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MBC

검색

커뮤니티 좋은생각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등록일 : 2010-02-10 21:30

술을 잘 마시지만, 술자리를 너무 자주 즐기지는 않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사람보다는, 술을 꼭 마셔야 할 자리에서 같은 자리에 있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사람과 술을 마시는 날이면..당연히 그가 정리해 줄 걸 알고..누구든 편하게 같이 술 마시고 취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자리가 파하면 모두 정리해서 택시에 태워 보내고..시원한 밤 공기에 취해, 그제야 살짝 취기가 도는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해서는..밤늦게 깨워서 미안하지만...그래도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 잠깐 전화했다고..'여보세요' 라는 목소리라도 들었으니 됐다고.. 이건 꿈이니...얼른 다시 잠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대답을 들을 틈도 없이 내가 잠에서 깰까 얼른 전화를 끊어버리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호기심과 습관으로 인해 오랫동안 담배를 피웠더라도 미래의 아내와 아이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 의지력있게 담배를 끊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다만,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남자들만의 10분간의 담배 휴식에 소외되지 않고 어색하지 않게 함께 할 수 있는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살짝 헤진 청바지에 소매를 두 번쯤은 접은 잘 다려진, 혹은 주름이 좀 있어도 좋을 흰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하얀 운동화도 좋고..대학 때 유행하던 무거운 갈색 마틴도 좋고..10년 된 청바지..10년된 신발도...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왜 아직도 오래된 물건들을 지니고 있느냐 이해하지 못하고..나를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지난 시간들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으로, 가끔은 나와 같이 내 추억 속을 함께 걸어 줄 수도 있는, 질투심이 많지 않은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배드민턴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사실 제대로 치지도 못하는 나를 보며 툭툭 장난치듯 셔틀콕을 받아내주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축구보다는 농구에 더 매력을 느끼고..한 게임 끝나면 땀에 흠뻑 젖어서 옷 더럽혀지는 건 생각도 않고 코트에 누워버릴 수 있는.. 그렇게 수더분하고 털털한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손도 크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하는 나를 보면서, 맛있는 음식과 즐거운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에 내가 얼마나 행복해 하는지를 먼저 알고..자기가 나서서 즐거운 파티를 자주 계획하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내 사람들과 본인의 사람들로 두배가 되어버린 과포화 상태의 인적 네크워크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사람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그런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오래되어 삐걱거리는 차를 가지고 있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차가 나올 때마다 가슴이 설레어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너 언제 철들래? 아가야!' 라는 표정으로 웃음을 참고 나를 보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나의 온갖 애교와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본인이 생각한 시간이 흐르기 전까지는 묵묵히 삐걱거리는 차를 운전해서 다닐 줄도 아는 줏대있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모습에 내가 다시 반한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 할 줄 아는 .. 그런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가끔 서점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 약속 없이 서로에게 각자의 시간을 허락한 주말..하루 종일 서점을 혼자 돌아다니며 나보다 더 신나 할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 시간은 우리 두 사람도..자기의 일도 다 잊어버리고..책 속에서 만나는 새로운 세상에 푹 빠져서..배고픈 줄도 모르고 어둑 어둑 해질 무렵..우연한 만남에 "우리 결국 같이 있었던 거야?" 하고 까르르 웃으며 두 손 가득 책을 들고 나와서는 70년 된 제남우동집에서 후루룩 같이 우동 한그릇 먹으며.. 두 사람이 취미가 같아서 참 좋다고 나를 보며 씨익 웃어주는 그런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나의 활자중독을 이해 해 주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북까페에 앉으면 최소 30분 동안은 뭐든 하나 잡아서 다 읽어버려야 하는 나의 습관을 미리 알아..그 시간 만큼은 섭섭하다 않고 어깨를 빌려 주며 내 머리칼을 쓰다 듬어 주는 여유 있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책을 보다가 가끔 내 눈이 자기를 찾으면 작약꽃보다도 더 환하게 나를 보며 웃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누가 뭐라해도 여행은 혼자 가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나에게..가끔은 보내지만 너무 자주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며..여행길에 읽기 좋은 책 한권과 자신의 감성이 가득한 mp3를 빌려주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 시간에 내가 내 자신에 집중할 수 있게.. 전화도.. 문자도..힘들겠지만 참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조금은 수척해진 나를 와락 끌어 안고 입맞추며.."너, 많이 커져서 돌아온거지?" 라고 나를 믿어줄 수 있는 사려 깊은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문자나 이메일에 맞춤법이 틀리지 않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유행하는 젊은 어투로 글을 쓰다가도 쑥스러워서 다 지워 버리고 결국 문어체로 글을 써 내는.. 꼭 나 같은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언어는 결국 변화한다는 언어의 사회성을 인정하고 이해하지만..기본적인 맞춤법도 틀리는 사람에 대해서는 쉽게 실망하는 나의 고지식함을 알고..끊임없이 책을 보고 신문을 읽고..민중서림 국어사전을 책상 가장 가까운 곳에 놔두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가끔 '웬일'과 '왠일' 이 헷갈리는 나를 보며 그 차이에 대해 겸손하게 설명해 줄 수도 있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하루에 8시간은 서로의 일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으로 존중 해 주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적어도 그 시간은 서로 특별한 일 없이, 잡담 하기 위해 전화기를 드는 걸 꺼려하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가끔, 대답을 바라지 않는 예쁜 문자 메세지나 하나 보내주면 고맙겠지만..일 하는 시간 만큼은 나를 까맣게 잊더라도 상관없으니 집중하는 모습에 나를 다시 반하게 할 그런 멋진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종교에 과하게 심취해 있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는게 지치고 힘들어..먼 훗날 두사람이 손잡고 교회든 절이든 성당이든 갈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자기 자신을 더 믿고.. 자기 힘과 젊음에 의지해서 이 힘든 세상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어느 마음 아픈 날, 신이 있다면 원망이라도 하고 싶은 그런 날에도.. 자기 자신을 믿고.. 둘이 있으니 할 수 있다고.. 웃으며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외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내가 첫사랑인 사람은 아니면 좋겠습니다.

여자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은 아니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한 두사람,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한 기억은 있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지나간 사랑을 다 잊어버리지 않고..가끔 진심으로 지나간 인연의 행복을 빌어줄 줄도 아는..너무 차갑지 않은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연인이자 가족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가끔 시간 장소 못 가리고 뜬금없이 눈물을 터뜨리는 나를 보면서도 이유가 무어냐 닥달하지 않는..그런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무엇이 있는지..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살펴보려고 하는..절대 성급히 내 마음을 다 열어 알아 내고자 조바심 내지 않는 사람..존경하면서..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런 사람이 내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