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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유물 순천시 외서월평에서 대규모 발굴 등록일 : 2001-12-10 00:00
바로 저희집 앞집이에요...
사망하신분은 참 안타깝네요...
님들도 불조심 하세요!환경호르몬 의심 물고기, 먹어도 되나?
잉붕어 향붕어 중국산 대형붕어 등 암수구분 못하는 동체현상 늘어나
최근 식품포장재에서 환경호르몬이 검출돼 경각심을 드높이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해 요즘 하천에서 암수를 구분할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물고기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민원이 제기돼 실태파악이 시급한 실정이다.
경기도 보건환경연구원이 최근 폴리염화비닐(PVC) 포장재 44가지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7가지 포장재에서 환경호르몬이 나왔다는 보고를 내놓으면서 환경호르몬에 대한 경각심이 높게 일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하천에서 붕어와 잉어 그리고 향어를 합쳐 놓은 듯한 물고기가 나타나는가 하면, 암수를 구분할 수 없는 물고기들이 심심찮게 출현하면서 우리 하천에 마치 새로운 어종이 서식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주장이 나와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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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5,000년전에 순천시 외서면 월평마을 인근에 인간생존에 대한 증거가 속속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발굴 현장 전경
이와 같은 사실은 지난 1995년 실시한 지표조사와 1998년 문화층규모가 20,000평에 이른다는 발표로 알려졌으며 최근 전라남도와 순천시의 지원을 받은 조선대 박물관에서 발굴함으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곳 유적은 2000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81호"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으나 경작과 유적파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고, 1차 조사된 면적이 약1%에 그쳐 유적의 자세한 성격을 밝히는 연구가 요구되었으며, 또한 인근의 송광사, 선암사, 낙안읍성, 고인동공원과 연계한 역사공원벨트의 하나인 "구석기 공원"으로 계발할 목적으로 이번 발굴을 실시하게 되었다.
이 단면은 땅이 얼어 갈라질때 이곳에 이물질이 들어가서 생긴 모양
월평유적은 전남 순천시 외서면 월암리 204-2일대로 월평마을 뒤 언덕에 자리하는데, 여기에 남해안의 벌교까지는 약10km이다. 이 언덕(해발 220m)은 고동산(해발709.4m)의 서남쪽 끝 자락으로 그 세 면을 송광천(연장 약18km)상류가 휘돌아 흐르고, 그 바깥에 해발 400~500m의 산들이 병풍을 두른 듯 솟아 있다. 그래서 유적안에 들어서면 마치 성안에 있는 듯 아늑한 느낌을 받는다.
송광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월평유적을 비롯하여 월암리 구암, 쌍율리 쌍율, 금성리 금성, 장동리 장동, 이읍리 인덕,덕산리 죽산, 우산리 곡천 등 모두 8개의 유적이 분포하고 있다. 또한 송광천이 합류하는 보성강변에도 덕치리 신기,월산리 반월, 대곡리 도롱, 신평리 금평유적이 보고된바 있다. 이처럼 약 20km 거리에 비슷한 문화상을 지닌 구석기 유적이 12개나 자리하여, 이 곳이 구석기인들의 살림터로 매우 좋았음을 알려준다.
발굴에 필요한 좌표-남쪽으로2칸 서쪽으로 25칸째라는 의미
현재 월평유적에서 천까지는 최단거리는 100m쯤 되며, 유적 가장자리는 천보다 약 10m높다, 지금까지 발굴에서 드러난 지층은 모두 8개이다.
1) 1지층 ; 경작토층으로 유기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회색을 띤다. 구석기시대의 뗀석기와 조선시대의 분청사기가 흐트러진 채 드러나 있었다.
절개한 단면
1지층에서부터 8지층까지
2) 2지층 ; 명갈색 찰흙층으로 약30cm두께이다. 발굴 범위 대부분에 걸쳐 남아있다. 1문화층에 해당된다.
3) 3지층 ; 황갈색 찰흙층으로 두께는 25~30cm이다. 아래로 갈수록 모래성분이 많아진다. 2지층처럼 언덕마루쪽에 퇴적이 두텁게 잘 남아 있다. 2문화층이다.
이렇게 좀돌날몸돌로 치면 돌날이 생깁니다.
