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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깊은 나무의 생각 등록일 : 2008-03-25 09:01

[책소개]

작고 가느다란 것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한창기의 생각

한창기는 지킴과 변화에 대해 문화적이고 인문적인 성찰을 한 문화인이었다. 그는 전통에 깊이 뿌리를 내리면서도 새로움의 가지를 뻗는 일에 열정적으로 매진하였고, 오래되어 아름다운 것들을 보존하고 계승해 왔다. 또한 가장 중요한 배움은 '생각하기'의 배움이라고 강조하였다.

이렇게 일상의 작고 가느다란 것들의 아름다움을 깊고 넓은 글쓰기로 풀어낸 한창기의 생각을 세 권의 책에 담았다. 한창기가 창간하고 발행인과 편집인을 겸하였던「배움나무」「뿌리깊은나무」「샘이깊은물」에 썼던 글들과, 여러 신문 및 잡지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 재구성한 것이다.

<뿌리깊은나무의 생각>은 '언어'에 대한 한창기의 생각을 담은 글들이 중심이 된 책이다. 한글, 토박이말, 언어의 올바른 표현, 잘못된 쓰임, 쓰임의 변화, 우리의 언어생활 비판, 그리고 교육과 출판과 책읽기에 대한 사유를 전해준다. 서양 문화의 홍수 속에서 우리말과 글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를 짚어보면서, 안정을 지키면서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저력이 문화에서 비롯됨을 이야기한다.

[저자소개]

한창기 - 천구백삼십육년 구월 이십팔일부터 천구백구십칠년 이월 삼일까지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광주 고등학교를 거쳐 서울 대학교 법과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자신의 진로가 법조계가 아님을 깨닫고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미 팔군 영내에서 미국인들에게 귀국용 비행기표와 영어 성경책을 팔았다. 그리고 시카고의 엔사이클로피디어브리태니커 사에서 한국 땅에 《브리태니커 백과 사전》을 보급했으며, 천구백육십팔년부터 천구백팔십오년까지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에 몸담아 그 첫 몇 년 동안을 빼고는 줄곧 대표이사로 일했고, 천구백칠십육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출판사 뿌리깊은나무 주인으로, 천구백칠십육년부터 천구백팔십년까지 월간 《뿌리깊은나무》의 발행-편집인으로, 또 천구백팔십사년부터 타계할 때까지 월간 《샘이깊은물》의 발행-편집인으로 일했다. 그는 두 월간 잡지를 통해 언론과 문화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을뿐더러 민속, 미술, 예악, 언어, 건축, 복식 할 것 없이 역사와 오늘을 잇는 분야에서 한반도 전통 문화 가치의 탐색에 몰두했다.

그의 업적은 관념에 그치지 않고 실천으로 구현되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를테면 널리 인정하듯이 뜨거운 전통 음악 사랑으로 이 나라에서 해방 후로 천구백칠십년대까지 낡은 가치의 예술로 여겨 부끄러워해 목숨이 위태로웠던 판소리를 다시 한반도 남반부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고 즐기는 음악으로 되살려 냈다. 똑같은 곡절로 낡은 생활의 상징으로 여겨 내다 버리던 놋그릇, 백자 그릇을 오늘의 생활에 어렵사리 되살린 것도 그였다.

그런가 하면 세계와 환경과 인류의 걱정거리에 일찍이 눈을 뜬 스승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삶의 큰 몫을 빼어난 전통 가치의 세계화와 탁월한 세계 가치의 한국화에 바쳤고, 남다른 심미안과 사물을 꿰뚫는 통찰력으로 문화 비평과 문명 비평을 글로, 입으로 가멸게 남겼다.

그는 또 한국어를 통찰한 언어학자였다. 《뿌리깊은나무》와 《샘이깊은물》이 이 나라 새 세대가 사용할 언어의 흐름을 새 방향으로 바꾸었다고 다들 인정하는 것은, 그가 타고난 언어의 통찰력으로 한국어의 가장 중요한 유산이라 할 그 짜임새를 올바로 응용하고 발견하고 복원하여, 논리와 이치에 알맞은 글을 한반도 주민들에게 제시하고자 힘썼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를 멋쟁이로 기억하고 한국어와 한국의 문화 예술을 남달리 깊이 알고 사랑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천구백삼십육년에 태어난 그는 천구백구십칠년에 예순한 살로 세상을 떠났다. 좀 일찍 떠났다.

[책속으로]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왜 그렇게 ‘인간적’이라는 말의 잘못 쓰임으로 더러워져 있는지의 이유를 따지고자 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적’이라는 말의 잘못 쓰임이 얼마나 우리들의 도덕과 사회를 썩이고 있는가를 속속들이 파헤쳐 놓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회와 정신이 앞으로 어떻게 발전되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예전의 참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고 싶을 뿐이다.
맡은 일에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주어진 일을 수행하려는 사람은 ‘인간적’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인간적’의 뜻을 바꾸어 버린 사람들은 대개 책임감의 무거움과 깨끗한 마음의 중요함을 모르고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적어도 알긴 알되 수행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이 땀 흘리고 있을 때에 편안히 있으면서 ‘인간적’으로 해결하려는 그들 나름의 기쁨에 도취되어 있다. 엄격한 이성으로 해결해야 할 일을 그들은 해이한 감정으로 해결하려 한다. 본디 갖고 있는 뜻이 아닌, 느닷없는 감정의 행사는 차례차례 쌓아 올린 질서를 무너뜨려 버린다. …… 아래에서부터 위까지의 모든 계층의 자리는 모두 그 사나운 칼의 부림을 받아서,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하던 “인간적으로 합시다”도 이제는 그 말을 쓰지 않음이 더 어색한 것같이 되어 버렸다. ‘인간적’은 부정과 부패의 원흉이며, 모든 사이비의 모태이다. 그리고 참된 인간성을 거짓으로 가득 찬 인간성과 혼동시키는 특공대 역할을 한다.
―《뿌리깊은나무의 생각》 18~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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