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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 '간이역' 등록일 : 2010-10-04 11:56
가끔 마음도 심통을 부린다. 있을 때는 별 관심도 없던 게 없어진다고 하면 확 끌린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평소엔 눈길도 주지 않던 곳이 곧 사라진다 하면 꼭 한번 가보고 싶어진다.
참으로 묘하다. 그래서 이 여행이 끌린다.
나스페스티벌(nasfestival.com)이 '사라져가는 것들,
잊혀져가는 것들'의 저자 이호준 작가와 함께 진행하는 '사라져가는 것들 답사여행'이다.
↑ 지도에도 없고 검색으로도 나타나지 않는 경전선 사라진 간이역을 찾는 느낌이 색다르다. 휘어지던 곡선이 그대로 살아 있는 철길은 오래된 정물 같다.
메뉴도 다양하다. 원수와 꼭 마주친다는, 경북 영주에 딱 하나 남은 오리지널 외나무다리,
정말이지 꼭 하나 남은 '마지막' 주막, 나룻배에서 뗏목, 간이역까지 유별난 것도 많다.
끌린다면 부리나케 떠나자. 가는 동안 혹시 뿅 하고 사라질지 몰라서다.
정말이지 희한한 역이 있다. 노선도에도 없고 검색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자리에 가면 있다.
역사도 플랫폼도 뽀얗게 먼지가 쌓인 채 남아 있다. 바로 사라진 간이역들이다.
지난 20일 광주 송정역 경전선 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느린 이 기차가 다니는 길에는 사라진 간이역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경전선 속도는 시속 30㎞(곡선 구간) 남짓. 어기적어기적 가다 보면 고속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숨은 '보석' 간이역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300㎞ KTX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굼벵이 경전선만이 주는 뜬금없는 행복이다.
◆ 플랫폼만 남은 석정역
= 능주역에서 순천 방향으로 5분 정도 가면 왼쪽편 길에 폭탄을 맞은 듯 앙상한 뼈대만 남은 역사 같은 게 보인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석정역. 그 옆에는 구멍가게만 전리품처럼 남아 있다.
구멍가게 주인인 듯 보이는 노파는 경계의 눈빛이 역력하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역전 최고의 명당에서 짭짤한 수익을 냈을 터.
석정역이 사라진 것처럼 구멍가게 역시 유령처럼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석정역은 원래부터 플랫폼만 있는 역이다. 주민들 사이에는 "손만 들면 기차가 섰다"는 거짓말 같은 얘기도 들린다.
이거 꽤나 운치가 있다. 덩그러니 남은 플랫폼, 녹슨 철길. 그래도 철마는 달린다.
석정역 인근에는 유적이 많다. 먼저 가는 길에 만나는 삼충각.
임진왜란 중이던 1593년(선조 26)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충의공(忠毅公) 최경회와 문홍헌 장군,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조현 장군 등 세 충신을 기리기 위한 누각이다.
지금도 2인용 텐트 크기 정도의 앙증맞은 누각 3개가 강을 굽어보며 서 있다.
전면을 향해 맨왼쪽이 최경회의 정려요, 가운데가 조현의 정려, 우측 것이 문홍헌의 정려다.
도로에서 4m 정도 높이 절벽에 나란히 둥지를 트고 있다.
또 있다. 그 유명한 고인돌. 국사책에 꼭 등장했던 석정리 유적이 바로 이곳이다.
시간이 없어 가보진 못했지만 1만여 개 돌이 흩어져 있다고 한다.
◆ 이름만큼 예쁜 앵남역
= 앵남이라니. 이름만큼이나 앙증맞은 간이역이다. 예전에는 남평과 화순을 이었지만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
현장에서 보면 이곳에 도대체 어떻게 역사가 있었을까 싶다.
역사에서 불과 5m쯤 떨어진 곳이 바로 건널목.
당연히 건널목을 건너지 못한 채 열차를 세웠을 테고 꽤나 긴 열차가 오면
머리쪽만 역사에 처박은 채 뒤로 꼬리를 길게 늘어뜨렸을 기형적인 모습이 생각난다.
그래서일까. 사고 역시 많았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선로가 논두렁 위에 올려진 듯하지만 불과 10년 전만 해도 아래가 바로 낭떠러지인 다리 난간 위였다는 것.
멋모르던 시골 아저씨들은 "어? 앵남역? 벌써 다 왔네" 하면서 그냥 무턱대고 내려오다(당시는 기차에 문이 없었다.
지금은 자동문이다) 그대로 떨어지는 사고가 빈번했단다.
앵남역 바로 앞에는 아직도 '김치 쌈밥' 간판이 크게 내걸려 있다. 버섯 모양으로 생긴 음식점이다.
광주 석정에서 순천까지 이어지는 무궁화호 구간에는 석정과 앵남 외에도 만수, 도림 등 사라진 역사가 꽤 많다.
다시 한번 강조한다. 기어이 봐야겠다며 조급한 마음을 먹으면 절대 보이지 않는 게 이들 역이다.
느릿느릿 느긋하게, '그냥 지나치면 어때' 하면서 다니면 희한하게도 보인다.
속도의 가치만으로는 절대 잡을 수 없는 게 느림의 가치다.
※ 취재 협조=코레일 광주 본부
[송정(광주) = 신익수 여행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