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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총량 등록일 : 2013-01-23 15:17

행복의 총량

우리 병원은 안동 시내 태화동 오거리에 있다.
병원 현관이 있는 길 건너편은 노동자 대기소다.
노동자 대기소란,
하루 일당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나와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일꾼이 필요한 사람들이 차를 몰고 와서
"미장 5만 원!" "중국집 주방 4만 원!" 하고 부르면
해당되는 사람들이 차에 올라타고
일하러 가는 그런 곳이다.
노동자 대기소는 대개 새벽부터 시작해서
오전 아홉시경까지 흥정이 이어진다.
경기가 한참 좋을 때는
내가 출근하는 여덟시 반이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작년부터는 아홉시가 다 되어도
일을 못 구하고 남아 있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 나는 병원 유리문 너머로
그분들을 보면서 삶의 철학을 배운다.
아침마다 창 밖으로 그분들을 눈여겨보고,
또 최근에 진료실에서도 자주 만나게 되면서
한 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분들이 나보다 훨씬 많이 웃고 계시다는 것이다.
창을 통해 보면, 아홉시경까지 남은 사람들은
대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담배를 피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면서 늘 웃고 있다.
병원에 와서도 두세 분이 같이 오시면 예외 없이
대기실에서 서로 재밌는 얘기를 하면서 웃고 있고,
진료실에도 늘 웃으면서 들어온다.
진료를 하다 보면 환자들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그런데 고학력에 생활수준이 높을수록 표정이 심각하고,
오히려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이 병중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
바람이 제법 찬 가을 아침에 일자리가 없어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분들의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운다.
근사한 카페에서 코냑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사람들은 표정들이 대개 심각하다.
그러나 안동 막창 골목에서 소주 한 병 시켜놓고
돼지 막창을 굽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떠들썩하고 유쾌하다.
물론 그분들의 상황은 스스로 좋아서 선택한 것은 아니겠지만
그분들의 웃음은 여전히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행복의 총량은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은 것일까.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1)
(
박경철 | 리더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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