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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순교성지 등록일 : 2007-12-14 17:30

나주순교성지


나주羅州. 고려시대때는 전라도의 맹주였다. 나주목이 전라도를 통치했다. 오죽하면 전라도라는 명칭도 전주의 全과 나주의 羅를 합쳐 만든 합성어다. 왜놈이 들어오면서 광주는 상업도시로 뜨고 나주는 나주배나 파는 가난의 길로 들어선다. 면적은 서울과 같지만 인구는 달랑 10만이다. 재정자립도 15%. 사방이 온통 나주평야다. 22세기때 보자. 1866년 병인박해다. 조금 맛이 간 흥선 대원군은 애꿎은 천주교도들의 참형에 나선다. 전국적으로 3명의 선교사를 포함해 8천명이 이때 지구 떠난다. 절두산, 황새바위가 그래 뜬다.

척박한 땅 나주도 자유로울수 없었다. 나주 목사의 동헌 구내에 있는 무학당이 감옥이며 사형장이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3명, 충청도 4명, 경상도 3명, 전라도 4명, 황해도 2명, 강원도 1명, 함경도 1명, 평안도 2명 등 모두 20명의 牧使를 두었다. 지금의 시장쯤 되는 벼슬이다. 이 목사의 집무실이 東軒이다. 나는 이 목사 나올 때마다 개신교의 성직자인 牧師와 항상 헷갈린다. 양떼를 치는 스승인 목사와 헷갈리지 마시길

武學堂. 당시 군인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지금은 나주초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1895년 조선교구 8대 교구장 뮈텔주교는 致命日記를 간행한다. 대원군이 때려죽인 877명의 명단이 수록된 책이다. 치명일기에 의하면 나주 순교자 1호 강영원선생은 백지사형 당한다. 물에 적신 얇은 창호지를 얼굴에 발라 죽인다. 음. 진짜 못된 놈들 많다. 순교자 2호 유치성 선생은 돌에 맞아 죽는다. 순교자 3호 유문보 선생은 굶어죽는다.

1933년 나주에 임시공소가 설립된다. 1935년 나주초등학교 인근에 3천평 구입해 나주본당 설립한다. 1956년 까리따스수녀회도 입주한다. 까리따스(Caritas Sisters of Miyazaki).1937년 일본 미야자키에 안토니오 가볼리신부가 설립한 수녀회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를 사랑으로 돌보는게 직업이다.

무학당 초석 10개가 나주초등학교 한편에서 나뒹군다. 2000년 광주교구에 부임한 김희중 주교는 성지전문 건축가 김원을 호출한다. 몇 년전 광주가톨릭대학교의 클라이언트였다. 어이 김소장. 예. 아트 하나 만들어주지. 나주 가난한거 알지. 예. 노개런티네. 예. 개런티가 없어야 아트가 나온다며. 아, 그런가요.

대로변에 무학당 초석 8개 놓고 철골구조 올린다. 돈이 없다. 가장 싼게 철골이니. 가로 세로 4.2미터, 높이 3.3미터의 프레임이 세워진다. 대문 4.5미터 띄우고 하나 더 세운다. 트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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