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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68명중 68등이었다. 등록일 : 2015-10-15 09:32
학교도 다니지 않았던 가난한 시골 농부인 어느 아버지의 마음을 통해서 엿볼 수 있는 부모의 자식사랑 실화입니다. 주인공은 1940년 경상남도 산청군의 가난한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미국 하와이대학에서 지리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가 되어, 경북대학교 총장(제13~14대:1994-2002)과 국회의원(제17대:2004-2008)을 역임한 박찬석 교수의 이야기입니다. 이 글은 2008년 한국일보에 박찬석 박사님이 기고한 글입니다. 천천히 나름대로 생각하며 읽어보고 다시 한 번 우리들 부모님의 마음을 되새겨 봄은 물론 자신과의 새로운 약속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교 68 명 중 68 등 이었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 중학에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 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 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 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했느냐?”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나베” 했다. “ 명순이 ( 아버지 ) 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 1 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지 ” 했다 .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벌리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 들어가 숨을 안쉬고 버티기도 해 봤고 주먹으로 머리를 내려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부터 17년 후에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살이 되던 어느날, “ 어무이 ... 저 중학교 1 학년때 1 등은요 ...” 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 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총장인... 나는. 아직도 알 수 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