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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성생활 등록일 : 2009-12-24 09:20

현대인의 성생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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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성생활

자닌 모쉬-라보 지음/정장진 옮김




제1부 성에 대한 최초의 자각과 첫경험

성, 어떻게 여성들에게 처음 다가오는가

여성들은 어린 시절 키스나 애무 정도에 이르는 풋사랑 이후 첫경험을 하게 된다. 대부분 17세에서 19세에 이루어진 첫경험에서 여성들은 특별한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 첫경험은 오히려 여성들에게 공포와 고통으로 다가온다.




프랑스 국적의 여성 이성애자들

가장 나이가 젊은 그룹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에 처음으로 성을 알았다. 가장 연령이 높은 그룹은 달랐다. 대부분 사춘기 때가 되어서야 성을 알았고(서로 몸이 스친다든가 하는 가벼운 접촉 등을 통해), 가장 빨리 성을 인식한 나이라고 해도 10~12세 정도였다. 어린 시절이 지나면 풋사랑의 시기가 찾아온다. 개인이나 세대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대략 12~16세에 풋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나이가 젊은 여성일수록 풋사랑의 시기가 길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또 상대도 여러 명이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직접 성교를 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자위행위와 관련해 한 가지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ACSF의 조사에 따르면, 남성과 비교해 여성들은 자신이 자위행위를 한다는 사실을 밝히는 데 훨씬 소극적이다. 즉, 84%의 남성들이 고백을 하는 반면 여성은 겨우 51%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들은 자위행위를 성에 대한 발견이나 인식과 관련된 행위로 간주하지 않았다. 청소년기에 들어와 자위를 한 여성들은 대부분 자위행위를 하면서 죄의식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다고 했다. 성교육이 많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성적 쾌락에 대한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혼자 즐기는 쾌락에 대한 교육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이 첫경험을 몇 살에 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991~1992년 ACSF의 조사에 의하면, 가장 나이가 많은 50~69세의 여성들은 평균 21.3세에 첫경험을 한 반면 가장 나이가 어린 18~19세 여성들은 18세에 첫경험을 했다. 다시 말해 첫경험을 겪은 나이도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지만, 여성들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연유로 첫경험을 겪게 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ACSF의 조사에 의하면, 64%의 여성이 사랑하는 남자와 첫경험을 한 반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성과 첫경험을 한 남성은 겨우 33%에 지나지 않는다. 여성들의 관점에서 보면, 첫경험이 단순히 첫 번째이기 때문에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상대 남자와 일정 시간 함께 있고, 적절한 사전 교감 같은 것이 작용한 경우에나 쾌락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여성들이 토로한 첫경험의 고통에는 죄의식이라는 또 다른 감정이 따라다닌다. 그런데 이는 나이가 많은 여성들에게서만 나타난다.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자란 여성들의 경우에는 다행스럽게도 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나 프랑스로 왔거나, 프랑스에서 태어나 이슬람 교육을 받으며 자란 여성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어쨌든 교육을 못 받았거나, 어느 한 쪽이 경험이 없거나, 아무런 욕망이 없는 경우에 섹스는 공포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첫경험이 성공적이었다고 해서 사랑의 감정과 연결시켜 생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이 없는 경우에 관계가 지속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입증된 셈이다. 조사를 통해 드러난 최종 결론은, 오늘날의 젊은 여성들은 마음으로 깊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순결을 준다는 옛 모델을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난 수세기 동안 여성들은 오직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서만 성에 접근할 수 있었는데, 바로 이 법률과도 같은 관습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남성들이 성에 눈뜨는 과정

사람들이 성에 눈뜨는 시기와 계기는 다양하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있어 성과 관련된 가장 큰 사건은 자위행위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남성들에게 자위행위는 사춘기의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의 하나이다. 죄의식까지 수반하는 여성들의 첫경험과는 달리, 남성들은 대부분 첫경험을 해야 비로소 남자가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남성 이성애자들의 첫경험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시작되었다. 남자들은 4~5세 때부터 이미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다. 남성들의 경우, 성과 관련된 가장 큰 사건은 자위행위를 알게 되는 것이다. 유년기가 지나고 중학교 시기에 훨씬 심각한 일들을 겪게 된다. 사춘기 여성들과는 달리, 같은 또래의 남성들에게 자위행위는 중요한 성행위로 자리잡게 된다. 사춘기는 성욕이 아주 강하고 동시에 성 파트너를 구하기 힘든 시기이기 때문에, 대부분 자위행위는 일상적 행위가 될 정도이다. 남성들은 다양한 단계를 거친 끝에 첫경험에 이르게 되는데, 나이에 따라 첫경험을 하는 시기나 양상이 많이 달랐다. 대부분 첫경험을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여성들과 했다.




