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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엔 봄, 한밤중엔 여름, 새벽엔 겨울...세 계절 별자리 하룻밤에 여행 등록일 : 2010-09-24 15:53
아마추어 천문가들과 함께한 '무박2일'별자리 여행
지난 21일(토) 오후 10시 경기도 의정부시 녹양동 경기북과학고등학교. 어둠이 가득한 교정으로 한 무리의 승용차들이 들어왔다. 차 문을 열고 내린 사람들의 손엔 크고 작은 가방이 들려 있다. 이들은 초록색 비상등만 켜진 과학고 본관 현관을 통해 5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사위가 캄캄한 옥상. 서쪽 하늘엔 보름을 사흘 앞두고 부푼 달이 떠 있고, 동쪽 하늘엔 목성이 반짝이고 있다.
이들이 가방에서 꺼낸 물건은 천체망원경과 카메라. 아마추어천문인의 모임인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www.kaas.or.kr) 회원과 가족들이다. 민간자격증인 ‘2급 천문지도사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실습’차 이곳을 찾았다. 모임 장소로 경기북과학고를 택한 건 이곳이 고가의 전문 천체관측 장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옥상 한쪽엔 방사선과 같은 우주선(宇宙線, cosmic rays) 측정 장비가, 바로 옆엔 대당 가격이 4600만원인 구경 16인치짜리 반사망원경이 설치된 천문대가 마련돼 있다.
서울 근교이긴 하지만 주변에 가로등 등 인공 불빛이 적어 별을 보기에도 썩 나쁘지 않은 환경이다. 회원 중 한 명인 조영우(43)씨가 이곳의 지구과학 교사인 덕분에 장소도 어렵지 않게 섭외할 수 있었다. 조씨는 서울대에서 학부는 지구과학, 대학원은 천문학과를 졸업한 사실상의 ‘프로’다. 조씨 일행이 옥상 한가운데 돗자리를 깔았다. 가방 속에서 족발과 막걸리·맥주·김밥·옥수수가 쏟아져 나왔다. 새벽까지 별을 보기 위한 ‘필수 보급품’이다.
이날 회원 중 가장 인기를 모은 사람은 양주회천초등학교 교사인 이학래(47)씨. 별의 움직임을 따라 추적할 수 있는 자동추적 적도의(赤道儀, equatorial telescope)를 갖춘 직경 4인치의 굴절망원경을 가져온 덕분이다. 자동추적 적도의는 별의 움직임을 따라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도록 모터를 단 전자장비다. 천체사진을 제대로 촬영하기 위해선 필수다. 이씨의 장비는 좌표나 별의 이름을 입력하면 천체망원경이 자동으로 해당 별을 찾아 방향을 잡아준다.
이씨는 15년 전 교사로 첫 발령을 받고 아이들과 유명산에 놀러 갔다가 별에 푹 빠지게 됐다. “집에 돌아와 곧바로 90만원짜리 천체망원경을 샀죠.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 학생들과 별을 보러 다닙니다. 아이들 인성 교육에도 별 보기만 한 게 없어요.”
이씨가 목성으로 방향을 잡았다. “야, 목성 줄무늬가 보인다! 위성들도 보여.” 변리사 학원 강사인 이민경씨가 탄성을 터뜨렸다. 기자도 호기심에 천체망원경에 눈을 갖다 댔다. 목성 좌우로 유로파·칼리스토·이오·가니메데 등 위성 4개가 밝은 점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아빠, 나도 보여줘.” 아빠를 따라온 조영우씨의 막내아들 원재(7)군이 보챘다.(사실 이날 목성에 소행성이 충돌하는 드문 천체 현상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이를 목격한 사람이 없었다. 일본에서 아마추어 천문가 두 사람이 관측에 성공, 한국 측에 소식을 알려왔다.)
조씨는 초록색 광선이 나오는 레이저 포인터로 밤하늘 여기저기를 가리키며 장남 민재(12)군에게 별 얘기를 해준다. “잘 봐. 저기가 북두칠성이야. 이쪽엔 카시오페이아도 보이지? 여기가 바로 북극성이야.” 초록색 레이저광선이 외줄기로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민재군의 눈이 아빠 손에서 쏘아 올려진 광선 끝을 따라 움직였다.
