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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 참꼬막 등록일 : 2008-01-21 17:00

졸깃졸깃한 참꼬막을 찾아 벌교 갯벌로 나섰습니다. 알고보니 참꼬막은 ‘죽을 둥 살 둥’ 널배를 밀고 나가는 아낙네들이 빚어내는 고통의 산물이었습니다. 그 힘겨운 발짓, 손짓이 담겨 그렇게 찰진가 봅니다.

널배를 밀어 갯벌 속으로
갯꾼 무리들은 대략 50여명. 99%가 아낙네들이다. 40대 나이는 젊은 축에 속하고 여든 할머니까지 있다. 왼손으로 널배 앞에 고정된 줄을 잡고 왼무릎을 널배 하단부에 괸 채로 오른무릎으로 뻘을 박차면 널배는 미끄러지듯 갯벌을 달린다. 어느 지점에서 널배를 멈춘 다음 끝이 휜, 길이 1m가 못되는 머리빗처럼 생긴 어구를 뻘 속 깊숙이 박아 들어 올리면 한 되박 가량의 꼬막들이 걸려 나온다.

오후 5시. 숭겅숭겅 썰어 넣은 두부에 굴 알맹이를 넣은 떡국이 갯꾼들에게 보급된다. 갯벌에 발을 담근 채 마시듯 떡국을 먹고 나면 마지막 수색작업이 시작된다. 해는 이미 붉은 빛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후 6시. 메가폰을 잡은 어촌계장이 하루일과의 종료를 알리자 아낙네들은 마지막 꼬막을 바지선에 부리고서 뻘흙으로 뒤범벅된 몸을 뻘물로 닦아낸다. 어느 틈에 스며들었는지 갯벌은 밀물로 엷게 찰랑거린다.

“이거 한 잔만 더 갖다 주소.”

일흔은 족히 넘어 보이는 서너명의 ‘할머니’들이 가지런히 서서 취재양반에게 소주 한잔을 부탁한다.
“약주 좋아하시나 봐요. 일도 끝났는데….”

말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한 할머니가 손사래를 치며 “그것이 아니다.”고 답답해한다.

“요것을 묵어야 집에까지 간당께. 젊은 사람들은 심(힘)이 좋응께 기냥 밀고 가제, 우리들은 요것을 묵어야 제우(겨우) 가네. 하도 심들어서 감시로도 움시로(울면서) 가네.”

번개를 맞은 듯 정신이 맑아진 취재양반은 서둘러 찬 소주를 밥 그릇 가득 채워 할머니에게 드린다. 석양과 널배부대와 갯벌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린 오후 6시30분. 65평 바지선에는 총 920개의 꼬막차두가 사열되어 있었다. 돈으로 치면 5천7백96만원어치.

“오늘이 최고네. 맨날 800개 이짝저짝이등마, 오늘 갯꾼들이 참말로 일을 많이 했네.”
어둠 저쪽에서 한 사내가 수확량을 고지함과 동시에 다른 사네가 바지선의 닻을 끌어 올렸다. 북녘 아득한 거리에 벌교읍내의 불빛들이 가물거렸다.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등 세 종류로 나뉜다. 피꼬막은 표가 나게 굵다. 참꼬막과 새꼬막을 구분하는 외형은 껍질에 기와지붕처럼 패인 골의 수다. 골이 20개면 참꼬막이고 30개면 새고막이다. 맛에서는 참꼬막이 다른 꼬막들을 압도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 그래서 ‘참’자가 붙었다.

꼬막의 보고, 여자만 갯벌
참꼬막은 고흥·보성·순천·여수가 공유하고 있는 여자만 권역 벌교 앞바다에서만 서식한다.

인근 장흥, 강진 득량만에서도 둥지를 틀기도 하지만 알이 튼실하지 못하고 어획량이 많지 않다. 까닭에 참꼬막은 온전히 벌교의 소유물로 인식되고 있다.

참꼬막에 관한 가장 화려한 기록은 벌교를 배경삼은 소설 <태백산맥>에서 발견된다. 소설의 들머리에서부터 참꼬막은 인상적으로 등장한다.

정하섭과 하룻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밥을 준비하는 소화가 “싱싱한 꼬막이라도 한 접시 소복하게 올려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무시로 드나들던 꼬막장수 여편네가 왜 이럴 때는 지나가지 않는지” 아쉬워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소설이 전해주는 꼬막맛은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한 그 맛”이다.

벌교를 동서로 횡단하는 옛 2번 국도는 온통 꼬막으로 치장되어 있다. 발길에 꼬막껍질이 채이는 일이야 자연스러울 따름. 5일장이 서기도 하는 길의 양 옆으로는 20kg짜리 꼬막자루가 그득그득 쌓여 있고, 식당마다 어김없이 ‘꼬막정식’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람들마저 꼬막을 닮은 듯 그 인상들이 투박하고 거무튀튀한 것처럼 느껴진다.

“피꼬막, 새꼬막은 물 속에서 자라는 놈들이고, 이 참꼬막은 하루 한번 햇빛을 봐야 합니다. 그래서 껍질이 아주 두텁고 뭍으로 나와도 15일 가까이 살아 있죠.”

30년이 넘게 벌교꼬막을 전국에 유통시켜온, 벌교읍에서 만난 진석수산 김길두 대표의 설명이다.

“처음에는 양이 많다 싶지만, 하나 집어 먹고, 그라다가 또 하나 까서 먹고, 요 꼬막이 한없이 입 속으로 들어가죠. 걱정 붙들고 양껏 먹어도 상관없습니다. 꼬막 많이 먹어서는 탈나는 법이 없으니까요.”

홍어가 그렇듯, 전라도 그 중에서도 남도 지역에서는 잔칫상에 참꼬막이 빠지지 않는다. 차례상이나 제사상처럼 격을 갖추어야 할 때도 참꼬막은 귀하게 대접받는다. 한편으로 참꼬막은 대표적인 서민음식으로도 꼽힌다. 아무런 양념도 하지 않고 그저 끓는 물에 살짝 데친 꼬막 한 되박을 맨손으로 까먹으면서 막걸리 사발을 들이키는 모습은 선술집에서 흔한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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