남성들에게 첫경험은 반드시 대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두 가지 긍정적인 면이 있다. 먼저 어떤 이들은 첫경험에서 성적 쾌락을 경험했다. 그리고 대부분 첫경험은 ‘이제 치렀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이들은 마치 승리를 거둔 것처럼 여긴다. 왜냐하면 하나의 벽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첫경험을 통해 친구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이제 나도 남자가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조사에 응한 남성 이성애자들 중 5명은 첫경험의 파트너와 5년 정도 관계를 지속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첫경험 한 번으로 관계가 끝나거나 한두 번 더 만나는 정도였다. 관계가 지속되지 못한 데에는 물리적이고 환경적인 요인들이 작용했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그저 낯선 세계로의 모험이기 때문이다.







제2부 사랑을 하는 여러 방식들

만남과 이별, 얼마나 많은 파트너를 경험하는가?

남성은 평생 11명의 성 파트너를, 여성은 3.3명의 성 파트너를 갖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평균적인 수치일 뿐이다. 성관계에 대한 인식은 남녀의 차이가 다소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여성은 사랑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반면 남성은 욕망 해소를 먼저 꼽았다.




사랑과 섹스는 별개인가?

최근 18~25세의 프랑스 및 그리스 남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여성의 경우에 사랑과 성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반면, 남성 대부분은 사랑과 성을 별개로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여성이 상대방에게 진정한 사랑을 느꼈기 때문에 성관계를 갖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의 고백에 따르면, 육체적인 관계와 감정을 구별해서 행동하기가 상대적으로 남성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남성도 여성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일부 남성들은,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섹스를 했다고 말한다. 1991~1992년 ACSF의 조사에서 “상대방을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63.8%의 남성이 그렇다고 한 반면 여성은 35.9%였다. 비록 여성에 비해 그 수치는 많이 떨어지지만, 남성도 역시 섹스를 하기 위해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물론 성관계나 사랑의 이유 중 으뜸을 차지하는 것은 성욕의 해소였다.




‘성을 위한 성’이 직접 성관계를 하는 현상과 그 전후 관계를 모두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남성에게 있어 성관계는 자존심의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자신이 성적으로 월등한 남자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입증해 보이려고 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남성과 여성의 만남은 공통점도 있지만 동시에 많은 차이점도 보였다. 특히 남성들의 성욕이 가급적 빨리 충족되어야 하는 측면에서는, 서로 많은 차이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남성들은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켜 주는 파트너를 원했고, 자신을 성적 대상 이상으로 대접해 주길 원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성적으로 충족시켜줄 파트너면 충분"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은 한 파트너와 헤어진 후 다음 파트너를 만날 때까지의 시간에서도 나타난다. 여성은 대부분의 경우 비록 짧지만 일종의 완충기 역할을 하는 휴지기 같은 것을 갖는다. 하지만 남성들은 휴지기 없이 바로 다음 파트너를 만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만남은 결코 오래 가지 못한다. 만남만큼이나 이별도 쉽게 찾아오는 것이다.




성생활의 다양한 모습들

성생활은 개인적이고 은밀한 것이니만큼 현대인들은 다양한 성생활을 경험하고 있다. 대부분의 여성은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성적 쾌락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남성의 성적 쾌락은 상대 여성의 반응에 따라 배가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적 쾌락을 느낄 때

ACSF의 조사에 의하면, 88.8%의 남자와 74.5%의 여자가 조사 당시 기준으로 가장 최근에 가졌던 성관계에서 오르가슴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조사를 통해 집계된 수치와 실제 경험과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성적 쾌감의 정도는 세대간에 많은 차이가 났고, 이는 생활 환경에 따라 다시 많은 편차를 보였다. 반면 13.4%의 남성이 전혀 오르가슴을 경험하지 못했거나 아주 드물게 경험을 했을 뿐인데, 여성의 경우는 무려 31.8%에 달했다. 쾌락은 당연히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경험할 수도 있고 경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상대방이나 상황에 따라, 없어질 수도 있고 새롭게 태어날 수도 있다.




