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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특집방송" 소록도사람들의 두고온 고향" 등록일 : 2002-02-12 00:00





여수MBC를 사랑하는 모든님들,, 새해 더 기쁜 일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별이드림*광양항 허브항만으로 육성된다!



지난해 환적화물 19만6천187EU처리

전체물량 22%차지 전년대비 123%늘어 !



광양컨테이너부두에서 처리한 물동량87만3천213TEU 가운데 북중국 등

환적화물(T/S)이 전체 화물의 22%를 차지해 허브포트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광양항의 환적화물은 지난해 19만6천187TEU를 처리, 전체 화물량의 22%를

차지했으며 전년도 8만6천642TEU보다 물량으로는 10만9천545TEU, 비율로는

13%에서 22%로 9% 포인트 증가했다.

전년도 일반화물의 경우 19만1천453TEU 늘어 30%의 증가세를 나타냈지만

환적화물은 123%가 늘어나 지난 98년 개항 이후 만 3년만에 빠른 속도로

환적화물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보하이라인이 기항하면서 북중국 화물 뿐만 아니라 남중국으

로 오가는 환적화물까지도 광양항을 이용하고 있어 허브포트로의 성장 가능

성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반면 부산항의 환적화물은 2000년 238만9천956TEU이던것이 지난해는 290만

3천359TEU로 21.5%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처럼 광양항이 환적화물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이고 있는 것은 부산항에

비해 중국과의 거리가 짧고 하역요율이 다른 항만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광양항을 선호하고 있으며 광양항의 서비스 노선이 현재보다 확충되면 환적

화물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 귀사의 취재를 부탁드립니다. *



서울 서초동에 있는 국립중앙도서관 7층 고전운영실에서 최근 제작한

족보 중 가장 알찬 내용으로 훌륭하게 편찬된 족보를 고르라면 누구나 서슴치 않고 "忠州池氏合同譜"를 고릅니다. 이 훌륭한 "忠州池氏合同譜"는 "忠州池氏釜山宗親會"에서 부산의 "韓國譜學硏究所"에 의뢰하여 제작한 것으로 11권 1질로 되어 있으며 10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전국에 거주하는 12만 충주지씨 자손들과 20만에 이르는 그 선조들이 망라 등재되어 있고 특히 광복 이후에 편찬된 족보로서는 유일하게 북한에서 출판된 충주지씨의 鏡城譜와 北靑譜까지 구득하여 在北 충주지씨와 越南 충주지씨의 상계도 모두 찾아서 수단 등재시킨 충주지씨로서는 과히 보물이라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족보입니다.