잠시 뒤 이학래씨가 적도의 입력창에 ‘moon’이라고 써넣자, 천체망원경이 ‘웅~’소리를 내며 서쪽 하늘의 달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민경씨가 캐논 DSLR 카메라 EOS 500D를 꺼내 천체망원경과 연결했다. ‘찰칵, 찰칵’ 소리와 함께 카메라 액정화면(LCD) 창에 달의 모습이 담겼다. 맨눈으로 보면 그저 매끈했던 달 표면에 울퉁불퉁 운석구(crater)가 가득하다.
오후 11시, 회원들이 카메라와 천체망원경으로 별 보기에 여념이 없는 사이, 조씨의 막내 원재군이 돗자리에 누워 “아빠, (집에) 가요”를 연발했다. 밤하늘 고요함이 가득했던 옥상에서 회원들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전 1시30분, 어둠이 깊어간다. 조씨가 과학고의 16인치 반사망원경으로 천왕성을 관측한다. 지구에서 30억㎞ 떨어진 천왕성이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고 있다.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84년이나 걸리고, 하늘엔 27개의 달이 뜨고 집니다.” 조씨의 설명이 이어진다. 오전 2시, 서산 너머로 달도 넘어가고 하늘은 더욱 캄캄해졌다. 지난 여름 동안 계속된 비와 짙은 구름으로 별 보기에 목말라 있던 회원들은 모처럼 깨끗해진 밤하늘에서 별 사진 담기에 여념이 없다. 오전 3시쯤이 되자 남동쪽 하늘에서 구름이 조금씩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회원들이 쌍안경을 하나씩 들고 돗자리에 드러누웠다. 밤하늘 가운데 떠 있는 안드로메다 은하를 찾는 게임이다. 지구에서 230만 광년이나 떨어진 별세계이지만 쌍안경으로도 어렵지 않게 관측할 수 있단다.
이날 모임은 오전 4시 구름이 하늘이 덮고 나서야 끝났다. 조씨의 두 아들 민재와 원재도 이날 밤을 꼬박 지새웠다. 중학교 지구과학 교사라는 서윤희(31)씨는 “하룻밤에 세 계절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별 보기”라며 “저녁엔 봄 별자리, 한밤엔 여름 별자리, 새벽이 가까워지면 겨울 별자리까지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는 아마추어 모임이긴 하지만 일반인을 대상으로 천문지도사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는 천문 모임이다. 이 때문에 지구과학이나 천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인터넷에는 별보기 자체만을 목적으로 하는 모임이 많다. 네이버(www.naver.com) 카페의 별하늘지기(cafe.naver.com/skyguide)는 회원 수 1만4700여 명의 대표적 동호회 모임이다. 다음(www.daum.net)에는 회원 수 1만7000명의 ‘별과 동화(cafe.daum.net/cosmos)’가 유명하다. 이 밖에도 서울천문동호회(sac-club.co.kr)·천문노트(www.astronote.org)·야간비행(www.nightflight.or.kr)·별만세(www.byulmanse.com), 아마추어 디지털 천체사진가 모임인 ‘나다(www.astronet.co.kr)’ 등이 잘 알려져 있다.
▶천문지도사 천문대나 각종 별 보기 행사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천문에 대한 설명과 지도를 해준다. 아마추어 천문가 중 상당수가 목표로 삼고 있는 민간자격증이다.
▶굴절망원경 앞쪽은 빛을 모으는 볼록한 대물렌즈, 뒤쪽은 맺힌 이미지를 확대하는 접안렌즈로 이뤄진 망원경. 화성·목성 등 가까운 태양계 내 행성을 보는 데 적합하다.
▶반사망원경 앞쪽에 대물렌즈가 없고 뒤쪽에 빛을 모으는 오목거울이 달려있는 망원경이다. 성운·성단 등 먼 거리의 천체를 보는 데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