쾌락을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각각 다른 정의를 갖고 있을 것이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대략 네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파도’였다. 파도는 몸을 높이 올려 정상까지 다다르게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상대방과 일체가 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자기 자신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쾌감을 쇼크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성적 쾌감에 대한 이미지는 다양하지만, 특히 사랑하는 상대와는 완전히 하나가 된 기분을 느꼈다. 여성에게 정신과 육체의 일치감은 성관계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남성 역시 여성과 유사했다. 많은 남성들이 쾌감을 느낄 때면 상대 여성과 하나가 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남성은 여성과는 달리, 일체감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또한 오르가슴을 파도, 쇼크 등으로 표현하는 여성과는 달리, 남성은 충만감이나 마음의 평온 등으로 표현했다.




여성은 정신적인 애정과 육체적인 사랑의 결합을 강조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애정이 식어간다면, 외도의 이유가 된다는 뜻을 내포한다고도 볼 수 있다. 여성은 성적 쾌락을 느낄 때, 이를 합리화해야만 비로소 안심되는 듯한 인상을 보여주었다. 반면 남성은 대부분 성욕이 우선이었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즉시 욕망을 해소해야만 했다. 물론 여성 중에서도 애정과 육체적인 사랑의 관계를 더 이상 고집하지 않고, 남성 중에서도 여성 못지 않게 정신적이고 감정적인 애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그런 이들이 있다. 종합해보면 애정과 섹스를 불가분의 관계로 보는 이들이 있으며, 한편에는 애정이 아니라 뇌와 섹스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정과 섹스의 관계와, 뇌와 섹스의 관계는 다르다. 다시 말해 상대방에 대한 상상이나 이미지 역시 욕망을 자극하고 폭발시키는 것이다. 이 경우는 여성들이 주장했던 “사랑을 위해 필요한 섹스”라는 공식과는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여성도 더 이상 쾌락을 위해서 ‘위대한 사랑’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쾌락의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던 감정이, 오늘날에는 그 의미를 많이 잃어버린 것만은 확실하다.




성관계에 따르는 위험들 : 임신, 성병, 에이즈

피임약은 윤리적으로 비난받기도 하지만, 성적 해방이라는 점에서 여성의 적극적인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또 다른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불치병인 에이즈를 예방하기 위해 콘돔의 사용이 장려되고 있지만, 많은 남성들이 콘돔을 꺼리는 실정이다. 결국 학력과 사회적 지위에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임신이나 성병, 에이즈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에이즈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

모든 사람이 에이즈의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선, 부부 모두 외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에이즈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응답한 여성들, 특히 사회적으로 불우한 환경의 이슬람 여성들이 해당되었다. 또한, 고학력에 사회적 지위가 높은 여성들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는 착각이다.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상대방에 대한 근거 없는 믿음에 의존하거나, “설마 나에게 에이즈가….” 하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다시 말해 위험한 러시안 룰렛 게임을 하고 있는 셈이다. 2001년의 조사에 의하면, 프랑스 거주 남성 중 42.6퍼센트가 콘돔을 착용하면 쾌감이 떨어진다고 응답했다. 콘돔 사용을 방해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부분의 남성들이 콘돔 사용을 꺼린다는 것이다.




콘돔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층은 젊은 층이며, 교육을 많이 받은 계층일수록 그 비율이 높다고 한다. 결국 나이가 든 사람들일수록 콘돔 사용에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콘돔을 거부한 이야기는 좀처럼 털어놓지 않았다. 요컨대 콘돔 착용에 대한 재교육이 실행되어야 하며, 특히 40대 전후의 남성들을 포함해 그 이상의 연령층을 집중적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한 사람하고만 성관계를 갖는 시대가 아닌 지금, 콘돔 사용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콘돔이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완전히 그것을 사용하고자 하는 남성들의 의지에 달려 있다.







제3부 행복한 성을 위협하는 것들

성폭력의 피해자들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 이들은 대부분 불감증에 걸리거나 육체적 접촉에 대한 혐오증까지 느껴야 했으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도 했다. 더구나 아무도 피해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그들의 고통은 더욱 컸다.




