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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이 깔아뭉갠 범죄 입증 자료들(두번째 글) 등록일 : 2006-08-11 16:09

대통령님과 국민에게 호소합니다.


아래의 글은 지난 4월17일부터 21일까지 인터넷신문 브레이크뉴스에 실린 것을 더 자세하게 보충한 내용입니다. (http://www.breaknews.com)


검찰이 깔아뭉갠 범죄 입증 자료들(두번째 글)


사유지를 불법으로 훼손한 사실을 자백 받다


대한민국 검찰은 범죄를 입증할 확실한 자료(녹취록)를 제가 제출했지만 제가 제출한 증거는 단 한 가지도 채택하지 않고 범죄자들의 거짓 진술, 조작 자료 등만을 채택하여 도배하듯 기록해 놓았습니다. 과연 검찰은 범죄를 파헤치는 기관인가요? 범죄를 은폐하는 기관인가요? 아무리 권력을 손에 쥔 검찰이라 해도 태양을 손으로 가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제1차 공사를 담당한 현대건설의 정기채 차장이 대만으로 전근 갔다는 말을 듣고 저는 비행기를 타고 2002년 12월 16일 대만으로 갔습니다. 대만 비행장의 한 식당에서 정씨와 대화했습니다. 정기채 씨의 허락 하에 녹음한 녹취록을 인용하겠습니다.


정기채(이하 기) ; 우리가 작업 지시 받기로는 사토장은 충주댐으로 사토하는 것으로 지시를 받았어요.

정선숙(이하 선) : “그런데 그 산 70번지에서 그 산주가 정선숙인데 제 산이거든요. 그 산 70번지 사유지에서 그 공사를 하신 걸로 나오는데요. 그 때 그 사유지 어디 어디 침범해가지고 공사를 했습니까?”

기 : “예, 그 , 예~ 그 때 경사 붕괴된 지역에는 경사가 심해가지고...“

선 : “예.”

기 : “산 뒤편으로 올라가는 길을 이제 만들었지요.”

선 : “예.”

기 : “이제 산림 일부 훼손하고 이제 길을 내서 위로 올라갔는데...”

선 : “예.”

기 : “그 산 꼭대기에 산 70-4번지 하고 5번지를 침범했지요. 사유지를...

선 : “아, 그게 정선숙, 사유지를 침범한 것이 사실이지요?”

기 : “사실이지요. 사실인데...”

선 : “그 시기는?”

기 : “12월 9일부터 시작을 한 것 같아요. 약 보름 정도 작업을 한 것 같아요.”

선 : “그러면 여기 탄지리 산 70번지에서 공사를 하라는 지시는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기 : 어, 그 때 우리 현대건설이 공사하고 있는 데는 신단양 매포 현장인데 국도 5호선 확장공사지요. 거기에 발주처가 대전국토관리청인데 그 탄지리도 충청북도 같은 지역이라서 그 대전국토관리청 신명섭 감독한테 작업 지시를 받았지요.“

선 : “그 때 산주한테 통보를 하셨나요?”

기 : “그 통보는 우리 시공사 사항이 아니라고 저, 대전국토관리청에서 산주한테 통보를 해야 할 사항이기 때문에...”

선 : “그리고 또 한 가지 여쭤보겠는데요. 주민들 얘기를 들어보니까 현대건설에서 산 70번지에서 공사를 하면서 흙을, 돈을 받고 팔았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요?”

기 : “음~~”

선 : “그 흙을 샀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 원씩 그 흙을 사서 로얄관광이라는 집을 지었는데 그 집 지은 사람들이 샀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기 : “그 때 우리 신단양 매포 현장의 하청사가 구산토건이었어요. 우리는 구산토건에다가 일을 시켰어요. 거리가 멀어서 우리 현대 직원은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 가서 확인하고 그랬는데...”

선 : “예.”

기 : “아마 그 구산 직원들이 그 흙을 판 것 같아요.”


5억 원 공사에 2억 2천만 원 들었다면 나머지는?


