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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현충원 못 묻힌 남편..."영문이라도 알았으면"

조희원 기자 입력 2021-02-05 07:40:04 수정 2021-02-05 07:40:04 조회수 1

◀ANC▶
여순사건 당시 여수와 순천 지역은 많은 사람이 숨졌지만 그 수가 얼마인지 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순천 지역 경찰들의 피해가 컸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순직 실태는 아직도 집계되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기획 증인, 오늘은 순천 경찰관의 아내였던 이옥순 씨를 만나 그 사연을 들어봅니다. 조희원 기자입니다.
◀VCR▶
◀INT▶
"무서운 거 말도 못 했지. 총소리가 천지에서 나고, 천지에서 악을 쓰고, 천지에서 난리가 나고. 그런 거 내가 귀로 듣고 다 했지. 천지에 사람이 깔렸어, 죽은 사람이."

순천시 행동에서 태어난 이옥순 씨.

여순사건 당시 14살 소녀였던 이 씨는
뼈에 사무치도록 무서웠던 나날들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INT▶
"밖에를 못 나갔지. 마을 사람들도 많이 죽고, 외지 사람들도 많이 죽고. 범벅이 되어버렸으니까. 동네가 말도 못 하게 쓸어버렸다고 그랬어."

특히, 상사면 면장인 사촌 오빠를 찾아왔던
정체 모를 사내들에게 붙잡혀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진다고 합니다.

◀INT▶
"그것들이 반란군인지 뭔지 모르겠어. 아직도 몰라, 나는. 어리니까. 우리 동생하고 나하고 둘이 있는데 오빠한테 연락한다고. 연락병이라고 죽이려고 달려든 거야. 까딱하면 죽었겠지. 그런데 와서 보니까 그럴만한 애도 아니고 그러니까 가버리더라고. 두 사람이 찾아왔더라고."

여순사건이 끝난 지 7년이 되던 해,
이 씨는 경찰이었던 남경석 씨를 만나
결혼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부에게 여순사건은
암묵적인 금기어와 같았습니다.

목에 생긴 흉터가 궁금해 물어보자
그제야 겨우 몇 마디를 들을 수 있었을 뿐,

남 씨는 당시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아내에게조차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INT▶
"여기에 흉이 있어. 여기에. 파편이 날아와서 다쳤다고 그래. 파편이. 영감은 생각하면 징그럽다고, 징그럽다고. 나한테 자세한 말도 안 해준다니까. 단지 그렇게만 들었지, 내가."

이 씨의 남편은 몇 해 전
공동묘지에 묻혔습니다.

평생 경찰로 재직했던 남편이
왜 현충원에 묻히지 못했는지,

◀INT▶
"공동묘지에 있어, 지금. 그러니까 내가 저 영감, 불쌍한 영감이. 고생 꽤나 한 양반이. 세상에 이리로(현충원) 가게 되어있거든."

왜 연금 한 푼 나온 적이 없는지,
이 씨는 알고 싶지만 막막할 뿐입니다.

자세한 내막을 알기 위해서는
서류를 갖춰 직접 공단을 방문해야 하는데,

요양보호사 없이는 거동조차 불가능한,
구순을 눈 앞에 둔 고령의 노파인
이 씨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INT▶
"모르는 게 많아요. 그리고 알았더라도 이렇게 몸이 아프고, 정신이 흐려져요. 나이가 있으니까 그런지 알았던 것도 금방 잊어버리고 그러죠."

역사 연구가들은
여순사건 당시 경찰들의 피해가
가장 컸던 지역이
순천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7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정확한 집계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순천경찰서와 경우회는
몇 해 전부터 분류 작업을 시작했지만,
자료 수집의 한계로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습니다.

순천만국가정원 현충공원에도
국가유공자 모두의 이름을 새긴
현충탑만 세워져 있을 뿐,
경찰 충혼비는 없습니다.

◀INT▶
"갈 때가 날마다 하룻밤 자면 다가오고, 이틀 밤 자면 다가오고. 자꾸 다가오고 있는 것 같아요. 특별법 이런 거라도 좋아져서 내가 좀 마음이라도 편하면 좋겠네요. 다 잊어버리고 가게."

MBC NEWS 조희원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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