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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갯벌 그리고 배... 바쁜 삶을 비웃다(장흥) 등록일 : 2008-07-03 09:01


누구나 빠듯한 일상을 접어둔 채 잠시나마 한적한 곳에서 느긋한 여유를 즐겼으면 하는 꿈을 꾼다. 감동을 불러 일으킬 만한 멋진 풍경이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없겠지만 조용한 분위기만으로도 감지덕지다. 전남에서도 깊숙히 숨어있는 장흥이 작은 꿈이나마 이룰 수 있는 곳이다.

장흥은 눈에 확 띄는 볼거리나 추억을 남길 만한 즐길거리도 많은 곳은 아니다. 딱히 여행의 주제를 잡기가 어렵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같은 소박함이 오히려 장점이 되고 있다. 가지산 자락 유치면이 ‘느림의 미학’을 상징하는 슬로시티로 지정됐지만 어찌 보면 이 고장 전체가 슬로시티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시인이자 소설가인 한승원의 고향인 장흥은 한적한 바다가 있어 멀지만 한번쯤 가볼 만한 고장이다.


장흥읍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가다보면 수문해수욕장 조금 못미친 안양면 율산마을 바닷가에 이른다. 율산마을은 장흥 남쪽 끝자락 회진면에서 나고 자란 한승원이 옮겨와 집필활동을 하면서 외부에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한승원은 소설 ‘키조개’에서 이 바다를 연꽃바다라 칭하며, 만물을 잉태하고 출산하는 곡신으로 묘사했다. 곡신은 장흥의 상징 천관산에 산다는 천관보살의 다른 표현이다. 즉 갯벌에서 나는 키조개·바지락 등의 해산물이 마을 사람들의 먹거리요, 살림살이의 밑천이니 이 풍요의 바다가 천관보살의 자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여닫이바다로 불리기도 하는데, 갯벌을 감싸며 약 600m의 모래사장이 펼쳐지는 작은 해수욕장이 주변에 심어진 1500여 그루의 종려나무와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모래사장 바로 옆 종려나무 숲길에는 ‘시가 있는 여닫이 바닷가 산책로’가 조성돼 발길을 붙잡는다. 산책로에는 한승원의 시를 돌에 새긴 시비가 약 20m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데, 마을 앞 바다를 주제로 쓴 작품이 대부분이다.

‘사랑하는 그대여 보았습니까. 안개 낀 봄밤에 별들이 여닫이 바다하고 혼례를 치르는 것. 보았습니까. 한 여름 보름달이 마녀로 둔갑한 바다와 밤새도록 사랑하고 아침에 서쪽으로 가며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는 것. 보았습니까. 늦가을 어느 저녁에 여닫이바다가 지는 해를 보내기 싫어 소주 한 병에 취하여 피처럼 불타버리던 것. 보았습니까. 달도 별도 없는 겨울밤 눈보라 속에서 여닫이 바다가 혼자 외로워 울부짖으며 몸부림 치는 것. 그대 알아채셨습니까. 여닫이바다의 몸짓이 사실은 제 마음을 늘 그렇게 표현해주고 있다는 것.’(한승원 시 ‘여닫이바다의 혼례’)

이처럼 한승원은 바다와 갯벌을 무대로 사는 마을 사람들의 희망, 뜨고 지는 해와 달, 한없이 밀려드는 파도 등을 형상화해 여닫이바다에 대한 사랑을 노래했다. 싱그러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 수 한 수 시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여닫이바다에 대한 매력에 흠뻑 빠져드는 느낌이다.


장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다른 바다는 정남진이다. 강원 강릉에 정동진이 있다면 장흥에는 정남진이 있다. 지도를 펴놓고 서울 광화문에서 남쪽으로 선을 그으면 장흥군 관산읍 신동리 시금마을에서 육지와 바다가 만난다. 간척을 위해 둑을 쌓아 만든 삼산방조제 북쪽 끝지점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이정표가 조용히 서 있다. 서울에서 남쪽 끝이라는 뜻인 ‘정남진’을 알리는 표식이다.

그런데 이곳에는 1990년대 중반 드라마 ‘모래시계’를 통해 유명세를 탄 후 전국적인 관광지가 되버린 강릉 정동진과 같은 북적거림은 없다. 오히려 바닷가에서 끝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바람만이 나그네를 맞을 뿐 을씨년스러울 만치 조용하기만 하다. 도를 넘어선 상업화로 몸살을 앓는 정동진과 반대로 단순히 상징적 의미만 강조하는 정남진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토요시장도 장흥이 내세우는 명물이다. 예전 5일장 대신 3년 전부터 매주 토요일에 장을 열고 있는데, 대개 하루 전인 금요일부터 장이 선다. 특히 한우먹거리촌이 유명세를 타고 있다. 장흥군 한우협회에서만 500여 가구가 약 3만두를 사육하는 등 모두 4만 2000여 두가 사육되고 있다. 토요시장과 달리 한우먹거리촌은 매일 영업한다.

이곳에서는 비거세우는 17~20개월, 거세우는 27~30개월 된 순수 한우만을 판매한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일부 업소에서는 ‘순수 한우가 아닐 경우 1억원을 보상한다’는 문구도 눈에 띈다.


영월의 다하누촌, 정읍 한우마을 등 이름난 한우촌과 마찬가지로 손님이 고기를 구입, 바로 옆에 마련된 식당으로 이동해 구워먹을 수 있다. 식당에서는 쇠고기 100g당 1000원을 내면 밑반찬과 불판 등이 제공된다.

현재 장흥군 한우협회, 축협 등이 운영하는 정육점은 6곳으로 가격은 모두 같다. 소값 시세에 따라 소폭의 가격 등락이 있다. 지금은 고급육 기준으로 등심·안심·낙엽살·치마살·차돌백이 등 구이용이 1만 9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꽃등심(2만 3000원)·살치·갈비살(2만 5000원)·안창살(3만원)·토시살(3만 5000원·이상 600g 기준) 등 특수부위도 인기다.

한우요리를 맛본 시간이 저녁이라면 바로 옆 탐진강 수변공원을 산책하며 느긋함을 즐기면 좋다. 은은한 가로등 조명과 어우러진 수변공원에는 밤이면 주민들이 산책을 겸한 놀이마당으로 이용하는데, 슬로시티의 분위기가 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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