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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순사건 72주기인 올해 여수에서는 민간인 희생자와 군인, 경찰 유족이 사상 처음으로 공동 추모식을 열었습니다. 그동안의 반목과 대립을 풀기 시작한 건데요, 특별기획 증인, 오늘은 여수경찰유족회장 남중옥 씨를 만나 경찰유족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조희원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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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70년이 넘게 가고 그러니까 그분들과 대화를 갖고 이야기를 하고 화합하는 차원에서 이야기를 했지, 공산주의라고 하면 지금도 치를 떨죠. 왜 안 떨겠습니까. 젊은 사람들 그렇게 많이 희생을 하고 그러고 갔으니."
여순사건 당시 여수경찰서 정보계 형사였던
아버지를 둔 남중옥 씨.
유복자로 태어난 남 씨는 스무 살이 다 돼서야
아버지 죽음의 경위를 알았습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기 싫어해,
그마저도 이웃 사람들의 증언의 편린을 모아
맞춰낸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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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이 걸려서 싹 다 경찰서로 출근하니까 출근하는 사람마다 데리고 가서 여수경찰서 뒤에 일본사람들이 그 당시에 만들어 놓은 방공호가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로 데리고 가서 사살해버리고, 사살해버리고. (시체가) 산더미 같이 쌓였다고 그러더라고요. 저희들이 이야기 듣기로는."
유년시절 겪어야 했던 궁핍한 생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에서 비롯된
반란군에 대한 분노..
남중옥 씨는 한평생 가슴에 응어리를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분노와 원망은 누그러졌고,
아픈 역사가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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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어리가 다 풀어진 건 절대로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한편으로는 시대가 변하고 이렇게 가면, 저희 세대로서 저는 직계 아닙니까. 그걸로 끝나야죠. 세월이 가니까 어머님도 그러시데요. 많이 잊힌다고..."
지난 2018년 여수시 순직경찰유족 대표를
맡게 된 남 씨는, 민간인 유족들과
합동 추모식을 열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유족들의 상처는 생각보다
더 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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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벌했죠. 말도 못 꺼내는 거예요. 무슨 소리하고 계십니까. 추모제요?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빨갱이 집단들이 하는 일을 뭐 하러 가냐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 (같이) 하겠냐고 말씀하시면서 참석을 극구 반대하시더라고요."
결국 2년이 더 지난 올해,
여수에서는 72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인과 군경 유족이 모두 참석하는
추모식이 열렸습니다.
유족들의 마음이 돌아선 건, 특별법 제정이라는
공동의 염원 때문이었습니다.
경찰 유족들은 민간인 희생자들만큼이나
억울하게 희생된 경찰 유족의 아픔을 조명하고,
그 진실을 규명할 방법은
특별법 제정뿐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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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법이 말하자면, 명예회복을 위해서 하는 것 아닙니까, 민간인들도. 우리 경찰도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억울하게 희생을 당했으니까, 교전을 하고, 그 사람들과 싸운 것도 아니고..."
여순사건 당시 적게는 십수 명,
많게는 수십 명의 경찰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아직 정확한 실태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여수 자산공원 경찰 충혼탑에 새겨진
순직 경찰관들의 명단에
남 씨 아버지 남종수 씨는,
남 씨가 아닌 강 씨로
이름조차 잘못 새겨져 있습니다.
◀INT▶
"그럴 것 아닙니까. 너희들은 어찌 되었든지 나라에서 부모들이 조금이라도 연금을 받고 있지 않으냐.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그건 부모 세대고, 우리 자식들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MBC NEWS 조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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