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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신군부 왜곡 정보만 들었다-R

김인정 기자 입력 2017-05-24 20:30:00 수정 2017-05-24 20:30:00 조회수 0

           ◀ANC▶5.18 의 진실을 추적하는 기획보도, 오늘은 미국이 신군부가 왜곡한 5.18 정보에 기대 광주 시민이 아닌 전두환 씨를 선택하게 된과정을 취재했습니다. 
광주가 그렇게 철저히 고립되지 않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김인정 기자입니다.
           ◀VCR▶
(c.g) / 계엄상태였던 1980년 5월 19일.  
미국의 컨트리팀은 전두환 씨와 계엄사령관, 최규하 대통령을 만납니다. 
이때 군 수뇌부는 광주에 대한 편향된 정보로 미국을 설득합니다./  
이때 뿐 아니라 전두환 씨가 실권을 잡고부터 벳시 전 주한미군사령관과 브루스터 당시 CIA 한국지국장 등을 통해 그와 긴밀히 접촉해온 미국. 
미국이 광주시민이 아닌 전두환 씨를쉽사리 선택한 건 왜곡된 정보 탓도 컸습니다.
           ◀INT▶니콜라스 플랫/ 당시 미 국방부 국제안보담당 부차관보 "제가 국방부에 있을 당시 전두환 씨와 사이에서 오갔던 대부분의 메시지는 존 벳시 합참차장이 담당했습니다. 저희는 벳시라는 전두환의 특별 창구를 하나 뒀던 거죠."
광주 상황을 방관했다는 비난을 사온 위컴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만일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라고 변명했습니다. 
           ◀INT▶존 위컴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만약 상황이 더 커졌다면 저희는 더 공격적으로 문제를 다뤘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일이 그렇게 커지지 않았죠."
(c.g) 신군부로부터 받은 정보로 상황을 판단하던 백악관은 결국 군의 광주 재진입을 묵인하기에 이릅니다. 
           ◀INT▶팀 셔록/ 미국 언론인 "내 생각에 이 선택은 1953년에 있었던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최악의 실수 같다."
신군부의 왜곡된 정보전, 그리고 자국 안보에만 매몰됐던 미국의 결정 탓에 ...
당시 광주는 철저히 고립될 수 밖에 없었고그 속에서 광주 시민들은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INT▶이해영 교수/한신대 국제관계학부 "(백악관에서) 자기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전디는 말들이 광주시민들에게는 죽음으로 돌아온 것 아닙니까. 끔찍한 이야기죠."
MBC뉴스 김인정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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