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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6m 백운산 ‘속살’을 탐미하다 등록일 : 2008-01-29 13:13

겨울에 즐기는 트레킹은 각별하다. 굳이 힘겹게 정상을 오르지 않아도 되는 데다 특히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길을 걷노라면 새로운 세상으로 만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짙은 녹음으로 꼭꼭 숨겨놓았던 산의 속살을 속속들이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재미는 덤이다. 강원 정선 백운산의 산허리를 휘감아 도는 화절령 일대는 최근 떠오르는 트레킹 코스다. 이른 봄부터 서리가 내리는 초가을까지 좁은 길을 따라 다양한 야생화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눈덮인 겨울의 모습은 아직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두텁게 쌓인 눈으로 접근이 어려웠던 탓이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을 걷는 것이 다소 힘겨웠지만 눈 앞에 펼쳐지는 한겨울 백두대간의 장쾌한 위용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석탄 나르던 길, 이젠 천상의 낙원
 
화절령 일대의 트레킹 코스는 과거 운탄길이었다. ‘석탄을 운반하는 길’이었다는 뜻이다. 과거 정선 일대에서 무연탄이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옮기기 위해 길을 냈는데, 함백산 정상 바로 아래 만항재에서 출발한 길은 백운산·두위봉을 지나 정선 신동의 예미까지 이어진다.

산 허리를 구불구불 휘감은 이 길은 곳곳으로 갈라지며 거미줄처럼 이어지는데 길이만도 무려 80여㎞에 이른다. 능선을 따라 달리는 대신 차량 통행을 위해 산 허리를 깎고 다듬었기 때문에 경사는 험하지 않다. 그러나 탄광이 문을 닫으면서 석탄을 나르던 트럭은 떠나고 길은 버려지고 말았다.
 
그런데 하이원리조트가 만항재에서 화절령까지 약 10㎞ 구간을 트레킹 코스로 개발했다. 이후 이 일대는 2월 말 복수초를 시작으로 10월까지 갖가지 야생화가 맵시를 뽐내는 ‘천상의 화원’으로 변했다.

지금은 눈덮인 겨울 풍경으로 색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만항재에서 출발하기에는 약간의 무리가 따른다. 대중교통이 뜸한 데다 만항재 정상 주차장에 차량을 세워 놓을 경우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하이원CC에서 출발하는 것이 좋다. 하이원스키장과 골프장 사이를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수시로 운행하는 까닭이다. 또한 지난해 골프장에서 백운산 정상은 물론, 운탄길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정비, 누구나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다. 골프장에서 백운산 정상까지는 표고차가 150여m에 불과해 등산이라기보다 트레킹이란 표현이 어울린다.
 
■전인미답 설원 위를 걷는 트레킹의 진미
 
주변은 온통 40㎝ 이상 눈이 쌓여 있건만 산책로에는 다행히 발자국 흔적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백운산 정상(1426m)까지 다녀온 모양이었다. 조심조심 그 발자국을 따라 오르기를 30여분, 마침내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약 800m 더 가면 정상이고, 정면의 길을 따라 내려가면 화절령 트레킹 코스와 만난다. 이곳에는 또 절벽 위에 세워진 전망대가 있다. 영월군 상동의 심심산골을 넘어 멀리 월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절벽 아래 하얀 눈에 덮인 운탄로가 손에 잡힐 듯 길게 뻗어 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발길을 옮기는 순간. 아뿔사! 흔적이 없다. 눈이 쌓인 후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것이다. 한 발을 내디디니 무릎까지 빠진다. 이왕 내친 걸음, 한 걸음 한 걸음 발길을 옮겨보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때로는 발목까지, 때로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길을 걷다보니 어느새 새로운 길을 만난다. 만항재에서 시작된 운탄길이다. 햇빛에 반사되는 순백의 ‘눈이불’은 마치 보석을 깔아놓은 듯 눈부실 만큼 영롱하다. 그 위를 밟고 지나가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다. 그래도 고라니·멧돼지 등 산짐승의 발자국이 남아 있어 부담을 덜 수 있었다.

눈 쌓인 길을 걷는 것이 힘겹기는 하지만 트레킹 내내 따라오는 풍경 덕분에 지루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끝없이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겨울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서서 붓을 휘두르면 누구나 화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배경은 다르지만 조선시대 화가 정선의 진경산수화가 부럽지 않았고,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눈 아래로 보일 듯 싶었다.
 
■꽃을 꺾는 고개, 이름만큼 예쁜 화절령
 
산짐승의 발자국을 벗삼아 쉬엄쉬엄 두 시간 여를 걷다 보니 화절령에 이르렀다. 화절령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개다. 다른 지역이라면 엄청나게 높은 고개로 꼽히겠지만 이 일대에서는 ‘고만고만’한 고개에 불과하다. 백운산(1426m)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능선이 워낙 높은 탓이다.
 
정선 사북과 영월 상동을 잇는 화절령은 ‘꽃을 꺾는 고개’란 뜻이다. 화창한 봄날 산나물을 캐러 왔던 아낙들이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 꽃을 꺾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으로 ‘꽃꺼기재’라 불리기도 한다.
 
화절령에는 도롱이못이라는 작은 연못이 있다. 해발 1000m 넘는 곳에 연못이 있는 것도 신비스러운데, 일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니 더욱 놀랍기만 하다. 이유가 있다.

10여년 전 탄광이 문을 닫은 후 연못 아래 갱도가 무너지면서 함몰된 구덩이가 생겼고, 갱도에서 흘러드는 물이 이곳에 몰려 고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얼음이 얼고 눈이 쌓여 제 모습을 감상하기 어렵지만 다른 계절에는 연못 주위에 터를 잡은 야생화·낙엽송 등과 어우러져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지난 주말 백운산 일대에 또다시 눈이 내렸다. 운이 좋으면 눈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설경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오가는 길이 조금은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이만한 풍경을 만나려면 그 정도 투자는 아깝지 않다.
 
▲가는 길=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출발한다면 영동고속국도를 이용,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국도 대구 방향으로 가다 제천IC에서 빠져나와 38번 국도로 갈아탄다.

최근 영월을 지나 예미까지 4차선 공사를 마쳐 예전보다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해졌다. 차량은 강원랜드호텔이나 하이원스키장 주차장에 주차하고, 하이원골프장과 연결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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