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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 쓸쓸하다 등록일 : 2013-12-17 11:56
그가 바로 지금 당신 곁에 있다.
남편, 아버지, 시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그를 보지 말라.
그는 한때 가부장제의 시종이었지만
그가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그는 한때 권력자처럼 군 과오가 있었지만
그 또한 즐거워서만 그 권력을 휘두른 것이 아니다.
그는 꼼꼼히 따져보면,
사실은 한 번도 배불리 먹어본 적 없었고
한 번도 그 권력에 취해본 적 없었고
또 한 번도 그 각질의 얼굴 뒤에 억눌려 있는 자기 감흥에 따라 마음 놓고 소리쳐 운 적도 없었다.
그는 어린 시절 빈곤하게 자랐으며 먹고 살 만하게 됐을 땐 당신들의 왕성한 욕망으로부터 짐짓 비켜나 서있어야 했다.
그는 권력자로 길러졌지만 막상 어른이 됐을 땐
이미 권력이 통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하기 시작했고,
그가 소리쳐 울어도 좋다고 생각할 땐 아무도,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를 돌아다보지 않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불안한 '틈'을 살아온 세대이다.
그에게 뭘 더 바라는가.
많은 '아버지'들이 지금 혼자 있다.
- 박범신 산문집『남자들, 쓸쓸하다(푸른숲, 2005)』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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