짓고 있다.

길이 100m, 넓이 50m, 수심8m의 아담한 이 호수가 주왕산 연봉에서 뻗친 울창한 수림으로 둘러싸여 마치 별천지에 온 것 같이 한적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라 잠시나마 속세를 잊고 휴식을 취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또 이 호수는 준공 이후 현재까지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물이말라 하상이 드러난 적이 한번도 없으며, 호수 속에는 약 150여년이나 묵은 왕버들 3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어 그 풍치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다.

또 이 호수 제방위에는 이공(李公),성공(成公)의 송덕비가 있으며 비문에는 일장저수(壹障貯水),
류혜만인(流惠萬人), 불망천추(不忘千秋), 유일편갈(惟一片碣)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경사 90도의 가파지른 절벽의 모습을 한 학소대(鶴巢臺)는 급수대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있다. 해방전 이 정상지점에 청학 백학 한쌍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일인(日人)포수가 백합을 쏘아 잡아 버린후, 날마다 슬피 울면서 부근을 배 회하던 청학마저 자취를 감추어 버리고 지금은 옛 보금자리만 남아있다.

또한 학소대 중간쯤에 수백년 묵은 풍채가 좋은 회양목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것이 탐이나서 톱을 허리에 차고 암벽을 기르다가 떨어져서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있다.

이처럼 학소대는 애닯은 사연이 얽혀 있으며 주왕산의 경관을 한결 돋보이게 하는 기암이기도 하다. 오른쪽의
바위는 마치 병풍을 세운듯하여 병풍바위라 부른다.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같아서 시루봉이라 불리우는데
밑바닥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시루봉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옛날 어느 겨울철 도사가 이바위 위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으며 멀리서 보면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보인다.

급수대는 망월대에서 50m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을 38대왕으로 중대 및
각부대신들이 추대하였는데 즉위 직전에 돌연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킴으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하여 대궐을 건립한 곳이다.


대궐터는 급수대 정상이라고 전해지며 지금도 유적이 남아있다.
김주원이 대궐을 건립하여 은둔생활을 할 당시 산상에는 샘이
없었으므로 계곡의 물을 퍼올려서 식수로 하였으므로 급수대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급수대앞 오솔길을 지나노라면 계곡쪽으로 기울어진 깍아지른
절벽이 금새 무너질듯하여 식은 땀조차 흐르게 된다.

기암에서 내부로 깊숙히 이어지는 길옆 냇가에 큰 바위가 하나 있는데
이름하여 아들바위란 것이다. 왼팔로 던진돌 이 그 바위에 얹히게 되면
생남을 한다는 전설이 있어 호기심에서 누구나 한번씩 왼손으로 돌을
쥐고서는 바위 반 대편에 돌아서서 양다리 사이로 던지고 지나간다.

그래서 그 바위에는 언제나 넘치도록 자갈이 쌓여져 있다.

봄이면 수달래가 아들바위를 스쳐가는 여울물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주왕암 뒤안길 오른편에 협곡이 있다.
파란 하늘이 아득히 내다 보이는 좁은 바위틈 길을 따라 30m쯤 들어가면
거대한 암벽에 부딪치게 된다.

약 50여m 되는 절벽 하단에 세로 5m, 가로 2m 정도의 동굴이 있는데
주왕이 마장군에게 쫓겨서 숨어 살았던 동굴 이다. 깊이 2m 정도의
굴속 구석진 곳에는 탱화(부처님의 불상 그림)가 안치되어있고, 굴에
올라가는 길은 너무나 가파른 암벽이어서 쇠다리를 잡아야 올라갈 수
있는데, 절벽 정상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물줄기의 포말로 인하여 오색
찬란한 무지개가 꿈처럼 서린다.

주왕이 천연의 요새인 이 곳에서 대망의 꿈을 저 버리지 않고 재기를
다짐하다가 마장군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관음봉(觀音峰)은 주왕암 뒷편에 있는 묘한 암봉으로, 그 생김새가 관음보살을 닮았다고 하여 관음봉이라
부른다.
소용돌이치듯 백팔번뇌가 쌓이고 구만리 장천을 찌를듯이 우뚝 솟은 바위가 대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서 아름답고
숭고하기가 비할데 없다.

이곳은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에 이르기까지 삼라만상의 역사가 있고 진리가 숨쉬고 있는 자랑스러운 옛
터전이다.