성적 쾌락을 말살하는 성폭력

성폭력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피해 여성들을 성불구자로 만드는 것일까? 물리학에 탄성 에너지 혹은 반발력이라 부르는 개념이 있다. ‘충격을 견디는 적응력 혹은 적대적인 상황에서 반응을 키워 나가는 능력’을 말한다. 이 개념은 보리스 시륄닉(Boris Cyrulnik, 행동상태 학자이자 소아정신과 의사)이 유행시킨 것인데, 무엇보다 ‘강간에 대해 피해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한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그 상처로부터 회복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만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혐오나 절망의 표정을 짓거나 혹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하게 되면, 이야기하는 사람의 상처는 치유 불가능한 충격으로 변한다. 반대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과 감정을 나누는 자세를 보이면, 상처를 입은 사람은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런 표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이슬람 여성들의 종교와 성

성에 대한 종교의 규제는 대부분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이슬람 여성의 성생활은 남편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지며, 따라서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행인 것은, 일부 교육받은 이슬람의 엘리트 여성들을 중심으로 여성의 성을 억압하는 이슬람의 규율들이 서서히 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슬람을 거부한 엘리트 여성들

우리가 만난 이슬람 여성들은 이슬람교 문화권에서 자랐으며, 현재는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다. 교육적이나 사회적으로 유무형의 재산을 갖고 있는 이 엘리트 여성들은 성 문제에 있어서, 불우한 환경의 이슬람 여성들과 상당히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이슬람교에 밀착되어 있는 정도에 따라 그 관념의 차이를 보였다. 한 그룹의 여성들은 독실한 이슬람 신도였다. 금식기간인 라마단을 지키면서 일상생활에서 신도로서의 의무를 실천하고 있었다. 하지만 성 문제에 있어서는 이슬람교의 규정을 어기고 타협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어떤 때는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이유는 죄를 짓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그룹의 여성들은 여전히 신앙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독실한 신자는 아니었다. 이들은 다양한 성생활을 하면서 이미 이슬람교의 규범에서 멀어져 있었다. 스스로는 ‘신앙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종교 그 자체보다는 이슬람교의 문화적 측면을 강조했다.




이제까지 살펴본 이슬람 여성들은 어떤 경우이든 완전히 이슬람교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교를 완전히 부정하는 여성들도 있었다. 카리마는 성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슬람 문화권의 종교적 규범을 많이 위반한 경우이다. 그런데 딸을 카톨릭 계열의 사립학교에 보내고 있는 카리마 역시, 딸의 문제가 대두되자 전통적 가치를 새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를 종합해 보면, 교육적․사회적 토대가 보다 많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해준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정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문화적 자유주의는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더 발달하게 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슬람 여성들이 남성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은 무엇보다 교육에서 찾아야 한다.







제4부 그들에게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

남성 동성애자, 게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인정하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성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나면, 그 다음의 생활은 이성애자들과 같이 별 무리 없이 진행된다. 남성 동성애자들은 자신들도 훌륭히 아이를 기를 수 있다는 점과 함께, 자신들의 사랑도 인정받고 싶어한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모두 다 같은 인간일 뿐이다

남성을 사랑하는 남성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질문을 던지며 살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제 남성 동성애자들이 아이를 기르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이 걸어가야 할 길은 멀고도 험하기만 하다. 과연 무엇으로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를 구분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정형화된 이미지로 안이하게 판단하는 것과는 달리, 성적 쾌감의 문제에 있어서 동성애와 이성애는 더 이상 구분해서 언급되지 않는다. 성 정체성의 차이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물론 인체의 해부학적 차이로 인해 다양한 차이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성 파트너의 수를 고려해 구분해 볼 수는 있다. 1991~1992년 ACSF의 조사에 의하면, 이성애자의 경우는 1인당 11명이고 동성애자는 13.7명이었다. 우리가 만난 대부분 남성 동성애자들은 젊은 시절 한때 이후로는, 한 파트너와 신의를 지키며 다른 파트너를 만나지 않고 있었다. 이른바 ‘성적 소비’라 불리기도 하는 게이들의 만남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이성애자들은 진정한 사랑을 적게는 한 번에서, 많게는 네 번까지 경험하기도 했다. 동성애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물론 여러 가지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게이들이 사랑의 감정 없이 오직 섹스만을 위해 남자 파트너를 만난다는 생각은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 역시 나름대로의 방식에 따라 감정을 경험하며 사랑을 하는 것이다. 동성애자들은 이제 프랑스에서는 법적인 정식 부부로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그들에게도 가족 개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1988년 미카엘 폴록(Michael Pollak, 프랑스의 역사학자)은 “동성애와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그들에게 가족제도가 없기 때문에, 애정과 성의 분리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게 된다.”고 보았다. 미래 사회에서는 동성애자들을 마치 게토(중세 이후의 유럽 각 지역에서 유대인을 강제 격리하기 위해 설정한 유대인 거주지역)에 사는 이방인처럼 느끼는 분위기도 줄어들 것이고, 다른 모든 인간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취급될 것이다.




