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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태고종 종정 덕암 대종사 다비식 등록일 : 2003-11-22 22:29
서울 신촌 봉원사에 분향소 마련
영결식은 오는 26일 오전 10시 봉원사에서
다비식은 26일 오후14시부터 태고총림 선암사에서 봉행
한국불교 태고종 제16세 안덕암 종정예하가 11월 22일 오전 10시 30분에 서울 사간동 법륜사에서 좌탈입멸(앉아서 열반에 듬) 열반에 들었다. 세수 90세, 법랍 73세.
종정예하는 열반에 들기 전에 『幻化空身是何物(환화로 변해서 오는 것은 공신이니 어떤 물건인고) 廻廻萬生本來位(나고죽는 만생이 본래의 생김새이니) 若人問我此道理(만약 사람이 나한테 그 도리를 묻는다면) 盡無量劫天地前(무량겁을 다함이 없도록 천지간에 있는 도리다) 吾觀法界本無性(내가 법계를 관하니 본성품이 없더라) 生死涅槃亦無相(나고 죽는 것을 열반이나 하나 또한 상이 없다) 若人問我去來處(만약 사람이 나한테 가고오는 곳을 묻는다면) 雲散紅日照西天(붉은 해가 극락세계를 비추며 구름이 모여 흩어지는 거와 같다)』라고 열반송을 남겼다.
제16세 안덕암 종정예하는 열여섯살의 나이로 동진 출가한 이후 청정수행으로 평생을 일관해오면서 대중을 교화하고 사회를 선도하는 등 태고종도들 뿐만 아니라 불교계와 사회로부터 정신적인 지도자로 평가받아 왔다. 종정예하는 또 높은 학덕으로 후배 양성에도 크게 기여해 왔으며 승단의 화합만이 이 땅에서 꺼져가는 불법을 다시 밝히고 중흥시킬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하고 또 몸소 이를 실천해온 진정한 보살승이었다.
뿐만아니라 종정예하는 불교분규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불교의 법통과 정통성을 지키기 위해 태고종을 일으켜 세우고 지키며 이끌어온 종단의 중창주이기도 하다.
안덕암 종정예하는 1913년 경북 문경에서 출생해서 30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최벽산 화상을 은사로, 박운암 화상을 계사로 득도 출가했다.
종정예하는 출가 후 당시 일제 치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교가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고 인식, 일본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 1935년 일본 동경 대성중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다시 철원 심원사 불교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수료하고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칠전선원과 조계산 송광사 삼일암에서 안거, 참선수행을 했으며 금강산 유점사에서 대교사법계를 품수하는 등 선과 교를 두루 섭렵했다.
종정예하는 해방 이후 불교 법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재)동국학원 감사 △불교조계종 재무국장 △불교조계종 교무부장 △불이성 법륜사 포교사 △월간 현대불교 편집위원 △아차산 영화사 주지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등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한국불교의 법통을 지키는데 힘써왔다. 그러나 끝내 한국불교가 권승과 정치승의 힘에 밀려 쓰러져가자 한국불교 태고종을 창종하고 △총무원장 △종무총장 △종승위원장 △교육원장 △한국불교교류협의회장 △대륜화상문도회장 △한국불교포교사협회장 △불교통신대학장 △대한불교유아원연합회 총재 △대륜화상문도회 총재 △법륜사 조실 △태고총림 선암사 방장 등을 역임하면서 공심과 화합심만이 한국불교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종도들에게 가르치고 또 실천으로 그것을 보여왔으며 86년부터 93년까지 제13세 종정에 이어 1998년 한국불교태고종 제16세 종정에 재추대되어 현재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법륜사에서 주석해왔다. 그리고 종정예하는 열반에 들기 며칠 전 이를 예견한 듯, 종단 간부들과 제자들을 불러 승단의 화합과 불교발전에 대한 유훈과 함께 열반송을 남기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앉은채로 홀연히 열반에 들었다.
종정예하는 또 △불교신앙의 바른 길 △대승보살도 △인도성지순례기 △불교기초상식 △송은영스님 일대기 △화엄경강의(上中下) △정법안장 △태고보우국사 전서(1,2,3권) 등을 출간, 문서를 통한 포교에도 크게 기여해왔다.
분향소는 서울 신촌 봉원사(02-392-3007)에 마련되어 있으며 영결식은 오는 26일 오전 10시 봉원사에서 한국불교태고종단葬으로 엄수되며 다비식은 26일 오후 14시부터 전남 순천 태고총림 선암사에서 봉행된다.
문의 전화 :
총무원(02-382-7361), 봉원사(02-392-3007)
한국불교 태고종 "태고 26 "사무총장 도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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