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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등록일 : 2010-02-24 22:36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가능하다면 꽃밭이 있고 가까운 거리에 숲이 있으면 좋겠어 개울물 소리 졸졸거리면 더 좋을 거야
잠 없는 나 당신 간지럽혀 깨워
아직 안개 걷히지 않은 아침 길
풀섶에 달린 이슬 담을 병 들고 산책 해야지


삐걱거리는 허리 주욱 펴 보이며
내가 당신 “하나 두울~” 체조시킬 거야

햇살이 조금 퍼지기 시작하겠지

우리의 가는 머리카락이 은빛으로 반짝일 때
나는 당신의 이마에 오래 입맞춤하고 싶어
사람들이 봐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


아주 부드러운 죽으로 
우리의 아침 식사를 준비할 거야 
이를테면 쇠고기 꼭꼭 다져 넣고
파릇한 야채 띄워 야채 죽으로 하지
깔깔한 입 안이 솜사탕 문 듯 할 거야


이 때 나직히 모짜르트를 울려 놓아야지

아주 연한 헤이즐럿을 내리고
꽃무늬 박힌 찻잔 두 개에 가득 담아
이제 잉크 냄새 나는 신문을 볼 거야


코에 걸린
안경 너머 당신의 눈빛을 읽겠지.
눈을 감고 다가 가야지
서툴지 않게 당신 코와 맞닿을 수 있어
강아지처럼 부벼 볼 거야

해가 하늘 높이 오르고
창 깊숙이 들던 햇빛 물러 설 즈음
당신의 무릎을 베고
오래오래 낮잠도 자야지
아이처럼 자장가도 부탁해 볼까


어쩌면 그 때는
창 밖의 많은 것들
세상의 분주한 것들
우리를 닮아 아주 조용하고
아주 평화로울 거야

나 늙으면 당신과 살아보고 싶어
당신의 굽은 등에 기대 울고 싶어


장작불 같던 가슴 그 불씨
사그러들게 하느라 참 힘들었노라
이별이 무서워 사랑한다 말하지 못했노라

사랑하기 너무 벅찬 그 때
나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말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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