여성 동성애자, 레즈비언

레즈비언은 남자에게 느끼지 못한 친밀감을 여성에게 느끼면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인식하고,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그들에게도 역시 부모와의 문제나 아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레즈비언은 애정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이성애자처럼 일부일처제를 고집하는 경우가 많다.




레즈비언과 게이, 레즈비언과 여성 이성애자, 이들의 차이점은?

레즈비언은 여러 가지 면에서 게이와 다르다. 레즈비언의 파트너 수가 적다는 점은 만남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다. 게이들의 만남은 거의 성적 욕구를 위한 것인 반면, 레즈비언들은 성과 사랑을 동시에 추구한다. 이런 차이점들은 이미 1970년대에 있었던 논쟁(오직 육체적 쾌락만을 위해 성관계를 갖는 게이들을 비난하는 레즈비언들에 의해 시작된 논쟁)에서 다루어진 적이 있었다. 레즈비언들은 사랑의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이는 그들의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이유이다. 우리가 만난 레즈비언들은 거의 일부일처제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레즈비언에게 있어서 ‘성을 위한 성’은 드물며, 게이와는 달리 진정한 인간관계를 원한다. 레즈비언과 게이는 인간적인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의지와 애정에 대한 요구 등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레즈비언의 이러한 특징이 여성 이성애자와 크게 다른 것일까? 사람들은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여자 돈 후안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은 사실과 먼 것이라 할 수 있다. 여성 이성애자에게는 무엇보다 애정이 중요했다. 마찬가지로, 여성 동성애자에게도 애정은 최대 관심사이다. 또한 많은 여성 이성애자가 그랬듯이 여성 동성애자 역시, 상호 신의를 지키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성 동성애자들은 성, 애정, 신의를 바탕으로 하는 인간관계 등에서 여성 이성애자들과 다르지 않다.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레즈비언들에게 있어서 아이 문제와 관련된 조치는 사회적 규범에 의해 강요된 것이지만, 앞으로는 많은 변화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양성애자

양성애자는 양쪽 성에 이끌리는 자신에게 두려움을 느끼며, 간혹 이성과의 관계를 지속하는 데서 자신은 동성애자가 아닌 이성애자라고 우기며 위안을 삼기도 한다. 그러나 거리낌없이 받아들이고 즐기는 이들도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서

우리가 만난 양성애자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모두 평온을 되찾은 상태였다. 얼른 보아서는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좀더 쉽게 상황을 견뎌왔던 듯싶다. 카트린 데샹의 보고에 따르면, 후일 ‘비코즈’로 확대되는 양성애자 모임 ‘비(Bi)'를 결성했던 세 여성은 처음에는 게이레즈비언협회 자원봉사자들이었다고 한다. 이 세 명의 여성은 자신들을 양성애자라고 소개하자 다른 동성애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고, 그래서 별도로 양성애자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남성 양성애자들은 여성 양성애자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처음에 남자를 만나다가 다시 여자를 만나려고 하는 경우에 더 큰 고통을 당하게 된다. 그것은 이미 그들에게 ’게이‘라는 딱지가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기피하게 된다.




배우인 30세의 리샤르는 상당히 어려운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언젠가는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알 수 있는 기준이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이중성’을, 그의 말을 빌리면 ‘성적 모호함’을 발전시키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마침내 그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다. 그 결과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수많은 모험을 끝낸 그는 지금, 여자든 남자든 자신과 함께 길을 가 줄 수 있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양성애 자체가 아니라 그를 평생 괴롭혀온 불안정한 삶, 바로 그것이었다.




어느 성전환자의 이야기

사회적, 육체적인 성과 자신이 인식하는 성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그 간격을 극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성전환자들은 바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은 사람들이다. 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었던 한 남자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찾아 성전환 수술을 받고 여자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과, 새로운 모습에 가족들이 적응해나가는 과정 등이 소개된다.




