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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등록일 : 2009-11-09 16:35

왜 사랑받는가?

* 육체 때문에 사랑받는 것


‘나’의 육체에 대한 타인의 지각은 내가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영역이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자아의식을 감안할 기회를 얻기도 전에, 즉각적으로 당연하게 몸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몸이란 게 DNA구조의 변덕에 따라 배열된 세포 덩어리일 뿐이지만,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은 그 몸에서 의미와 성격을 읽지 않을 수 없다. 서투른 오류에 희생된 그들은 우리의 특징을 아름다운 것, 냉소적인 것, 솔직한 것, 매력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들이 감성적인 여건에 따라 생명 없는 풍경에 ‘이 산은 대담하다’거나 ‘저 강은 명랑하다’하고 딱지를 붙이듯이.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육체가 우리를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인을 파악하는 데 이런 생각을 적용하기란 어렵다. 우리 자신도 부득이하게 육체적인 외모에 연연하여 사람들을 본다. 그들 정체성의 위기에 공감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도 그들의 내면보다는 외양이 바로 그들의 정체성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그래서 눈으로 증명되는 모습에 근거해서.


오직 자기성찰에 근거할 때에만, 우리가 외형에 대해 주장할 까닭이 없어진다. 데카르트가 육체와 정신을 탐구하고서 <방법서설>에서 ‘나라는 존재는, 정신을 의미하며...육체와는 완전히 분리된 존재다.’라고 주장할 만도 하다 [그가 실크 손수건과 플랑드르산 반바지를 좋아했다는 전기 작가들의 기록은 그의 저작에 대한 핵심 내용과 배치되기는 하지만].

* 불안감 때문에 사랑받는 것


불안감은 사회적인 압력과 기대에 직면해서 개인이 겪는 두려움이다. 내가 이 사람의 기대만큼 흥미로운 사람일까? 이 사람이 듣고 싶은 말을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할까?
개인과 사회 사이의 민감한 막에 이런 불안감이 모이기 때문에, 털어놓지 못하면 외로움이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경우에는 쓸쓸하다. 누군가에게 “불안감이 엄습해오네요.”라고 말했는데, 상대방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활발하게 “무슨 말이에요? 불안할 게 뭐 있다고 그래요?”라고 대답하면 외롭다.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일을 비웃어버리면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그러면 우리는 해학적인 기지와 함께 서로의 사고방식과 인류학적 관심을 나눌 기회를 앗겨버린다.

* 존재 때문에 사랑받는 것


궁극적으로, 오로지 앨리스는 잃어버리면 자신이 존재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사랑받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고 운이 나쁘면 그녀는 아래의 것들을 잃어버릴 수 있었다.

a) 외모 b) 직장 c) 돈 d) 능력

그래도 자신은 남게 될 터였다.


그래서 사랑의 동기에서 그런 기준은 배제하고 싶었다. 그녀의 존재에 부차적인 것들이니까. 지금은 매력적일지라도 어느 날엔가 사라질 것들이었다 - 더불어 그녀를 사랑하던 이도 사라지겠지.


사랑받는 이유들을 이렇게 초조하게 찾는 것과 진실을 찾으려는 데카르트의 힘겨운 여정을 연결 지어 볼 수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그의 전설적인 해답은, 주변의 많은 것을 의심할 수 있지만, 단 한 가지, 자신이 현재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었다.


고급 철학 강좌에 등록하고 치밀하게 생각할 줄 알아야만 자기 존재를 주장할 수 있다고 데카르트는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모든 것이 의심스러울 때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을 포착했을 뿐이다. 불확실한 것을 한 겹씩 벗겨내다가, 부인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만 남기는 방식이었다.


사랑의 진정한 기준을 찾는 일도 비슷한 궤도를 따랐다. 누군가 아름답고 부유하고 지성적이거나 강인해서 사랑한다는 것들은 우리가 상대의 욕망 속에서 찾는 핵심 요소가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거나 운이 나쁘면 쓸려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데카르트는 모든 걸 의심했지만, 자신이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가 없음을 깨달았다 - 이 확실한 사실은 정말 멋진 것이지만, 그것이 진리의 본질에 관해 그에게 무엇을 말해주었을까? 이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었을까? 의심할 여지없이 옳은 말이지만, 지식을 추구하는 데는 소용이 없었다.


사랑의 동기 중 덧없는 요소를 다 뺐을 때, 엘리스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육체와 지성과 가진 것들을 제하니, 어떤 사랑할 이유가 남았을까?


데카르트처럼 별로 남는 게 없었다.


그녀에게는 순수한 의식, 순수한 자신, 존재한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욕망이 남았다.


앨리스가 계속 화장품을 사들인 것도 놀랄 일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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