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의견 시청자 의견
[여순사건70주기 특별기획]"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의견/소감) 등록일 : 2018-10-01 18:55
[여순사건70주기 특별기획1]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캠페인1)
여순사건에 대한 의견과 피해사례 제보, 본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소감을 보내주시면 향후 제작에 반영하겠습니다.
여수MBC 홈페이지 시청자의견 게시판, 여수MBC 페이스북/유튜브로 많은 참여 바랍니다.
[여순사건70주기 특별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본편1)
여순사건 70주기를 맞아 10월 한 달 동안 여순사건의 의미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5부작 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을 방송합니다.
여순사건의 진행 경과, 부모를 잃거나 마을 전체가 초토화된 피해자들의 가슴 아픈 사례,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 등 여순사건에 대해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해원의 길을 찾아보는 내용으로 이뤄지며 본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 소감과 피해사례 제보 등을 보내주시면 향후 프로그램 제작에 적극적으로 반영하겠습니다.
#여순사건70주기 #여수MBC특별기획 #가려진시간 #고여있는눈물 #여수순천1019사건 #여순사건시청소감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2]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캠페인2)
"추석없는 마을" 1949년 추석 이튿날.. 신전마을 비극의 밤!!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2]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2부)
"추석없는 마을" 1949년 추석 이튿날.. 신전마을 비극의 밤!!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그것은 전쟁이었다"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3부 예고)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그것은 전쟁이었다"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3부 본편)
여순사건 70주기를 맞아 10월 한 달 동안 여순사건의 의미와 해결 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5부작 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있는 눈물] 3부 "그것은 전쟁이었다" 에서는 빨치산 군홧발에 시달려야 했던 산동 사람들, 공산주의에 물든 친형에게 영향을 받았을 거란 이유로 갖은 고문을 당하고, 누명을 쓰고 고문을 받다 현장에서 명을 달리한 사연까지.. 국민을 보호 해야 할 책무가 있는 정부가 헌법질서까지 위반해 가며 국민의 삶을 짓밟은, '전쟁보다 더 했던' 구례 속 여순사건. '여순' 이라는 명칭 탓에 여수와 순천에 국한된 사건으로 오해 하지만 여수, 순천을 넘어 구례, 전북, 경상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적으로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던 가슴 아픈 현대사, 여순사건을 재조명 해 본다.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4] "70년의 악몽"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4부 캠페인)
70년 전 여수에 휘몰아친 거대한 국가폭력의 소용돌이는 이유도 없이 명분도 없이 국민들의 목숨을 빼앗아 갔다.
진압군의 명령으로 여수서국민학교에 모이는 시민들... 국가폭력 트라우마는 사라지기 힘들다.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이 트라우마 치료의 첫 단계이다. 여순사건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역사입니다.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4] "70년의 악몽"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4부 본편)
여순사건 70주기를 맞아 10월 한 달 동안 여순사건의 의미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5부작 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4부 "70년의 악몽"에서는
진정한 사과와 치유가 이뤄지지 않은 트라우마의 공포에 대해서 다룬다.
자아가 성장하지 못한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 그것도 실체는 없으나 거대한 압력으로 다가오는
국가폭력에 의한 트라우마는 평생동안 악몽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데
여순사건 피해자들이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여덟 살 나이에 눈앞에서 총살당하는 사람들을 목격하고, 형의 죽음까지 겪어야했던 김천우 씨의 깊은 상처,
모진 고문으로 인해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이윤재 어르신의 사연 등을 통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아야 할 국가폭력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5] "바로 세워야 할 오늘의 역사, 여순"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5부 캠페인)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5] "바로 세워야 할 오늘의 역사, 여순"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5부 본편)
여순사건 70주기를 맞아 10월 한 달 동안 여순사건의 의미와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 5부작 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5부 "바로 세워야 할 오늘의 역사, 여순"에서는 여순사건의 진정한 해결을 위한 길을 모색한다.
많은 피해자들이 세상을 뜨고, 유가족들이 오랜 고통에 시달리는 현실 속에서 빠른 치유와 올바른 진실규명만이 더 나은 역사를 위해 나아가야할 길.. 잘못된 역사가 바로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되풀이 된 국가폭력의 비극을 돌이키지 않으려면 여순사건은 제대로 규명되어야 하고, 국가의 사과 또한 이뤄져야하는데..