남자에서 여자로 다시 태어나다

샤를로트는 현재 33세이다. 그녀는 ‘부유하지도 가난하지도 않은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사내아이로 태어났고 당시 이름은 샤를로트가 아니라, 이 이름의 남성형인 샤를이었다. 샤를은 “적어도 육체적으로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느낄 수가 없었다.” 당시 15세였던 샤를은 한 성전환자에 대한 르포 프로그램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보게 됨으로써 성을 바꾼다는 것이 실제로 불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성을 바꾸기보다는 사회적, 육체적으로 프로그램된 상태 그대로 몸을 간직한 채 사는 것이 더 쉽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드는 한 여자를 만났다. 당시 샤를의 나이는 20세였다. 컴퓨터 기술자였던 샤를은 직장을 잡았고 결혼을 해서 세 아이를 두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자신의 남성성이 거북하게만 느껴질 뿐이었다. 결국 샤를은 자신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또 자신의 느낌을 알아보고 싶어서 정신과 의사를 찾기로 했다. 이 치료를 통해 자신이 이중의 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샤를은 더 이상 남자 흉내를 내지 말고,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이 요구하는 대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96년 말(우리와의 인터뷰는 2001년 9월에 있었다), 그때부터 샤를은 성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여러 절차들을 밟아나갔다. 성을 바꾸려면 정신과 의사가 발행하는 일종의 허가서가 있어야만 한다. 정신과 의사에게 1~2년 정도 진찰을 받아야 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 의사가 모든 질병 가능성을 배제시키고 순수한 성전환 욕구로 판정을 해주어야만 성전환 수술을 받을 수가 있다. 샤를은 다음 단계인 내분비과 의사를 만나러 갔다. 내분비과 의사는 필요한 처방을 내리면서 혹시 처방이 다른 질병을 일으킬 가능성은 없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세세한 목록을 작성해가며 검사했다. 검사가 끝나자 의사는 샤를에게 발정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을 처방했다. 그 다음 단계는 몸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 후 생식기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샤를의 입장에서 보면 생식기는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샤를은 사라지고 샤를로트가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샤를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 샤를이 자신의 결심을 알렸을 때 아내는 깜짝 놀랐다. 샤를이 변신을 하는 동안에도, 두 사람은 서로 적응해 나갔고 상대방을 새롭게 발견했다. 어쨌든 이제는 샤를로트의 아내를 아내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호적상의 성을 바꾸기 위해서 두 사람이 이혼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혼을 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은 계약을 맺고, 이전처럼 세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이제 변신은 성공적으로 완전히 끝났다. 그러나 샤를로트는 아직도 밟아야 할 절차를 남겨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호적을 정리해야 했던 것이다. 이 일이 끝나기 전까지 샤를로트는 임시 등록증을 발급 받기 위해, 사회보험공단을 찾아가 얼마나 싸움을 했는지 모른다. 샤를로트는 아라비아 숫자 1로 시작하는 자신의 보험번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샤를로트는 자신의 변화를 순전히 개인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각종 서류들을 바꾸는 과정에서 이미 사회문제가 되어 있었다. 2000년 11월 29일, <반음양자(半陰陽者), 변장 취향자, 남녀 양성자, 이들은 성의 경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라는 르포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내분비과 의사인 브뤼노 마즈노 박사는, 남성 성전환자들이 사회적 성과 자연적 성을 일치시키기 위해 성전환 절차를 밟으면서 수술 허가를 받기까지 얼마나 큰 괴로움을 겪는지 설명해 주었다. “저건 내가 아니다.”라고 부인해야 하는 사람이 당하는 고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이유에서 그것을 변태라고 불러야 하는가? 자유와 평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우리 사회에서, 이제는 인간을 더 이상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







맺음말 - 모든 성은 평등하다

여성은 쾌락과 자유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을 의식하고 또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이를 합리화해야만 하기 때문에 사랑의 감정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그렇다면 역으로, 우리는 이 사회에 여성의 쾌락에 대한 일방적인 강제 규정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요컨대 사랑 없는 섹스와 사랑 있는 섹스 중 어느 쪽을 사회적 규범으로 선택해야 할 것인가? 먼저, 훨씬 시급하기도 한 인권과 관련된 문제를 언급하고자 한다. 어쨌든 성 정체성을 불문하고, 성인들의 상호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성적 표현들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해야만 한다. 이성애자들만 정당한 것은 아니다. 더 이상 인간 존재를 구분하지 않고, 인간이라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동등하게 대우받는 그런 시대가 와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성생활의 정말 다양한 측면들을 보았다. 그 모두가 정상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같이 사는 가족, 매일 만나는 친구, 친척들의 성생활에 대해 사실은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제는 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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