저 "柳宗鉉"은 바로 이 "忠州池氏合同譜"를 편찬,발행한 "한국보학연구소"와 부설 "도서출판 뿌리"의 경영자입니다. 이 "충주지씨합동보"는 1993년8월에 "충주지씨부산종친회"와의 계약에 의하여 일을 시작한지 2년2개월만에 완간되어 1040질(2.5톤 트럭 5대분)을 납본하였습니다. 당시 정산한 편찬대금은 1억2500만원이었고 그때까지 입금된 금액은 2400만원이었습니다. 당시의 회장"池淸鎭"과 총무"池乙龍"은 책만 납본되면 2,3개월내로 전량 頒帙 판매하여 잔액을 지급하겠다고 하였는데 100-200만원씩 몇차례 주면서 지연시키더니 다음 해에 총무 "지을룡"은 사망하고 회장은 사업을 부도내고 잠적 해 버렸습니다. 총무 사망 후 자체 조사를 하였다는데 예금계좌로 입금된 금액과 현금으로 받은 전액을 사망한 총무가 횡령하였으니 부회장, 이사들은 자기들 책임은 없다고 하면서 종친회를 해산시켜 버렸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저의 책대금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충주지씨합동보"를 편찬 제작하면서 2년여에 걸쳐 인건비, 식자비, 인쇄비, 제본 제책비 때문에 완간 납본후에 당연히 책대를 받아 갚기로 하고 주택을 담보하여 3500여만원을 대출하고 가계당좌를 개설하여 3000만원의 가계수표를 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위와같이 책대금을 받지 못하자 부도를 막기 위하여 다시금 처가와 동생집을 담보하였으나 마침 닥쳐 온 IMF와 겹치면서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연체이자와 협박성 독촉에 시달리다 못하여 고리사채를 쓰게 되었고 2000년에 결국 부도를 맞아 형사 입건되어 벌금형을 선고받고 적색신용불량자로서 모든 융자금의 기간이익이 상실되면서 저의 주택을 비롯한 담보물들은 줄줄이 경매로 넘어가고 모든 가구, 전자제품들도 강제 집행 당하고 말았습니다. 끝내 지난 달에 주택이 강제 인도집행되어 83세 노모를 비롯한 우리 식구들은 엄동설한에 길거리로 쫓겨나 노숙자 가족이 되었으며 자식들의 월급은 채권자들에게 차압당하고 58세의 처는 여관방의 날품팔이가 되었습니다. 저는 1천만원에 이르는 사무실 임대료를 해결하지 못하여 출간만 되면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출판자료들을 가지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면서 6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이 엄청난 충격으로 심신은 만신창이가 되어 그져 죽고 싶은 생각 뿐이나 노모를 두고 갈 수가 없어 통곡하며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이 억울한 상황을 타개해 보려고 변호사,법률구조협회등에 상담도 해 보았으나 당사자가 사망하고 회장도 잠적한 상황에서 법률적 구제가 불가능하다는 설명을 듣고 작은 도움이라도 받아 볼 생각으로 忠州 池씨의 유명 인사를 비롯하여 주소가 파악되는 250여분에게 연 4회에 걸쳐 우편, 팩스, E-Mail등을 통하여 눈물의 호소를 하였으며 정부기관, 언론기관등의 홈페이지 게시판을 통하여 수천번의 호소문을 게시하여 왔습니다. 현재 각 문중에서 족보를 편찬하면 1인 등재에 평균 1만원의 수단비를 납부하는 예에 비추어 이 "충주지씨합동보" 편찬시에는 수단비를 받은 바 없으니 합동보의 수단비를 지불한다는 생각과 겸하여 자기들 때문에 고통을 받는 불우이웃을 돕는다는 정신으로 1세대당 3-4만원씩만 도와 달라는 피눈물의 호소였습니다. 이 내용들은 청와대, 신문사, 방송국등의 각종 사이트 홈페이지 게시판에 들어가 작성자<류종현>을 치고 검색해 보시면 제가 얼마나 이들에게 피눈물 나는 호소를 하였던가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12만 "충주 지씨"중에 단 한사람의 호응도 없었으며 심지어 전화나 메일을 통한 위로의 말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어찌 제가 이를 갈고 치를 떨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 가문의 족보 편찬대금을 떼이고 한 가정,여러 사람이 죽음의 문턱을 헤메고 있다는데 이렇게 무심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무후무한 이 사태를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 저는 저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던 "충주지씨" 아닌 많은 고마운 분들께 여쭙니다. 아니, 저 파렴치하고 몰인정한 "忠州池氏"자손들에게 묻습니다.

제가 이대로 모든 것을 참고 죽어야만 되겠습니까?

12만 "충주지씨"들을 상대로 복수를 할 수도 없고 "池明觀"KBS이사장님을 비롯한 충주지씨 유명인사를 상대로 인정을 베풀어 주도록 더 이상 호소를 해도 소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상징적으로나마 제가 저들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충주에 있는 저들의 선조 유적들을 폭파하고 광주 秉天祀를 비롯한 저들의 선조 사당들을 불지르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저는 이것이 큰 범죄로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이제 그러므로서 한많은 이 한 목숨을 버릴때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네티즌 여러분!

