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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등록일 : 2008-05-2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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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삶의 사막에 떨어지는 눈물처럼 우리 내면을 따스하게 적셔주는 신경림 시인의 6년 만의 신작시집. 길떠남을 통해 삶과 죽음을 애잔하고 감동적으로 형상화하면서, 자연스러운 어법과 비유로 독자를 시 속으로 빨려들게 하는 놀라운 힘이 가득하다. 읽으면 읽을수록 52년 시력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이 시집은 시적 사유가 얼마나 깊어지고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갈수록 메말라가는 시대에 낙타를 타고 떠나는 시인의 목소리는 독자들의 가슴 속에서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낙타

낙타를 타고 가리라, 저승길은
별과 달과 해와
모래밖에 본 일이 없는 낙타를 타고.
세상사 물으면 짐짓, 아무것도 못 본 체
손 저어 대답하면서,
슬픔도 아픔도 까맣게 잊었다는 듯.
누군가 있어 다시 세상에 나가란다면
낙타가 되어 가겠다 대답하리라.
별과 달과 해와
모래만 보고 살다가,
돌아올 때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 하나 등에 업고 오겠노라고.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았는지도 모르는
가장 가엾은 사람 하나 골라
길동무 되어서.

--- p.10
시 작업이야말로 세계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일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빨리 변하고 쾌속으로 질주하는 속에서 시는 어쩔 수 없이 느린 걸음으로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시는 언젠가는 버려질 방언 같은 것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빠른 흐름 속에서, 또 세계의 말이 온통 하나로 통일되어가는 세계화 속에서 느린 걸음, 방언은 비단 무의미한 것은 아닐 터이다. 그 느림과 방언에서 오늘의 우리 삶이 안고 있는 갈등과 고통을 덜어줄 빛을 찾을 수도 있고, 병과 죽음을 몰아낼 생명수를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근래 두리번거리면서 느릿느릿 걸어간다는 생각으로 시를 쓴다,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방언을 중얼거리면서.
--- p.127 「나는 왜 시를 쓰는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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