봉우리의 형체가 흡사 연꽃 같다고 하여 연화봉(蓮花峰)
이라 부르며, 이곳에서도 대전사의 목탁소리가 들려온다.

삼라만상이 고이 잠든 밤, 극락세계의 상징인 연꽃속에
묻혀 사바세상의 번뇌를 잠시나마 잊고 싶거든 연화봉
정상에 올라보라. 몸과 마음이 절로 청정해짐을 느낄수
있다.

자하성 뒷편으로 해서 개울가를 거슬러 올라가면
잡목으로 둘러싸인 연화굴(蓮花窟)에 이른다. 굴이라고
해서 그리 깊지는 않지만 너비3m, 높이5m, 깊이2m의
이 동굴속에서 주왕의 군사들이 훈련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주왕의 딸 백련공주가 이곳에서 성불했다는
이야기도 해진다.
뿐만 아니라 연화굴을 통과하는
시원스럽고 맑은 계곡의 바람은 현대문물에 찌든
현대인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이곳에서 자하성과 무장굴 쪽을 바라보며 그 역사를

뒤돌아보면 그렇게도 허망하게 멸망해버린 자칭 천자 주왕의 원혼이 곳곳마다 서려 있는 것 같다.

학소대를 조금 지나면 제1폭포(일명: 선녀폭포) 입구가
보인다.

옛날에는 이 폭포에 다다르자면 쇠사슬을 붙잡고 겨우
오르내렸는데 일제강점기 무렵 내원에다
제탄전습소(製炭傳 習所)를 설치하기 위하여 차도를
개설하느라고 그토록 아늑하고 신비하기 그지없었던
자연의 신비경을 훼손하여 버렸다.


폭포 주위는 암벽으로 둘러 싸여져서 바람한점 없이
고요하며, 다만 그 정적을 깨뜨리는 것은 영원히 끊이지
않을 폭포소리뿐이다.

그 물보라 속에는 항시 오색무지개가 어리고 있어 당장 이라도 선녀가 하강할 듯 절경을 이룬다. 소(沼)는 70평
남짓하게 이루어져서 물고기떼가 놀고 있으며 옛 전설에 의하면 소 깊이가 명주꾸리 하나를 다 풀 정도로
깊었다고 한다.


암벽 틈바구니에는 기화요초가 보석같이 아름답게 피어 있으며, 암벽사이로 트인 구만리 장천엔 구름이 뭐 그리
바쁜지 쏜살같이 지나간다.
폭포 바로 위에는 선녀탕과 구룡소가 있으며,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하고 신선대로 간다고 한다.

산 아랫마을 상의리에 가뭄이 심할 때면 이곳에 와서 기우제를 지내면 3일 이내에 비가 왔다고 한다.

제1폭포에서 2km 거리에 있다.
두줄기로 이루어진 2단폭포인데, 한줄기는 호박처럼 파인 곳에 일단
쉬었다가 다시 떨어진다.

유명한 조각가의 창작품같이 오묘한 미를 지녔다.

제1폭포에서 3km정도 거리에 제3폭포가 있다.
이 폭포도 2단 작용으로 그 규모가 주왕산 폭포 중에서 제일 대범하다.
폭포수는 계곡을 따라 제2폭포, 제1폭포를 거쳐 주왕산 골짜기를
누비는데, 사시로 끊임없는 나그네 길을 다람쥐와 도 이야기하고
백련낭자가 꿈을 부르던 연화굴을 스치고 수달래(水丹花)도 곱게
가꾸면서 주방천을 흐른다.

또한 이곳은 심산유곡이어서 노송에는 항상 백로가 놀고 간다. 이
폭포에서 왼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화전민이 살았던 내원마을이 있는데,
내원산에서는 산삼이 있고 희귀한 약초가 자생하여 화전민들이 채취하여
시장에 판매하기도 했 다. 지금도 4~5가구가 약초등을 캐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가고 있다. 또한 희귀목이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청송읍 월외리에 위치하고 있어 월외폭포라고도 부른다.
높이 11m의 남성적인 폭포로 항상 물보라가 안개처럼 주위를 감싸고
있어 신선의 세계에 온 듯하다.

부동면 이전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경관이 외주왕 못지 않게
수려하다.

경관도 뛰어나지만 조용한 곳에서 더위를 피하려는 사람들에게
더할나위 없는 곳이다.

