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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에 새겨진 70년의 악몽-R(22일)

박광수 기자 입력 2018-10-23 07:30:00 수정 2018-10-23 07:30:00 조회수 2

◀ANC▶
여순사건 70주기 특집 연작 기획 4주째,
이번주는 여순사건이 지역에 남긴
집단적 트라우마를 살펴봅니다.

당시의 충격은 직 간접적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지역 공동체 전반에
심각한 정신적 외상과 좌절감을 남겼습니다.

박광수 기자입니다.
◀END▶
1948년 10월 말 여수 종산국민학교에서
부역자 총살 현장을 목격했던 김천우씨.

대여섯명씩이 잇따라 총격으로 쓰러지는 광경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INT▶
"운동장에 세워놓고 총살을 한 겁니다. 많게는 일곱명 다섯명 세명 두명 이런식으로 순서없이 쏴 죽이는 거에요."

더욱 치가 떨렸던 것은 곧 총살될 사람들에게
시체를 옮기게 하는 잔혹함,

표현할 수 없는 분노와 공포가 가슴 깊은곳 상처로 남았습니다.
◀INT▶
"(총살 대기열에) 앉아있던 사람이 나오라면 나와서 거기에 구덩이를 파고 사람을 던져놓고 와요. 그러면 그사람도 (그 다음에)또 죽어요. 후~그런식으로"

구례군 산동면의 한준희씨는
마을 어른들이 진압군의 명령에 따라
구덩이를 파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어린나이였지만 부모님의 표정에 드리운
두려움과 절망감은 섬뜩할 정도였습니다.
◀INT▶
"나중에 알고보니 총살해서 사람들 묻어버리려고 판 거였어. 한 몇분만 늦었더라도 다 죽었어. 누가 물어보면 모른다고 해라 그것이 어른들이 (항상)한 말이여."

잔혹한 좌익 색출작업은
특히 지역사회의 버팀목이 될 젊은 지식인층의
씨를 말려버렸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조차 좌절과 체념에 빠져들었고
지역은 발전의 동력을 잃었습니다.
◀INT▶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국 그런 사람들의 전철을 너가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하니 설사 너가 나서고 싶은 상황이 있더라도 절대로 나서서는 안돼라는 것을 가정에서부터 주입을 하게되는 것이었거든요."

◀INT▶
"저희들이 97년도에 조사를 해 볼때 인터뷰 성공률이 10분의 1이었습니다. 응하지를 않죠.또 이후에 어떤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그런 불안함."

국가폭력이
진실을 말할수도, 앞에 나설수도 없게 만든
집단적 공포를 심어놓은 겁니다.
◀INT▶
"실체를 알 수 가 없는데 그게 거대한 힘으로 억누르니까 알 수 없는 거에서 압박을 받으니까 대항할 수도 없는 거에요. 캄캄한 어둠속에서 총격전이 벌어진 것과 같은 상태인 거죠."

(EFFECT-여수블루스)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몽과 두려움으로
지역 공동체에 살아 숨쉬는 여순사건.
◀INT▶
"꿈에도 나와요. 꿈을 꾸고 나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살아났는고  곰곰히 생각하다가 저녁내 잠을 못잘때가 있소."
◀INT▶
"잊을수가 없어요. 잊을수가 하루도 잠자다가 꿈에도 그 총살하는 모습들 자빠지는 모습 들고가는 모습 그런거 어른하게 비쳐요."

구체적인 진상 파악,
진심어린 사과와 보상을 위한
국가주도의 대책을
이제는 더이상 미뤄서는 안 될 시점입니다.

MBC NEWS 박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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