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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사진 한 장 등록일 : 2018-04-25 10:56

빛바랜 사진 한 장



그림 공부를 위해서 미국에서 유학할 때의 일입니다.
가끔 초상화를 그려주면서 용돈을 벌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지인을 통해 찾아온 한 할머니에게
뜻밖의 부탁을 받았습니다.

척 보기에도 병색이 완연한 할머니는 낡은 흑백사진을
한 장 건네주며 이 사진의 아이들을 예쁜 색을 입혀
초상화로 그려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사진에는 열 살 남짓해 보이는 남자아이들과
조금 어린 여자아이가 사이좋게 손을 꼭 잡고
웃으며 서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흑백 사진 속에 아이들이 입고 있던 옷의 색까지
하나하나 말하며 꼭 색을 입혀 그림을 그려 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지인의 부탁도 있어서 나름으로 열심히 그림을 그렸는데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할머니가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몇 달의 시간이 지나 그림을 치워두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찾아와 그림을 찾았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소꿉친구이자 남편이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가 안타깝게도 몇 달 전 지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는 사진 속의 아이들은 미국에 이민 오기 직전에
오빠들과 함께 찍은 할머니 본인이었습니다.

이미 오빠들은 세상을 떠난 지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할머니는 빛바랜 사진 한 장을 자신이 기억 속의
가장 예쁜 모습으로 간직하고 싶어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하얀 원피스를 입고, 통통한 볼이 발갛게 상기된,
어린 시절 귀여운 할머니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셨고
저에게 감사하다며 그림을 가지고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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