저는 1999년 8월에 단양에서 정기채 과장과 대화했습니다. 이미 검찰에 제출한 공무원들의 부정 혐의를 드러내주는 녹취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정선숙(이하 선) : “대전국토관리청은 한수면 공사에 공사비 5억원을 집행했다고 공문까지 보내 놓고 나서 말썽이 생기자 제1차 공사비 5억 원은 한수면에 들어간 것이 아니고 단양 다리공사 설계 변경비로 준거다 그랬는데...신용섭이가 공사하지 말라고 할 때는 무슨 시나리오가 있었어요?“

정기채(이하 기) : “처음엔 공사를 하라고 해놓고 일주일쯤 지나니깐 신명섭이가 공사를 하지 말고 끝내라고 재촉을 하더라고. 그래서 15일 일하고 철수한 거예요.”

선 : “지네들이 양심이 있으니까 한수면에 들어간 게 없으니까 단양에다 붙이는 거야.”

기 : “우리는 구산에 분명히 돈을 줘야 하거든요. 그 전 서류에 보면 2억 한 2천만 원 되더라고요.”

선 : “서류상에 한수면에 나간 게 2억 2천만 원이라고요?”

기 : “토공하고 토공도 토사가 있고, 뭐 암이 있고 이렇게 두 가지로 돼 있더라고요.”

선 : “호수에다 흙 버린 것도 다 돈 준 걸로 나와 있어요?”

기 : “예. 주고 그 다음에 지난번에 그 방호벽 막은 것 있잖아. 그거 하고 운반비는 그게 토공 작업이죠. 서류상으로는 주로 토공으로 들어갔어.”

선 : “평상시에도 다 그렇게 하는 거예요?”

기 : “그런 이권 관계가 있으면 그렇지마는...2억 얼마는 청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구산으로 가고 우리는 이문을 안 남겼다고 그러더라고. 최소한 청으로 2억 5천만 원은 안 갔겠나. 간 거는 사실이야. 청에 간 돈은 우린 모르고. ..담당만 알지 모르고...”

선 : “그런데 한수면 거기 서류가 없잖아요.”

기 : “그러니까 일부러 없앤 거지. 뭐 비리가 있으니까.”

선 : 아, 서류가 처음에는 있었는데 그걸 갖다가 말썽이 생기니까 이쪽으로 붙였다고 설계 비용을 줬다고 하니까 그 서류를 다 폐기한 거 같아요.“

기 : “예. 계약서는 구산에 여기 있는 거하고 같이 되어 있는 거고. 예산이 5억 원으로 나와 있으니까 청에서는 우리한테 분명히 5억 원을 줬다고 얘기하겠죠. 그러면 5억 원 중에 현대건설 2억 원 주고 자기들 3억 원 받았다고 하면 안 되잖아. 일단 현대건설로 나와 가지고 이게 다시 자기네들한테 가야지.”


2004년 10월 11일 정기채 차장과의 대화기록


정기채(이하 기) ; “그 모든 콘트롤하고 조작한 게 신명섭이야. 그게 그게 보면 자기가 쑥 빠져 나가려고 실지로는 우리는 국토 대전국토관리청인데 그거 원래는 그 사고로 나는 대전 국토관리청에서 응급 복구하니까 우리가 해야 될 것 같은데 자기들이 아닌척하고 빠지기 위해서 이 공사를 또 충주국도에다 넘겨준 거란 말이야.”

정선숙(이하 선) ; “신명섭이를 잡아넣어야 되는데......”

기 ; “신명섭이를 잡아넣어야 되는 건데. 그놈이 키를 가지고 있어. 그게 보통 놈이 아니거든 .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내가 볼 때는 현장에 그냥 한 달에 한번 정도 오고 ”

선 ; “한 바퀴 돌고 돈이나 받아가고 .”

기 ; “ 예. 그러니까 계좌추적을 하면 돼. 그 현대건설에서 그 구산토건으로 또 갔는가 안 갔는가.

선 ; “ 정 선생님, 그때 그랬잖아요. 계약도 안 하고서 공사를 하라고 했다고. 그런데 감사원에서 온 공문에는 수의계약을 했다고 적혀있더라고요.”

