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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들강 유원지 등록일 : 2015-04-18 12:00

 

  

나주 남평 드들강 유채꽃밭에서 노오란 봄 맞으세요

 

 

남평읍 광주가톨릭대학교 인근 드들강 솔밭유원지 · 지석천 근린체육공원 일원

 

 

 

 


↑ 남평강변도시(조성중) 일대 유채밭

 

 

 



↑ 가슴아픈 역사를 간직한 남평 구다리

 

 

 

답답한 콘크리트 벽에 둘러 쌓여있다 잠시 시간을 내 야외에 나와 걷기만 해도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느낌이 든다.

호남의 젖줄, 영산강의 지류인 나주 남평 드들강 [지석강]은 해마다 봄이 되면 꽃말이 ‘쾌활’인 유채꽃이 싱그럽게 물결친다.
드들강과 남평 들녁에서 바람에 넘실대는 유채꽃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유년 시절의 추억과 향수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드들강 유원지는 광주 호남대 광산캠퍼스 인근 황룡강의 송산유원지와 더불어 60~80년대 광주근교 최고 나들이 장소·피서지로 인기가 높았다.

소나무와 버드나무가 어우러진 드들강변은 30년 전까지만 해도 물이 맑고 금모래가 많았으나 대부분 훼손되었다. 최근 드들강변을 따라서 청보리와 유채꽃이 만발하고 솔밭이 우거져서 알음알음으로 상춘객들이 다시 찾고 있다. 


김소월의 시로 잘 알려진 '엄마야 누나야'는 암울했던 1920년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불어넣고 해방과 평화를 갈망한 노래로 잘 알려져 있다.

소년은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소년은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로 떠난 아버지와 형이 일제 탄압으로 목숨을 잃었다. 소년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만주로 떠나려는 엄마와 누나에게 강변의 오두막에서 살자고 애원했다. 정든 고향을 떠나야 하는 식민지 민족의 아픈 현실을 김소월은 시로 남겼다.

월북 음악가 안성현이 드들강변에서 이러한 슬픈 사연에 장엄한 곡을 붙인 이 노래는 그가 월북하여 금기의 인물이 되자 ‘엄마야 누나야’는 20여 명의 작곡가들이 편곡해 민족적인 애창곡이 되었다. 안성현 선생이 처음 곡을 만들 때는 4/4박자의 웅장한 노래였으나 2/4박자, 3/4박자로 편곡되어 경쾌한 동요가 되어 지금까지도 널리 불리워지고 있다.

 

2009년 4월 30일에는 2006년 북에서 타계한 선생의 음악적 업적을 기리는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가 고향인 나주 남평 지석강변 솔밭에 세워진 가운데 그의 생애와 업적을 추모하고 지역상권 활성화와 문화 소통의 한마당을 통한 공동체 건설을 위한 제1회 남평 드들강 유채꽃축제가 ‘안성현 선생의 흔적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4월 11 ∼ 19일 지석천 근린체육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축제에는 '모정의 세월'의 가수 한세일을 비롯, 장녹수의 전미경, 신토불이의 배일호, 내고향 여수항의 예진, 진짜 멋쟁이의 진국이, 사랑을 한 번 해 보고 싶어요의 하동진 등 인기 가수와 로컬푸드전, 세계 풍물전, 팔도문화관, 불우이웃 돕기 바자회, 나주 먹거리, 노래자랑, 7080 음악회 등이 준비돼 있다.
또 4대 품바공연과 각종 공연, 놀이기구 등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 등이 다채롭게 마련돼 지역 최대의 축제로 치러진다.


지석강 솔밭 사이 백사장에 세워진 '엄마야 누나야' 노래비는 선생의 고향 지석강 솔밭 백사장을 연상하며 민족의 광복을 희망해 만든 노래인 만큼 모티브가 됐던 장소인데서 비롯됐다.

