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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친필 휘호..70년 만에 공개(R)

장용기 기자 입력 2019-10-28 07:35:04 수정 2019-10-28 07:35:04 조회수 6

◀ANC▶
백범 김구선생이 목포에서 남긴 친필 휘호가 70년 만에 공개돼 당시 선생의 호남 행보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김구 선생이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며, 남도 순회강연에 나선 때였습니다.

장용기 기자가 보도합니다.
◀END▶

백범 김구선생이 직접 쓴
'존경상제(尊敬上帝)'가 아직도 선명합니다.

'조물주 하나님을 존경합니다'라는 뜻으로
행서체의 획마다 힘있는 백범의 기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친필에는 '병술년(1946년) 가을, 김구' 라는
문구'와 함께 '목포남부교회'가 씌여있습니다.

해방이후 김구선생의 호남방문은 모두 세 번,

1946년과 1948년 그리고 암살로 서거한
1949년으로 기록됐습니다.

(장용기s/u)목포 중앙초등학교입니다.
김구 선생은 당시 목포 공설운동장이었던
이곳에서 수많은 시민이 모인 가운데
시국 강연회를 가졌습니다.

강연에 이어 목포에서 계몽활동에 앞장섰던
이 교회 소속 애국부인회원들을 만나
격려했습니다.

그때 15살 신자였던 이 교회 김상열장로는
그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INT▶ 김상열장로(88세)
*목포 남부교회*

" 백범 김구선생님은 우리교회 여신도들을
격려하시고 (유달)호텔에 머무시다가 목사님의
예방을 받고 친필인 이 글을 목포 남부교회에
건네주셨다고 들었습니다."

1946년 9월21일과 22일 김구선생이 이틀동안
머물렀던 목포의 제1호 유달호텔 건물입니다.

당시 목조 2층 호텔은 1966년 모두 철거돼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철근 콘크리트 3층
여관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INT▶김두식 (목포 중앙동, 건물주)

"2층,3층 슬라브,옥상을 보나까 신축할 때
지금 그대로 있고 여관(호텔)흔적은
지금 다 없어지고 아무것도 없어요"

지금은 민어의 거리로 바뀌었지만 해방 전후
이 거리는 목포의 중심지였습니다.

◀INT▶ 박승 향토문화연구위원
*목포문화원*

"1960년대 70년대까지만 해도 목포시청,
법원과 검찰청,경찰서. 한국은행 목포지점 등이
있어서 여기가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백범 김구선생의 경남과 전남북 순회행보는
9월 14일 부산을 시작으로 통영을 거쳐
여수와 순천, 보성, 강진 그리고 목포, 무안, 함평, 나주, 광주 순으로 이어졌습니다.

해방이후 혼란스런 역사속에서 어떻게든
통일 민주국가를 수립해야한다는 사명감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 활동이었습니다.

◀INT▶ 최성환 교수(목포대 사학과)

"특히 목포가 전남의 대표도시였기 때문에
목포에서 그런 여론을 만드는데 활동하기
위해서 목포를 방문해 민족단체들을 만나서
그런 이야기들을 전파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올해
백범 김구선생의 호남 목포권 행보에 대한
심도있는 자료수집과 목포의 현대사
연구가 필요해 보입니다.

mbc 뉴스 장용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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