기 ; “계약 안 했다고요. 신명섭이에게 추궁을 해야지 그게 일이 풀리지. 그거 신명섭이 잡을라면 아까 얘기한대로 계좌추적밖에 없어요. 그것만 되면 꼼짝 못해. ”

선 ; “한수면 건 말고 다른 공사도 그런 식으로 해요?”

기 ; “일반 공사는 얼마 얼마 다 내역이 나와 있잖아. 이거 같은 응급공사 사고 같은 것은 두리뭉실해서 십억 들어갔다 해도 그만이고 이십억 들어갔다 해도 그만이라 저런 거 하나 딱 걸리면 저놈들이 완전 살판나는 거라.”

저는 시행청과 시공사 간의 결재 수단은 현금이 아닌 계좌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대전지방 국토관리청이 현대건설로 5억 원을 입금했는지의 여부와 현대건설의 하청회사인 구산토건으로 들어간 2억 2천만 원 외의 2억 8천만 원이 어디로 갔는지를 알기 위해 왜 계좌추적을 하지 않는지요? 검찰이 직무유기를 하는 동안 국민의 피를 빨아먹는 빈대들은 배를 두드릴 것입니다.


토사를 도둑질하여 돈을 받고 판 시공사 직원들


저는 제2, 제3차 공사에서 시공사 직원들이 제 소유의 산 토사를 대대적으로 도둑질하여 팔아먹은 사실을 확인하기 위하여 1999년 말부터 탄지리 마을을 돌며 녹음기를 휴대한 채 주민들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녹취록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토대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시공사들은 사고 직후 시행된 제1차 공사 때 선착장을 짓고 있던 로얄관광산업이 트럭 당 1만 원으로 제 산에서 나온 토사를 구입했습니다. 제2차 공사 때도 로얄관광산업 선착장과 인근 연안이씨종가의 부지에 적어도 수천 트럭 분량의 토사를 5천원에서 먼 곳은 2만원에 팔았습니다. 그들은 제3차 공사에서도 제 소유인 산의 토사와 사고지와는 상관도 없는 건너편의 산70-3의 제 야산을 아무런 상의 없이 마구 허물어버리고 그 토사 또한 종가 부지, 로얄선착장, 유스호스텔, 송계리 등에 한 트럭 당 2만 원 안팎으로 판매했습니다.



제가 검찰에 증거 자료로 제출한 녹취록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O 이봉훈(인근 이씨 종가 종친회 총무)


정선숙 : “거기 5천 원씩이었잖아요. 그 집은?”

이 : “우린 5천 원씩이지.”

정 : “몇 차례나 가져다 부었길래 그렇게 대단지가 된 거요? 어느 정도 부어야.”

이 : “세다가 잊어 버렷지 뭐.”

정 : “영수증 안 받았어요?”

이 : “어이(에이), 돈을 주면 쌀(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돈을 줘야 안 걸린다며, 안 걸린다며?”


O 김수복(마을 주민)


정 : 몇 백만 원씩 줬죠?“

김 : “가까운 데는 5천원이고 먼 데는 만원씩이야.”

정 : “선금으로 다 준다 그러던데요?”

김 : “선금 줘야지. 그건 말하자면 몇 차 갖다 부으려면 몇 차 값 달라고 하고 자꾸 실어다 부었다고 돈부터 받고 실어다 준 거야. 그 값어치를.”


O 남원삼(로얄관광산업 관리부장)


남 : “거저는 안 돼.”

정 : 한 차에 얼마예요?“

남 : “한 돈 만원씩 주고 사야 돼. 거리가 있기 때문에.”


O 석희주(송계 문화마을 주민)


석 : “전체 물량을 가지고 아마 계약을 했는데 중간에서 ‘차(트럭)당 하자’고 해서...”

정 : “얼마나 했어요?”

석 : “하루, 한나절 채웠는데 흙이 불어나지를 않아. 무작위로다 차(트럭) 3대를 세워가지고 한 쪽에 부으라고 그랬지. 우리도 공사지리(공사터) 파놓은 게 있으니까 그걸로 떠보면 알잖아요.”

정 : “그럼...”

석 : “한 바가지(트럭) 까보니까(확인하니까) 반차씩 싣고 왔더라고 반 차.”

정 : “그것들이 그런다고요.”

