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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둘러싼 역사 등록일 : 2016-08-14 12:52

  [ 달력을 둘러싼 역사 ] 

  벽걸이 달력 속의 시(詩): 

  로마의 집정관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는 기원전 189년에 
  그리스 도시 암브라키아(지금의 아르타)를 정복했는데, 
  그가 기원전 179년에 감찰관이 되었을 때 
  작은 헤르쿨레스 사원의 한 주랑을 
  넓혀서 그곳에 암브라키아에서 가져온 
  9개 신들의 조각상을 진열하도록 했다. 
  또 그는 이 사원에 하나를 더 장식했는데, 
  그것은 벽화 형식의 달력이었다. 
  오늘날에는 사원도, 달력도 보존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달력이 대략 100년 후에 완성된 
  안티움 벽 달력의 전범이었을 가능성은 높다. 
  로마의 골동품상들이 이 달력은 인용했는데, 
  이 달력에는 여러 줄로 된 제목이 있었고, 
  그 제목에 따르면 달력은 정치적인 결정의 산물로, 
  즉 시민의 법적인 구조를 복사한 것으로 설명된다. 

  우리는 이 달력에서 그날의 법적인 성격을 결정하는 
  페리아이의 명명 외에도 처음으로 단순한 봉헌일 혹은 
  교회의 봉헌 축일이 거론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런 봉헌 축일은 네파스, 즉 법정의 휴일은 아니었지만, 
  제식이나 때때로 대중적인 행사가 열릴 수 있었다. 
  풀비우스가 신의 이름을 때에 따라서는 장소를 적는 
  형식으로 달력에 기입한 것은 역사적 연상물이었다. 
  이로 인해 달력은 더욱 역사적이 되었고, 
  더욱 종교적이 되었다. 
  이전에는 파스티에서 단지 재판일과 잠재적인 민회일 
  그리고 신에게 속하고 바쳐지는 제식일을 
  (눈앞에 다가온 일을 위해 이날을 피할 목적으로) 
  추론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제물로 가득한 날이 달력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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