제가 선택하려는 이 방법이 과연 무모하고 과도한 짓

입니까?

아니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수긍이 가십니까?

많은 분들께서 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시고 의견을 보내 주시기를 학수고대하겠습니다.



2002년 2월에



부산시 동구 수정2동 96-4, 한국보학연구소

류 종 현 올림

전화 (051)465-9944(팩스겸용), 휴대폰 011-835-9944

E-Mail: ppuri2001@yahoo.co.kr

오늘이 설 연휴고해서 오랜만에 여수에 와서 그리운김에

저녁에 오동도에 갔습니다.

하지만 비가 와서 들어가서 차로 좀 돌아보고는 거의 20분만에

나왔습니다

근데 나오는 길에 직원이 잡더군요

입장권 끊고 나가라구요.. 주차권도 끊고 금방 나왔는데

끊어야 하냐고 하니.. 꼭 그래야 한답니다.

옆의 친구는 종종 왔었지만 한번도 입장권 끊은적이

없어서 몰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끊었죠. 그것도 차안에 탄 사람수대로 다 끊으라고 해서

그렇게했습니다.

표를 건네주면서,이렇게 어처구니없이

돈만 많이 받으면 사람들이

오겠냐고 하니 직원이 하는말이

" 그럼 오지 마세요" 그러고는 유유히 화장실 가더군요

정말 우리는 너무 황당해서 할말을 잃었습니다

이래서 무슨 세계 해양 박람회니 뭐니를 개최하겠습니까?

손님에게 친절은 커녕 오지말라는 소리가 쉽게 나오는

직원들이 있는데.. 얼마나 외부 사람들이 즐겁게 여수를

다녀갈지는 의심스럽구요

어느 타지역 친구가 여수 여행온다고 해도 오동도 만큼은

절대로 권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좋은기분에 오랜만에 들렸는데

우리는 모두 너무나 기분이 상해서 왔습니다.



관광지 직원들 교육이나 마음가짐 먼저 고치는 것이

박람회 유치의 첫 걸음 같습니다

이곳에 그 특집 방송을

[다시듣기]로 올려 주세요!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꼭!!!!!!!!!!!!!!



(원문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준비한 설날특집 "소록도 사람들의 두고온

고향"은 50여만에 찾아간 소록도 사람들의 고향방문을 밀착

취재해 고향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자 했으며,

특히 우리 사회로 부터 격리의 대상이 된 한센병 환자들을

표용할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주소를 알려주시면 카세트테잎으로 복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소는jhan@mbcys.co.kr로 올려주세요.





(원문글------------------------------

어제 고향인 고흥도덕면에 가는길에 우연찮게 들었던

소록도 사람들에 고향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광주에 살기 때문에 여수 mbc를 들을수는 없지만 설을 맞아 고향가면서 들은 이들이 이야기가 곧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왜 다시 듣기가 안되는가요....

다시 한번 다시듣기로 자세히 듣고 싶고 안된다면 카세트테잎으로 보내줄수 없나요.....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준비한 설날특집 "소록도 사람들의 두고온

고향"은 50여만에 찾아간 소록도 사람들의 고향방문을 밀착

취재해 고향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자 했으며,

특히 우리 사회로 부터 격리의 대상이 된 한센병 환자들을

표용할수 있도록 기획된 프로그램입니다.



주소를 알려주시면 카세트테잎으로 복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주소는jhan@mbcys.co.kr로 올려주세요.





(원문글------------------------------

어제 고향인 고흥도덕면에 가는길에 우연찮게 들었던

소록도 사람들에 고향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광주에 살기 때문에 여수 mbc를 들을수는 없지만 설을 맞아 고향가면서 들은 이들이 이야기가 곧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왜 다시 듣기가 안되는가요....

다시 한번 다시듣기로 자세히 듣고 싶고 안된다면 카세트테잎으로 보내줄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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