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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의 죽음 등록일 : 2016-10-06 10:40

쌀의 죽음

 

살기 위해 서울에 갔다

살고 싶어서 광화문에 갔다

살아야 했고 살아 있다고 말하려고

서울로 갔다

퍽퍽한 농촌 이야기 하기 위해

청와대가 있는 서울로 가야 했다

환영은 생각하지 않았다

동트기 전

밭으로 논으로 걸음 옮길 때마다

살아야 한다고

살아야 농촌도 지키고

자식도 지키고

이웃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다

떠오르는 해를 보며

희망을 찾으려고 몸부림쳤다

농촌이 농사가 쌀이 죽어가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반겨주지 않을 것 알면서도 청와대로

힘든 발걸음 재촉했다

환영은 고사하고

최루액이, 물대포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청와대 가까운 곳에 가서

한 마디라도 하려고

최루액을 맞고 물대포를 맞아가며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쌀 현실에 대해 말 한 마디 못하고

그날 물대포에 쓰러진

농촌과 농민 모습을 보았다

삼백일 당신이 호흡기에 의존하면서 버티었는데

끝내 오늘 당신과 함께 쌀도 숨을 놓고 말았다

당신이 소박하게 꿈꾸었던 농촌, 농민,

그들은

개 짖는 소리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때려야 말을 듣는 개돼지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 농촌을 향해 농민을 향해 쌀을 향해

무자비하게 공권력을 휘두를 수 없었다

당신, 이제 농민 그만두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입만 열면 농촌이 우리의 뿌리라고 외쳤던 헛구호

더 이상 듣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오늘 부고는 당신 죽음을 알렸던 것이 아니라

농민의 죽음, 쌀의 죽음을 알렸다

이제 생명을 키우는 농민으로 태어나지 마시라

다시는 대한민국 농민으로 태어나지 마시라

--김희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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