2001년 첫 발의된 이후 다섯 번의 발의에도 불구하고 통과되지 않고 있는 여순사건 특별법에 대한 여당과 국방부의 의견을 들어보고, 국민청원을 통해 특별법 통과를 바라는 국민들의 행동하는 지성을 보여줌으로써 바로 서야 할 역사, 여순사건의 무게를 짚어본다.
"가려진 시간, 고여있는 눈물" 풀영상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1948.10.19 국가에 의해 버림받은 목숨, 살아남은 이들의 비통한 세월, 70년 통한의 역사를 짚어 봅니다.
무명
2018-10-12 22:01
특별기획 감동입니다
SNS를 통해 뉴스를 통해 간간히 보았던 여순사건 관련 여수MBC의 보도물을 오늘 저녁에야 차분하게 여수MBC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보았습니다.
여순항쟁 70주기를 맞이하여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한 여수MBC의 노력에 감동받았습니다.
10월 첫째주부터 방송된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첫번째, 두번째 영상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고, 그 10분을 축약해 방송된 영상과 매일 다양한 뉴스 리포트를 통해 70년 전 상처와 진실을 시청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역시 보았습니다.
한국현대사의 비극, 지역민의 비극의 역사를 온 몸으로 부여잡고 공영방송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보도하기 위한 노력... 감동입니다.
앞으로 남은 3부 특별기획도 기대되구요... 날마다 전해오는 다양한 뉴스도 기대됩니다.
많은 이들에게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무명
2018-10-15 08:44
#여수MBC에 감사와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국가에 불복하는 국민은 하찮은 벌레 한마리처럼 죽여도 되는 시대
절대복종과 절대노예를 요구하던 폭력정권,
그 폭력정권에 의해 무참한 폭력에 죽고, 다치고, 삶의 터전을 완전하게 잃어버린 그리고 겨우겨우 살아서도 입도 벌리지 못하고 살았던 여순사건의 희생자 유족들...
직접 유족께서 증언해주시니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여순사건 역사의 진실을 찾을 찾는 길에 디딤돌을 놓아주고 계신 여수MBC 모든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여수MBC의 방송을 보며 더 큰 용기를 내셔서 당시 정부군, 14연대 군인 그리고 더 많은 유족들이 나서서 증언해 주실수 있다면 진실을 찾아가는 길이 빨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앞으로도 여수MBC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여수MBC 고맙습니다.
무명
2018-10-20 23:30
제 친할아버지와 친정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친정아버지가 43년생이세요. 6살 때 아버지를 잃었다고 하셨죠. 우리 집은 서울인데, 어린 시절 친할아버지 제삿날이면 구례 작은할아버지, 4분의 고모님들, 작은 아버지 내외분 등등이 모여 좁은 집이 북적거렸던 게 생각나요. 엄숙하게 제사를 지낸 후 아버지와 고모들이 방에 모여서 소곤소곤, 행여나 어린 아이들이 들을까봐 애써 목소리 낮춰서 대화를 나눴던 게 기억나요. 매년 있었던 일이라, 어린 마음에 왜 저분들은 저렇게 목소리를 낮춰서 비밀얘기를 할까 궁금했죠. 현재 할머니, 작은할아버지, 고모님 두 분은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저희 삼남매한테 돌아가신 할아버지 얘기를 해주셨던 때는 제가 90년에 대학생이 되기 1, 2년 전쯤이었던 것 같아요. 좀 무심한 듯 짧게 얘기해주셨죠. 저는 제 친할아버지가 1948년 여순사건 때, ‘경찰’로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 ‘좌익’으로 몰려 돌아가셨다는 얘기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에 붙었어도 공무원이 될 수 없었고, 군대에 가서 장교시험에 붙었어도 장교가 될 수 없어서, 구례 산성리 시동에서 농사짓고 그럭저럭 살다가, 삼남매교육을 위해 서울행을 결심하고, 용산 청과물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하셨대요. 용산구 시범아파트, 오주아파트 등에서 살았고, 이후 용산 청과물시장이 가락동으로 옮겨서 잠실에서 1985년부터 살았어요.