꽃 빛깔은 진달래와 비슷하나 약간 진한 편이며 특이한 것은 꽃잎
하나에 반드시 20여개의 검붉은 반점이 있다.
옛부터 늦은 봄에서 초여름 사이 주왕산 안 주방천에서는 아름다운
빛깔의 수달래가 꽃을 피우는 것을 놓고 이곳 주민들은 주왕산으로
도망 온 주왕이 숨을 거두면서 흘린 피로 꽃이 생겨났다는 전설을
믿고 있다.

주왕이 패전한지 이미 천여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 당시 주왕이 쌓았다는 30여리의 자하성(紫霞城) 일부가
그 때를 입증하듯 이끼낀 돌더미로 남아 칡 넝쿨 등이 얼크러진 덤불속에 묻혀있다.

자하성은 대전사에서 동편으로 약1km지점에 있으며 주왕암 입구에 나한봉(羅漢峰)을 거쳐 가로막은 돌담이다.
이 성은 주왕이 신라군사를 막기 위해 쌓은 30여리의 성이다.

주왕굴을 중심으로 사방을 방어할 수 있는 요새지였으니 그 성에는 돌문과 사창(司倉)등이 있었으며 곳곳에
부서진 성지의 잔해가 지금도 남아 있어 관광객들의 마음을 숙연케 한다.

칡넝쿨을 헤치고 자하성 옛 터전을 오르면 한 여름의 무더위도 씻은 듯이 가셔지고 상쾌한 바람이 솔솔 불러
전신 이 허공에 둥실 떠오르는 기분이 된다.

성숙하고도 아름다운 수목에서 내뽐는 향기와 이름모를 산새소리에 마음 젖어 있노라면 절로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주왕암 약200m 못미쳐 오른편 산록에 있는데, 그것이 바로
무장굴(武藏窟)이다.

이 굴은 주왕의 군사들이 무기를 은닉했던 곳이었다고 전해 오는데,
굴속으로 6m쯤 들어가면 암석이 가로막고 있고 그 구멍이 어린애도
빠져 들어갈 수 없이 적어서 더이상 안으로 전진할 수가 없다. 더욱이
성냥불을 커면 금새 꺼져 버릴 정도로 산소가 적어서 호흡도 곤란해진다.


가을철 무장굴 앞에서 주왕암쯤 산경을 바라보면 칭칭이 어우러진
단풍이 일품이다. 무장굴 뒷쪽에 솟아있는
봉우리로, 나한님들이 모여있는 형상 같다하여 나한봉(羅漢峰)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선사의 높은 뜻이 깃들여진 준엄한 나한봉을
바라보노라면 천년의 사적이 궁금해 진다.

무장굴 뒷쪽에 솟아있는 봉우리로, 나한님들이 모여있는 형상 같다하여 나한봉(羅漢峰)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선사의 높은 뜻이 깃들여진 준엄한 나한봉을 바라보노라면 천년의 사적이 궁금해진다.

주왕암 뒷편 칡넝쿨이 휘어 잡고 가파른 산을 오르면 정상에 잔솔밭이 평화스럽게 모여 있는데, 이 곳이
무열왕 6세손 김주원(강릉김씨의 시조)이 집을 짓고 공부를 했던 터전이라고 한다.

산정은 약50평 남짓한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아직도 이끼낀 기왓장이 사방에 흩어져 있어 정말로 강릉김씨
시조가 이곳에 살았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훈풍을 마음껏 마시면서 운무에 쌓인 산경을 바라보면 향로봉,
촛대봉, 석가봉, 미륵봉, 지장봉 등 그외에도 만악천봉(萬岳千峰)이 쌓여져 있어 금강산 1만2천봉을 연상케하는
소금강(小金剛)의 면 모를 갖추고 있다.

제1폭포 입구에 놓인 다리를 건너면 외양이 늠름하고 위엄있는 암석이 우뚝솟아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선대(神仙 臺)이다.

이곳의 경관은 매우 아름다우며, 신선대위에는 선녀들이 놀았다는 보금자리가 있다. 청명한 달밤이면 선녀들이
내려와 인접한 제1폭포 위에 있는 선녀탕에서 목욕을 하고 신선대위에서 놀다 갔다고 한다.

댓글(1)
  • 2006-11-05 14:55

    주왕산 국립공원 홈페이지 자료를 첨부합니
    주왕산 국립공원 홈페이지 자료를 첨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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