석 : “여기서 차(트럭) 당 해가지고 흙에서 한 4천만 원 날라갔어. (흙을 채우지 않고 실어 와서) 붙잡고 이야기를 하니까 과적에 걸리면 어떻게 하냐 이 얘기야. 그런데 과적에 걸릴까 봐 ㅊ 파출소, ㄷ 파출소, 우리가 하마(벌써) 파출소에 다 이야기 해놨어.”


O 김준식(송계휴게소)


정 : “2만원이면 되겠어요, 여기?”

김 : “여기는 2만원하면 돼. 이런 데 하면.”


O 이봉훈(종가 종친회 총무)


이 : “(내가 자꾸 캐묻자) 아, 지(제) 돈 주고서 그게 뭔데, 우리가 불법이야 그게? 돈 준 놈이 무슨 죄가 있어!”


O 이찬규(종가 종친회 전 총무)


이 : “천만 원은 안 들어갔을 거야. 흙 값만.”

정 : “그럼 천만 원 가까이는 들어갔구만요?”

이 : “응 가까이 돼. 그거 뭐 자꾸 그렇게 꼬치꼬치 물어봐? 대림이 걔들은...”

정 : “대림개발?”

이 : “수석에서도 좀 실었고, 수석 버리면서도 돈 벌고, 공사 따가지고 벌었단 이야기야.”

정 : “그 집만 받은 것도 아니잖아요. 송계도 받고 동네 이웃에도 그걸 다 받았는데.”

이 : “아니, 한두 군데 갖다 부은 게 아니야. 내가 이거 수십 군데 갖다 부어줬어.”


공무원들이 증거를 조작하기까지

그러나 대전지방 국토관리청과 충주국도유지건설사무소 직원들은 제가 녹음해간 이후 토사를 구입한 주민들을 찾아가 토사는 받았지만 돈을 주지는 않았다는 내용의 각서를 요구하는 등 증거를 인멸하려 했습니다. 다시 종가 종친회 총무와의 녹취록을 살펴보겠습니다.


정 : “신명섭(대전지방 국토관리청 직원)이 국도유지 사무실에 와 가지고 오라 그래서 각서 써줬잖아요.“

이 : “써줬지. 오라고 그러긴 저들이 뭐 그래. (전화가 왔길래) 내 간다고 했지. 오라 그러긴 저놈들이 오란다고 내가 가나?”

정 : “그래 각서 쓰리고 해서 그냥 써서 도장 찍어줬어요?”

이 : “그건 생각 안 나고...아이(에이), 좀 써달라고 그러기에, ‘아, 나 각서 쓸 줄도 모른다’고 하니까 자기들이 부를테니까 쓰라고 그러더라고. 그러기에 썼지 뭐. 백지에.”


저는 나중에 또 이씨를 만나 증거 인멸 상황을 확인했습니다.


이 : “아! 세상에 별꼴 다 봤어 대전서 또 왔더라고, 뭐 과장인지, 무슨 뭐...”

정 : “허모 과장이라고 그래요?”

이 : “무슨 과장인지 글쎄. 거기 가서...무슨 과장인지 왔더라고. 나보고 꼭 좀 써달라고 그래. 어떻게 쓰는 줄도 모르고 나하고 연관된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쓰느냐니까, 나는 쓸 줄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자기가 뭐 어떻게, 어떻게 했다고 해줘서, 내가 보고 썼을 거야.”

정 : “뭐라고 썼어요. 내용이 뭐요?”

이 : “뭐 거기 그 탄지리 건, 사토장, 그 관계로 사토하는 과정에서 돈을 주지 않고, 무상으로 사토했다. 그랬나? 뭐라고 분토를 했다 그랬던가?”


검찰은 왜 증거를 채택하지 않았나?


하지만 검찰은 왜 이런 녹취록을 범인들을 처벌하기 위한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을까요? 이들은 검찰에만 가면 왜 말을 바꿀까요? 왜 그들은 정직한 주민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요? 이들을 증거로 채택하면 범인들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검사가 범인들을 처벌할 의지가 없고, 가령 처벌할 의지가 있더라도 상부에서 압력을 넣거나 밖에서 거절할 수 없는 청탁을 해올 경우에 제대로 수사할 수 없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검찰은 증인들의 진술에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는 방법을 썼던 것입니다.