저는 아버지 덕에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인 환경에서 서울에서 초, 중, 고, 대학교를 나오고, 교사 임용고시에 붙어 94년도부터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살고 있습니다. 제가 임용고시에 붙던 날, 할머니 손을 꼭 붙잡고, “내가 왜 서울로 왔소. 얘들 공부시켜 공무원 만들고 집안 일으켜 세우려고...”라고 말씀하시다 끝내 우셨던 아버지가 아직도 눈앞에 선해요. 아, 제가 임용고시 붙고 나서, 우리 집에 정체 모를 어떤 남자가 찾아왔던 게 생각나요. 아버지가 몇 만원 쥐어주고 보냈어요. 아버지 말로는, 연좌제 법이 없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공무원 임용할 때 사상검증을 하러 온다고 하셨어요. 몇 만원 받으러 오는 국가정보원이라니, 전 좀 의아했습니다.
1991년도, 제가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우리집 책장에는 이태의 ‘남부군’, 조정래의 ‘태백산맥’이 전집으로 구비돼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읽고, 저도 읽었죠. 저는 그 두 작가 분들께 감사해요. 그분들 덕에, 아버지가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하고 위로를 받았을 거라 확신합니다.
친정집에서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굳이 할아버지 얘기를 안 하시는 아버지가, 연세가 들고 기력이 나날이 쇠해지시더니, 몇 년 전부터는 일 년에 한 두 번씩 언급하세요. 어쩔 땐 눈물도 흘리세요. 당신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했던 그 순간을 말씀하실 때.
친할아버지는 좌익이 아니었고, 막내 남동생이 구례 남로당 중책을 맡았었대요. 1948년 14연대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남로당들도 뭔가 도모를 했겠죠. 곧 다 진압되고, 할아버지의 막내 남동생은 지리산으로 피신했지만, 군경한테 사살당했다고 합니다. 남동생이 남로당이라는 이유로 좌익사범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던 제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남동생 두 분도 그 즈음 사형당하셨대요. 함께 사형 당했던 남동생의 아들은 평생을 가난하게 살다가 몇 년 전 돌아가셨어요. 아버지는 늘 당신의 사촌동생을 안타까워했어요. 그 분 이야기를 하다가 우신 적도 몇 번 있어요.
저는 지난 주 목요일(10월 18일) 전교조 강서아카데미 직무연수로 4,3강연을 들었는데, 강사는 제 또래의, 교사출신의 제주도교육청 교육연구사였어요. 외할아버지가 4.3사건 때 좌익으로 몰려 마포교도소까지 끌려가 돌아가셨다고, 당시 친정엄마 나이가 10살이었다면서, 자신은 중학교 때 그 사실을 알고부터 4.3에 대해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했고, 자료를 찾았고, 고민했고, 교사가 되어서는 관련 수업을 하고, 지금은 4.3을 알리는 장학사라고 하더라구요. 작년부터인가 제주도에서는 4.3관련 직무연수 15시간이, 전국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성황리에 진행 중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몹시 부끄러웠습니다. 대학시절에 황석영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등을 읽고 선배들과 토론하며 아픈 한국현대사를 잘 알고, 나름 역사의식을 가졌다 자부했고, 이 나이 되어서도 4.3관련 강의를 신청한, 교양 있고 의식 있는 교사라 자부했는데, 내 앞에서 강의하는 저 교사에 비해 나는 도대체 할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왜 진상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혹은 5.18이나 4.3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에 비해 여순사건은, 이제와 어찌할 수 없는, 그저 아픈 역사일 뿐이라고만 생각했을까. 4.3 관련 책을 읽으면 반드시 등장하는 ‘여순사건’을 읽을 때, 할아버지 생각만 잠깐하고 바로 책장을 넘겼을까.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 청와대 국민청원에 여순 10.19 특별법제정이 올라왔다는 소식을 우연히 듣고, 서명을 하게 되었습니다. 관련 동영상을 보니, 여수 MBC에서 사연을 제보 받는다는 자막을 보고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아까 친정아버지한테 조금 들뜨고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를 드렸어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여순 특별법제정에 관한 청원이 올라왔어요, 아버지!” 친정 부모님 모두 인터넷을 하실 줄 몰라서 저희 부부, 친정 언니네, 남동생네만 서명했네요. 내일 아침에는 공부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고3딸한테 서명하라고 하려구요. 지인들한테는 링크를 퍼나르고 있습니다. 제 친정아버지, 할아버지 얘기라고요.
