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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걸었어 등록일 : 2017-07-24 15:28

그냥 걸었어 / 김홍남



어제 오후 창밖과 몸이 찌뿌둥해서 옳다구나 싶어 주섬주섬 산책준비를 한다.

물론, 뉴스에서 비는 안 온다고 해서 우산은 챙기지 않고 그냥 밀짚모자만을 쓰고서 말이다.

이 강변 길은 늘 걷던 길이라 아주 익숙한 길이다.


처음 그 길을 들어서니 고라니 녀석이 논두렁에 내려와 풀잎을 뜯어 먹고 있다.

내가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난 카메라를 꺼내 사진에 담으려고 하자 이크나 싶었는지

후다닥 달아나버린다. 참 겁 많은 녀석이다.

내 친구 강아지 녀석은 그제서야 고라니를 알아보고 마구 쫓아간다.

이 녀석은 매사 이런 식이다. 꿩이나 고라니 같은 녀석들을 보면 잡지도 못하면서

맨날 뒷북만 치는 녀석이다. ㅎㅎ

햇빛이 비치지 않는 길을 걸으니 시원하고 걸을 만하다.

한참을 걷다 보니 목이 마른다.

땀이 송골송골 이마에 맺힌다. 시원한 막걸리 생각이 절로 난다.
에라 모르겠다 싶어 주변 구멍가게에 들러 막걸리를 한 병 사 안주도 없이 병 막걸리로 마신다.

"캬아~!" 목마를 때 마시는 시원한 그 맛이란 먹어 보지 않은 이들은 모를 것이외다.
이게 어쩌면 삶의 길을 걷다 가끔 만나는 삶의 행복, 그 자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얼큰한 행복을 느끼며 걸어가다 보니 흐린 하늘이 개고 쨍하고 햇빛이 비친다.
땀방울이 밀짚모자에서 자꾸만 흘러내려 눈이 따갑다.

안 되겠다 싶어 물가에 푸른 잎으로 햇빛을 막는 뽕나무 그늘 속으로 기어서 들어갔다.
평소에도 그 길을 오가면서 때에 따라 오디로 내 출출함을 달래주던 뽕나무이다.
그곳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잠자리가 하늘을 무리 지어 날고 벌과 나비가 이꽃 저꽃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꿀을 찾는 모습이 저들도 살아내기 위해 애쓰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왠지 저들을 보면서 고달팠던 이 마음도 조금은 평안해짐을 느낀다.


그러다가 강물 쪽에서 들리는 "첨부덩"하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에 바라보니 커다란 물고기가 뛰어올랐다가 하얀 여울을 남기다가 수면 속으로 사라진다. 

아마도 이 장마 덕분에 깊고 큰 남한강에서 귀소본능으로 찾아온 물고기리라

왜냐하면, 이곳은 남한강의 지류이니까

그간 가뭄 때문에 바싹 말라버린 모래밖에 없던 곳인데도

장마로 인해 다양한 생명들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

가끔 월척이 훨씬 넘는 물고기들이 죽어 있는 보게 된다. 고향 찾아왔다 적응을 못 했는지 아니면,

강태공들이 손맛을 느끼고 버렸는지, 후자라면 정말 못 됐다 싶다. 왜 먹지도 않을 거 생목숨

그리도 잔인하게 끊어버리는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그늘 속에서 더위를 피하다 보니

어느덧 석양은 뉘엿뉘엿 물 위에 누워 자신의 하루의 뜨거운 몸을 식히고 있구나

물새와 곤충들도 곤한 날개를 접고 주어진 하루를 갈무리 하려고 쉴 곳을 찾고 있구나

이제 이내 몸도 삶 속의 파노라마 같은 하루의 여정을 접고 덩그러이 놓여서 나를 기다리는 침대로

이 한 몸 누이려 가려 하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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