O 2002년 5월 31일에 충주지청 권경일 검사실에서 신문받은 내용을 소개합니다.


조광호와 저는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습니다. 조광호가 녹취할 때와는 달리 검사 앞에서 횡설수설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검찰과 정선숙의 신문, 답변 내용입니다.


문 : “진술인은 조광호에게 녹음테이프를 들려주었지만 당시 충주호 선착장 연안 이씨네 종중 땅 로얄관광으로 실어 날랐는지는 모른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여러 사람들이 똑같이 흙 팔아먹고 산 것을 그렇다고 시인했는데 조광호도 녹취록에는 여러 차례 흙을 팔고 샀다고 얘기했는데 오늘 여기서는 말을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실대로 말을 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들어 모른다고 허위로 진술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문 : “진술인은 금일 조광호와 대질조사를 받았는데 이에 대하여 참고로 할 말이 있나요?

답 : “조광호는 금일 조사를 받으면서 조사 내용에 대하여 얼굴을 손으로 움켜잡고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울다가 내가 이런 일을 했냐며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때리고 나 같은 놈은 죽어야 한다고 두 손으로 목을 잡고 난동을 부리자, 검사님이 방에서 나와 야단치며 말렸습니다.”


O 또한 대전지검 장원 검사실의 박종복 수사관은 2002년 8월 26일에 장 검사에게 한 수사보고에서 피의자나 참고인들의 거짓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여 절도행위를 파헤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의 수사보고를 인용해보겠습니다.


피의자 김사홍 : “현장소장에게 토사 반출시 감독관청 직원의 확인 하에 지정한 곳에 반출하라고 수시로 지시하였기 때문에 돈을 받고 토사 반출할 수 없으며, 손기웅(대림개발 토목기사)의 말은 고소인이 꾸며낸 것으로 생각됨. 녹취록은 정선숙이 이만승 등에게 전화하여 술을 사준다고 유인하여 유도신문으로 대화하여 녹음한 것으로 생각됨.”

(저는 술을 사준다고 유인한 사실이 없습니다)


다음으로 오문성씨에 대한 녹취록과 검찰에서 기록한 오문성에 대한 조서내용을 예로 들겠습니다.

오문성 : “서울에 사는 친구 이학규가 부탁을 해서, 대림개발에게 강 건너 이학규 밭에 들어갈 흙을 대림개발 토목기사 손기웅에게 부탁했더니, 손기웅은 이학규 밭을 보고 나서 오문성에게 약 250차에서 300차분 들어갈 테니 300만원을 준비하라고 하면서, 흙을 붇기 전에 150만원을 내고, 흙을 다 부었을 때 150만원을 내라고 했지요. 그래서 계약금 50만원까지 준비하고 토사반입 예약을 했는데 추석까지 기다려도 흙을 주지 않아 가보니까, 흙이 없다고 하여 반입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조서에는 위 문장 밑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 당시 정선숙이 술을 사주어 취한 상태에서 대화한 것으로 녹취록상의 ‘강 건너에 150차 150만원, 300차 300만원 받고 팔아 먹었다’는 등의 말을 한 기억이 없음.


그러나 정선숙 본인은 술을 사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2006년 3월 8일 충주에서 오문성을 만나 복사해온 검찰서류를 보여주면서 당신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펄쩍뛰며 절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검찰은 다른 참고인들의 조서도 이런 식으로 자의적으로 진실을 부정하고 호도하였습니다.

이처럼 피해자가 사비를 들여서 고생 끝에 파렴치한 범인들의 결정적인 범죄 입증 자료를 만들어서 제출해도 검찰은 그 자료를 뒤집는 진술만을 받아들여 ‘혐의 없음’ 결정을 내렸던 것입니다.

힘없는 서민이 온갖 힘과 정성을 기울여 검찰에게 수사에 필요한 밥을 지어다 주니까 퉤하고 침을 뱉는 격이었습니다. 참으로 억울하다 못해 분통이 터질 일이 아닙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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