아버지는 유소년, 청소년 시절, 아버지 없는 설움에, 빨갱이 자식이라는 오명까지 안고 신산한 삶을 사셨겠죠. 그나마 다행인 건, 대한민국이 한창 경제성장을 하던 시절이라 서울 올라와서 하셨던 청과도매상 사업이 잘 돼서 지금 비교적 여유 있게 노년을 보내고 계십니다. 특별법 얘기를 했더니, “아서라, 이제 와서 무슨. 아픈 기억 다시 떠올리기 싫다.”이러시는데, “아버지, 5.18도, 4.3도 다 유족들이 적극적으로 증언을 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애썼기 때문에 명예회복을 한 거예요. 그래야 역사가 발전하는 거구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할아버지 얘기를 주고받다 보면, 아버지 목소리가 떨리는 게 느껴져요.
‘할아버지의 죽음은 억울하다’에서 한 발만 더 나가,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되었으니 ‘사과를 받고 위로를 받을 수’있는 법이 제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방송을 보니, 여순 사건 때 ‘국가가 폭력으로 국민을 죽여도 되는구나’라는 잘못된 전례를 남겼기 때문에 5.18때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살육이 감히 자행될 수 있었던 거라고. 여순 사건이 이런저런 역사책에 팩트만 서술되는 것과, 특별법 제정으로 재조명 받고 재평가 받는 것은 완전 천양지차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70년입니다. 유가족들의 나이도 많습니다. 그 분들이 자존감을 회복하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보호받고 있다는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방송에서도 적극 다뤄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특별법 제정이 어려운 데에는, 여전히 남아있는 ‘전라도에 대한 혐오’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전라도냐? 5.18도 모자라서 여순까지, 생떼를 쓰는구나, 빨갱이를 왜 명예회복시키냐...등등. 저는 그런 악플을 보게 될까봐 겁이 나요. 그런 시선이 무서워서 유족들이 70년 간 침묵한 거잖아요. 제 친정아버지처럼 방에서만 소곤소곤댔던 거잖아요. 아직도 5.18에 대한 악플도 많구요. 불과 몇 년 전에 독재자 입맛에 맞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려고 했던 나라잖아요. 갈 길이 참 멀고, 아득합니다. 용기내서 방송 제작해주신 여수 MBC관계자 분들, 지치지 말고 계속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거듭 감사하고, 벌써부터 타인의 불편한 시선을 걱정하는 용기 없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무명
2018-10-23 21:56
여순사건, 518에 대해서 짧게 팩트 위주로 보도해주세요.
우리과 전남사람들은 일년중 가장 좋은 때를 언젠가부터는 가장 좋지않은 기분을 보태서 삽니다. 바로 518과 여순사건입니다. 전자는 5월 꽃피는 시절이고 후자는 가을 단풍철입니다. 이 두사건은 우리 지역에 대단히 불행한 사건이지만 이 두 사건을 대하는 오늘날 세대도 문제가 있습니다. 518이 되면 "문화제"란 이름으로 518 훨씬 이전부터 들썩입니다. 그리고 518이 오면 전야제까지 합니다. 이것은 미친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슬픈날을 당하여 경건하게 당일에 한해서 추념해야 할 일이지 무슨 잔치날처럼 들썩거리니 참 한심한 작태입니다. 여순사건도 그렇습니다. 우리 지역사람들은 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여순사건에 대한 트라우마가 큽니다.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매년 방송에서 며칠씩 떠들어 대니 시민인 저는 그냥 우리 사는 곳을 뜨고 싶습니다. 진상규명한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우리 지역주민들이 더이상 마음을 다치지 않도록 배려를 하면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순사건에 대해서 며칠씩 내보내는 특집을 마련하여 트라우마에 매우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내용을 연을 내보내는 것이 혹시 지역을 사랑하고 그것이 언론이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요.
슬픔은 짧을수록 좋습니다.
앞으로는 518이고, 여순사건이고 당일에 한하여 행사에 대한 팩트만 전하고 쿨하게 넘어가는 방송태도를 ㄺ견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지역을 사랑하고 미래를 위하는 길입니다.
수고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