연구원이 직접시범보이고 있다
4) 4지층 ; 짙은 갈색의 모래층으로 두께는 약35cm이다. 망간 집적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층의 상부에는 이른바 토양쐐기 현상이 뚜렸하다. 현재 유물이 나오고 있으나 문화층 유무는 분명치 않다.
5) 5지층 ; 황갈색 모래질찰흙층으로 두께는 약 10cm이다. 이 층이 발굴 범위 전체에 분포하는 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시굴구덩이에서 석영제 석기가 10여점 나와 유물포함층이 분명하다.
열심히 설명하는 조대박물관 김선주(29)연구원
6) 6지층 ; 활갈색 모래층으로 두께는 약60cm이다. 하부는 뻘과 모래가 섞여 있으며, 망간 집적현상이 나타난다. 5지층과 마찬가지로 시굴구덩이에서만 확인되었다. 역시 석영제 석기가 10여점 나와 유물 포함층이라 하겠다.
7) 7지층 ; 노란색 뻘층으로 두께는 약 15cm이다. 비문화층이다.
좀 돌날
8) 8지층 ; 암갈색 모래자갈층으로 두께는 35cm이상이다. 자갈의 지름은 약 3~4cm이다. 비문화층이다.
월평유적의 갱신세 퇴적층 가운데 현재까지 분명한 문화층으로 확인된 것은 2지층(1문화층)과 3지층(2문화층)이고, 유물포함층으로 드러난 것은 4,5,6지층이다. 4,5,6지층의 문화층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길가에 세워진 안내판
1) 1문화층(2지층) ; 지금까지 300여 평의 조사에서 6,700여 점의 석기가 드러났다. 발굴범위 전체에 걸쳐 유물이 나오고 있다. 몸돌,격지,부스러기,망치,모룻돌과 밀개,새기개,슴베지르개 등의 완성된 석기가 포함되어 있어 석기제작터로 해석된다.
2) 2문화층(3지층) ; 현재까지 700여점의 석기가 발굴되었다. 유물은 발굴범위 전체에 걸쳐 나오고 있으나 빈도는 1문화층보다 낮다. 석기종류는 소형 주먹도끼, 여러면석기, 밀개, 슴베지르개, 뚜르개, 긁개, 홈날 같은 완성된 석기와 망치, 모룻돌, 그리고 좀돌날몸돌,돌날,몸돌 등이 있다. 특히 줄자국의 자갈 두 점이 함께 드러나 눈길을 끈다.
출토된 유물
월평유적이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하는데 참고할만한 것으로 지층의 특징과 석기의 형식이 있다.
먼저 맨 밑의 지층은 모래자갈층인데, 이것은 현재 송강천 바닥보다 약11m높이에 있어 마지막 간빙기 이후에 쌓인 이른바 2단구로 볼 수 있다.그리고 2문화층보다 먼저 쌓인 4지층의 상부에는 토양쐐기 현상이 뚜렸하다. 이것의 형성원인과 그 시기는 현재 여러가지로 논란중이나, 마지막 빙하기의 극성기인 18,000~15,000년전으로 보려는 견해가 있다.1문화층의 석기 구성은 좀돌날몸돌,돌날,밀개,새기개,슴베지르개,소형 주먹도끼 등이 대표되는 것으로 나타나며, 2문화층의 경우도 새기개가 보이지 않지만 나머지 석기 구성은 1문화층과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여러가지 밀개들
이런 점에서 1,2문화층은 좀돌날석기를 중심으로 한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1,2문화층의 석기 형식과 구성은 지금까지 동북아시아에서 연구된 바에 따르면, 후기구석기 늦은 단계의 문화상에 해당한다. 이는 2문화층의 아래에 놓인 4지층 상부의 토양쐐기 현상이 마지막 빙하기의 극성기 때 형성된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와도 일치하는 결과라고 생각된다. 한편 유물포함층인 4,5,6지층의 연대는 앞으로 발굴이 더 이뤄진 뒤에 연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화살촉
조사성과를 보면1. 금년도 약2달간에 걸친 조사 결과, 한 지점에서 연속하는 2개의 문화층과 3개의 유물포함층이 있는것으로 나타나서 후기구석기시대 문화의 변천과정을 밝히는데 자료가 될 것이다.
