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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좋은생각

다른 이야기 등록일 : 2018-09-27 15:45

다른 이야기 / 김소연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해 너는 매일매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떤 용기를 내어 서로 손을 잡았는지 손을 꼭 잡고

혹한의 공원에 앉아 밤을 지샜는지. 나는 다소곳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를 되뇌고 되뇌며 그때의

표정이 되어서. 나는 언제고 듣고 또 들었다. 곰을

무서워하면서도 곰인형을 안고 좋아했듯이. 그 얘기가 좋았다.
그 얘기를 하는 그 표정이 좋았다. 그 얘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좋았다. 그날의 이야기에 그날이 감금되는 게 좋았다.

그날을 여기에 데려다놓느라 오늘이 한없이 보류되고 내일이

한없이 도래하지 않는 게 너무나도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그리하여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게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처음 만났던 날로부터 그렇게나 멀리 떠나가는 게 좋았다.

귀여운 병아리들이 무서운 닭이 되어 제멋대로 마당을

뛰어다니다 도살되는 것처럼. 그날의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마다 우리가 없어져버리는 게 좋았다. 먹다 남은 케이크처럼

바글대는 불개미처럼. 그날의 이야기가 처음 만났던 날을

깨끗하게 먹어치우는 게 좋았다. 처음 만났던 날이 아직도

혹한의 공원에 앉아 떨고 있을 것이 좋았다. 우리가 그곳에서

손을 꼭 잡은 채로 영원히 삭아갈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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