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여순사건 희생자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박] 실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후손들은 지금도 슬픔을 가슴에 묻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우식 기자입니다.
◀END▶
◀VCR▶
순천에 사는 고화석 씨.
평범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는
고 씨가 세 살 때 여순사건 반란 가담자로 몰려
목숨을 잃었습니다.
◀INT▶ [C.G.1. 투명]
*고화석/여순사건 희생자 아들*
"유품이라고는 겨우 이 옥편 하나 있는데 아버님 글씨가 여기 남아 있어서 아버님 생각이 나면 이것만 가끔 한번 씩 펼쳐보고 그러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던 여순사건.
[C.G.1] 여수와 순천은 물론, 구례와 곡성 등
전남동부 전역이 피로 물들었습니다.///
마을은 고 씨처럼 아버지를 잃은 아이들로
넘쳐났습니다.
[C.G.2] 봉기군에게 희생된 군경도 많았지만, 대부분 '부역자'를 가려낸다며
무차별적으로 색출작업을 벌인 진압군에
희생됐습니다.
◀INT▶
*박종환/여순사건 희생자 아들*
"경찰이 와가지고 전부 다 젊은 사람이고 늙은 사람이고 그냥 막 다 잡아가는 거야. 끼가 있는 사람들이 있어. 그러면 잡아다놓고 들고 패."
◀INT▶
*김득중 연구관/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여수와 순천의 진압이 제1차적인 목적이었기 때문에 민간인들에 대한 자세한 조사나, 이 사람들이 실제로 봉기에 가담을 했는가, 또는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조사 작업이 거의 없었습니다."
지목당하지 않으려
숨죽인 채 살아야 했던 세월은
유족들에게 아픈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INT▶
*이영일 소장/여수지역사회연구소*
"반공 레드콤플렉스에 짓눌린 이 사건은 저희들이 97년도에 조사를 해볼 때, 인터뷰 성공률이 10분의 1이었습니다. 또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그런 불안함 (때문이었습니다.)"
70년이 지난 지금, 유족들은 지금이라도
그날의 진실이 밝혀지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INT▶
*김양기/여수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 아들*
"정부에 바라는 게 있어요. 진실규명은 해줘야 하지 않느냐.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 한은 풀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왜 죽어야 하는데."
MBC NEWS 최우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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