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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룡사지 보도에 대한 발굴조사단의 의견 등록일 : 2006-05-19 20:22
옥룡사지 보도내용에 대한 발굴조사단의 의견
일반시민들은 학계에서 대응을 안하고 있으면 향토사학자(박혜범)와 데일리안 기자의 의견이 모두 진실인양 받아들인다. 그런데 데일리안에서 계속 의혹 부풀리기를 하여 전남동부지역 언론사(여수 MBC와 순천 KBS라디오)에서 방영하고, 최근에는 이 문제가 검찰에까지 넘어가게 되었다. 이 시점에 발굴조사에 관여한 연구원의 한 사람으로서 얼마간의 해명이 필요할 것 같다.
발굴조사는 문헌 내용보다는 고고학적 자료로서 대변한다. 향토사학자가 주장하는 요점은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는 일부 문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고 고고학적 자료에 대해서는 식견이 없으면서 너무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기사 내용에 대해 반박할 가치도 없는 것이 적지 않으므로, 주요한 쟁점부분만 다음에서 언급하기로 한다.
1. 2월 17일자 ‘광양 옥룡사 발굴터 가짜 의혹 눈덩이’ 데일리안 기사에서 경보선사비문을 인용하여 발굴조사된 옥룡사를 운암사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발굴조사결과, 운암사라고 주장한 현 옥룡사터에서 ‘玉龍寺’ 가 새겨진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기자의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증명하고 있다(순천대박물관 소장). 그리고 옥룡면 추산리 옥룡사 비석거리에는 도선국사와 통진대사의 비와 부도가 있어 예로부터 쌍비쌍탑이라고 전해져 온 현 옥룡사 동쪽 ‘비석거리’에서 2개체의 부도와 관련 건물지, 비편을 확인하였으므로 이론의 여지가 없다. 특히 도선국사 제자인 통진대사의 비편은 일제때 파괴되었는데 발굴조사시에 수백편이 깨어진 채 출토되었다. 깨어진 명문내용은 틀림없는 통진대사의 비편이다.(순천대박물관 소장)
2. 2월 17일자 ‘백계산과 풍수지리’기사에서 “도선국사가 처음 이곳(옥룡사)에 왔을 때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그 연못에 백룡이 살고 있었는데 숯으로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지었다는 전설에서 보듯이 … 그곳이 연못이든 물구멍이든 당연히 수맥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추산리 백계산 옥룡사는 전설과는 거리가 먼 땅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옥룡사 4차 발굴조사에서도 확인하였듯이 도선국사와 관련되는 9세기대의 유물이 출토된 연못터가 옥룡사에서 노출되었고 연못터가 메워진 그 자리에는 석렬이 확인되어 재차 건물터를 지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재의 옥룡사 중심부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다는 점은 향토사학자의 의견이 신빙성이 없음을 뒷받침한다.
3. 口傳이나 地名도 해당지역의 역사를 반영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그런데 옥룡사는 폐사된지 1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19세기말 불에 탐) 그렇게 유명한 옥룡사가 현재의 중흥산성내 중흥사터에 있었다면 주민들이 그곳을 ‘옥룡사’라고 부르는 것이 정상인데 그렇지 못하고, 추산리 현 옥룡사터만을 ‘옥룡사’라고 불리어지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실제로 5차 발굴조사(2005년 6월 발굴조사)때에 불에 탄 19세기의 법당지(가장 최근의 것이므로 가장 잘 남음)를 발굴한 바 있다.
4. 대부분의 사찰에서 부도는 해당 절에 인접하여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향토사학자가 주장하는 ‘옥룡사’(현재의 중흥사지)에서 부도(쌍비쌍탑)가 자리하고 있었던 현 옥룡사까지는 직선거리만으로도 2.5km에 달한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5. 데일리안 기사에 오류나 오해가 많다. 그만큼 취재에 허점이 많고 비난을 위한 비판에 치우쳐 있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대표적인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2월 21일자 기사에는 “발굴조사단이 광양시에 제출한 발굴조사 자료에는 유골 발굴날짜가 중요사항임에도 기록돼 있지 않았다. 이를 데일리안에서 추궁하자 뒤늦게 발굴조사단측에서 연도를 제외한 3월 9일자 기록일지를 송부했을 뿐 그 진위여부를 입증할 수 있는 보고서나 논문에는 이에 대한 기록이 누락되어 있어 의혹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발굴조사단에서는 중요 유구가 나왔더라도 그 날짜를 기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굴조사 전체기간만 기재한다. 이러한 관례를 모르고 그 구체적인 날짜가 없다고 하여 이상한 시각으로 보는 데일리안에 문제가 있다. 또한 年度가 없는 月日만 기재되어 있다고 하였는데 그 연도는 조사일지의 서두에만 쓰는 것이지 같은 연도인데 매일 年度를 쓰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6. 옥룡사가 국가지정문화재로 된 것은 문화재청과 관련 학계 전문가들이 실사하고 결정한 것이다. 문화재청과 관련 전문가들이 모두 향토사학자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7. 또한 데일리안의 취재과정상의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검증되지 않은 향토사학자의 의견은 진실이고 발굴조사된 내용과 관계전문가의 의견은 거짓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일리안 기자의 선입견은 옥룡사 진위문제를 파악하는데에 가장 큰 장애요소이다. 다시 말하면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어 기존 학계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노력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러한 접근 방법이라면, 향후 우리나라에서 어떠한 학술적인 발굴조사를 하더라도 학계의 의견보다 향토사학자의 의견을 몇 년간 수렴하는 준비작업을 거쳐야 한단 말인가?
8. 데일리안이 처음에는 옥룡사 위치문제로 시비를 걸다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던지 예산문제로 확대시켰다. 즉 광양시가 약보고서 이외 다른 자료없이 대금을 지급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관점이다.
약보고서만 받고 대금을 지급하는 것은 우리나라 어느 발굴조사에서도 동일하다. 유독 순천대박물관만 그러한 것같이 취급하여 의혹부풀리기에 힘을 싣었다. 발굴조사가 끝나고 약보고서를 제출한 후 짧게는 2년, 옥룡사같이 연차적으로 발굴조사하는 경우는 발굴조사가 완전히 끝난후 보고서를 제출한다. 왜냐하면 산성이나 절터의 경우는 동일 공간에서 건물터간의 중복이 심하여 십여차례 중복된 경우도 있다. 옥룡사의 경우, 천년 이상 지속된 절이어서 그 중복이 특히 심하다. 건물터간에 서로 맞물려 있어 서로간의 관련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1-2번의 조사로는 보고서의 작성이 불가능하다. 이는 문화재청에서도 인식하고 있는 바이다. 발굴이 끝난 후에는 유물의 세척, 유물의 접착, 유물의 실측, 유물의 사진촬영, 유구(건물터의 구조 등)의 트레이싱, 유물의 보존처리, 유물의 자연과학적 분석, 유구와 유물의 성격 파악, 종합적 고찰 등의 다양한 과정을 거쳐 보고서가 작성되고 최종적으로 보고서가 발간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예산이 소요되므로 정식 보고서가 나오기전에 대금이 지급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