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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증인.. 추석이 사라진 마을

조희원 기자 입력 2020-10-02 20:40:06 수정 2020-10-02 20:40:06 조회수 3

◀ANC▶

지난 수십 년 동안, 슬픈 추석 명절을 맞아야 했던 마을이 있습니다. 추석 바로 다음 날 마을로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가족들이 희생됐기 때문인데요.



오늘은 추석이 사라졌던 이 낙안 신전마을에서 살아온 강질용 씨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여순10.19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특별기획, 증인. 조희원 기자입니다.

◀VCR▶

"추석이 돌아와도 명절이라는 그런 즐거운 마음도 사실 없고, 우리 마을은. 슬픔 속에... 과거를 회상해보면 그랬죠. 추석답지 않게 명절이 지나가고 그랬어요."



45 가구가 모여 살던 작은 산골짜기,

낙안 신전마을.



추석 다음 날이던 1949년 음력 8월 17일 밤,

한 발의 총성이

곤히 잠든 마을 사람들을 깨웠습니다.



◀INT▶

"밤 10시가 넘었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리면서 동네 분들을 군인들이, 군인들이 이 마을 주변을 전부 에워싸고 총성을 울리면서 집합을 싹 시킨 거예요."



군인에게 끌려 온 14살 소년은

얼마 전 총상을 입고

마을로 들어왔던 인민군 연락병이었습니다.



돌봐주었던 마을 사람들을

골라내라는 군인의 말에,

소년은 손가락을 들어

한 사람씩 가리키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준 사람, 빨래를 해준 사람,

잘 곳을 마련해주었던 사람..



지목당한 마을 사람 22명은 그날,

인민군에 협조한 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중에는 강질용 씨의 아버지도 있었습니다.



◀INT▶

"밥 주고, 과일 감 따주고. 모두가 다 그래요. 죄 없는 사람들.. 애기 밥 한 그릇 주고, 뭐 음식 좀 줬다고 해서 죄라고 생각도 안 해봤죠. 음식 주고 했다는 그런 죄밖에 없어요."



엄마 등에 업힌 3살배기 어린아이부터

67살 노인까지 모두 총살한 군인들은

그것도 모자라

마을 전체를 불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명절을 맞아 즐거웠던 마을은

하룻밤 사이 초상집이 되어버렸고,

하나둘씩 마을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INT▶

"이 집 한 채만 놔두고 나머지는 전부 전소시켜서... 전부 집도 태워버리고 부모 형제도 잃어버리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다들 친척 집이나 친척이 없는 (사람은) 아는 지인들 집으로나 그렇게 다 피난을 갔었다 그래요."



수년 뒤, 돌아온 강 씨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은

가족과 이웃들이 처형당한 그 자리에

학교를 지었습니다.



제대로 잘 가르치고 배워

후대에서만큼은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십시일반 모은 돈이었습니다.



◀INT▶

" 지역을 위해서 학교를 이쪽에 해야겠다, 이설해야겠다고... 여기가 전부 논이었는데 우리 지역민들이 농토를 가지고 있는 분들이 우리 어머니부터 한 300평 이상 기증하고 여러 사람 기증해서..."



세월이 흘러 학교는 폐교됐고,

이제 그때의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10가구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한평생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으며 마을을 지킨 강질용 씨는,

더 늦기 전 마지막 소원을 이루고 싶습니다.



◀INT▶

"특별법이 제정되어서 정말 국가에서 위령 공원도 세워주고, 여기 주민들은 죄 없이 국가 잘못으로 이렇게 사살시켰다. 대통령이 사과해야죠. 우리 유족들한테 정말로 잘못한 것을 유족들한테 (사과)해주고 명예회복 시켜주고..."



MBC NEWS 조희원입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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