이곳은 솔밭유원지와 생태공원이 만들어지고 둔치가 정비되는 등 지석강 친수공원 조성사업으로 시민 친화형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안 선생은 나주 남평면 교촌리 출생으로 일본 도쿄 동방음악대학을 졸업하고 귀국 후 광주사범학교, 조선대, 전남여고, 목포 항도여중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훗날 일부가 교과서에 실기기도 한 '진달래', '봄 바람', '내 고향' , '부용산', '들국화', '앞날의 꿈' 등 민족의 슬픔을 희망으로 승화시킨 노래들을 작곡했다.
특히 호남에서 애창됐던 '부용산'은 월북 인사가 곡을 만들고 빨치산에 의해 널리 불렸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부용산이 재조명 되면서 숨겨진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다.

여수 돌산 출신의 시인 박기동은 목포 항도여중(현 목포여고) 교사로 있던 1947년,  24세에 요절한 천사 같던 여동생을 보성 벌교 부용산(100m)에 묻고 돌아와 그리움에 슬프도록 아름다운 이 시를 썼다. 그리고 이듬해 목포 항도여중 음악교사였던 안 선생이 열여섯 살 여제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슬퍼하며 부용산 싯구에 곡을 붙였다.

 

애달프고 서정적인 이 노래는 해방공간과 전쟁 때 좌우대립으로 유독 많은피를 흘린 호남 지역의 한과 맞물리면서 널리 퍼졌다. 오랫동안 작사 미상, 작곡 미상의 곡으로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다.

지리산 일대에서 달 밝은 밤, 빨치산들이 불렀고 이후 유신정권에 반대하며 저항가요로 다시 불리었다.

부용산을 빨치산이 부르고 작곡가도 월북하자 작사가인 박기동은 권력으로부터 모진 탄압을 받았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1993년 호주 시드니로 이민을 갔다가 2000년 10월 1일 보성 벌교읍민의 날에 맞춰 부용산에 세워진 시비 제막식 참석을 위해 일시 귀국하기도 했다. 2003년 영주 귀국 후 이듬해 별세했다.  

누군가는 ‘부용산’을 모르면 전라도 사람이 아니며 ‘엄마야 누나야’를 모르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다고 말한다.

 

떠나온 고향, 그리운 마음을 달래보며 누구나 한번쯤 불러 보았을 동요 ‘엄마야 누나야’

인생을 한 바퀴 돌아 다시 살기 위해 최초의 지점에 서고 싶은 건[귀촌] 도시민들의 꿈이 아닐런지···

 

 

 

 

 

3월 8일 한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1922년에 발표된 김소월 “시”

1940년대에 동요작곡가로 많이 활동하신 김광수님의 곡

엄마야 누나야”!

지난주 불후의 명곡에서 조통달, 조관우, 조현 3대 부자가

출연하여 1등 했던 곡 “엄마야 누나야

1970년대 울산에 있는 xx여고 종업식 때면 운동장에서 전교생이불렸던 곡 “엄마야 누나야

 

3월 12일 한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을 보면,

영화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1968)는 1954년 KBS라디오 1기 성우 출신인 방송작가 심영식 원작의 MBC 라디오 드라마를 영화화 한 작품이다.

 주제가 <엄마야 누나야>의 작곡자 김광수 역시 배호의 셋째 외삼촌으로 그는 KBS 악단장을 지냈다.

 

2월 18일 KBS-1TV에서 방송된 설 특집 <문화빅뱅 윤건의 더 콘서트> 7회 보면,

팝핀현준&박애리가 애절한 느낌의 ‘어머님’과 흥겨운 ‘엄마야 누나야’를 현란한 춤과 구성진 노래로 선보이며 관객의 큰 호응을 받았는데 김광수 곡으로 나온다.

※ 검색창에 「엄마야 누나야」 치면 나오는 동영상 참고

 

 

 

 
↑ 광목간 1호선 국도가 지나는 남평교와 남평 구다리 사이에 장관을 이루는 유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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