특히 1) 2문화층은 마지막 빙하기의 극성기인 18,000~15,000년전 이후에 남겨진 것으로 후기구석기 늦은 시기의 문화상을 세분하여 연구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 그리고 아래의 유물포함층은 그보다 앞선 후기구석기시대의 문화상을 밝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는 의미가 있다.
출토된 수정돌
2) 300여평의 범위안에서 현재 1문화층에서 발굴된 석기는 약8,000점에 이르며, 유물이 밀집된(약8평)에선 1,120점이나 출토되어 석기밀집도가 대단히 높음을 보여준다. 20여 점이 넘는 망치와 2,800여점의 부스러기, 그리고 몸돌과 격지 및 완성된 석기들은 이 곳이 "석기 제작소"였음을 여실히 알려준다. 2문화층에서도 현재 800여 점의 석기가 발굴되었다. 나머지 유물포함층에선 수십점의 유물이 나왔다.
화살촉을 만들기 위해 돌의 모서리를 예리하게 잘라냈다
3) 1문화층에서 나온석기의 종류는 소형 주먹도끼,찍개,안팎날찍개,여러면석기, Sub-spheroid, 밀개, 새기개, 슴베지르개, 긁개, 홈날, 톱니날 등의 완성된 석기와 망치, 모룻돌 그리고 좀돌날몸돌, 돌날, 일반몸돌, 모루망치떼기몸돌 등이다. 완성된 석기중 다양한 크기의 밀개 50여점은 이 지점에서 이뤄진 구석기인들의 주된 행위를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4) 모룻돌은 흠집이 크게 패인 것과 아주 미세한 것으로 나뉘어, 그 쓰임새가 분화되어 있었음을 추리할 수 있다. 크고 뚜렷한 흠집의 모룻돌은 석기 제작, 그리고 미세한 자국의 모룻돌은 견과류나 뼈를 깨는데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긴자갈의 전면에 걸쳐 거칠게 갈린 줄자국이 나란하게 남아있는 유물은 그 위에서 무엇인가 갈았음을 보여준다. 이런 자국은 석기 제작 이외에 여러가지 일들이 함께벌어졌음을 알려준다.
갈린줄자국이 있는 자갈돌
5) 1,2문화층의 석기는 9할 이상이 산성맥암을 재료로 하였고, 그 다음으로 유문암등의 산성화산암, 그리고 수정과 송지암이 소량 이용되었다. 산성맥암은 송광천변에서 흔하게 얻을 수 있는 종류이나, 나머지 종류는 외서분지 내에 분포하지 않는다. 산성화산암은 벌교 또는 보성강 본류에 분포하므로, 적어도 10km이상 나가야 얻을 수 있다.또한 송지암은 영암군,경주시,포항시 일원, 그리고 경북 의성군 금성산 정상부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월평 구석기인들의 활동범위, 이동 경로, 또는 당시의 교류 정도을 엿볼 수 있다.
갈린줄자국의 확대모습
6) 약 18km길이의 송강천유역에서 보고된 구석기유적은 월평유적을 포함하여 8개이며, 보성강 합류부근에 4곳 등 유적의 밀집도가 매우 높다. 이들 유적들은 대부분 작은 언덕의 마루 또는 얕은 비탈에 위치하고 있으며 소규모이다.그러나 월평유적은 독립된 지세에 2만여 평에 이르는 대규모이다. 또한 유물의 밀도가 매우 놀으며, 완성된 석기의 종류가 다양하다. 이런점에서 월평유적은 송광천과 그 일대에서 구석기인들의 "본거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7) 1차 시굴조사에 이은 2차 발굴조사 결과 월평유적은 후기구석기 늦은 시기의 문화층 두 개와 그보다 앞선 시기의 유물포함층 셋이 층위를 이루며 남아있음이 밝혀졌다. 이중 좀돌날몸돌, 다양한 밀개류, 슴베지르개로 대표되는 1문화층의 유물갖춤새는 동북아시아 후기구석기 늦은 시기의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시기의 유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메지리치유적,프랑스의 라스코동굴, 일본의 백룡복부태 유적, 러시아의 우스티노브카 복합유적등이 있어, 월평구석기 인들의 생활상을 복원하는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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