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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부도 등록일 : 2007-01-25 11:03

저 어두운 바다에 자욱한 안개가 내리면

밤새 내내 당신을 태우고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우리 모두가 외로우니까.

△제부도의 매바위 - 매바위는 하루에 두 번 모습을 바꿔 앉는다. 낮의 영혼은 세상을 닮았고 밤의 영혼은 그 세상을 살아가는 고독한 인간을 닮았다. 삶의 양극을 서로 휘어 구부리며 스스로 모습을 바꿔 앉아서 뜨거운 이별을 반복한다. ⓒ민중의소리



엉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바다에 잠겨가는 사람이 있거든 부디 쫓아가 그를 안아주세요. 그가 슬프게 우는 소리를 듣거든 파도소리라 생각하고 모르는 척 외면해주세요. 아무 말 없이 그가 울도록 두세요. 문득, 그가 이곳의 추억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려거든, 아무 말 말고 사라진 바닷길 위에 배를 놓아 주세요. 네온사인 반짝이는 도회지를 떠나 바람부는 섬마을로 들어왔을 때는 그냥...

바다와 포옹하는 섬 제부도

수평선 너머, 파도마저 잠든 고독한 바다를 바라보고 서있노라면 청신한 바람을 타고 볼을 스쳐 떨어지는 아름다운 빛을 느낍니다. 거울처럼 나를 똑같이 반사해서 투영해내는 그 빛은 새소리 들리는 키작은 솔밭 오솔길을 걷는 것처럼 은은한 사랑의 노래로 반짝이며 어둠 속을 헤매이는 작은 내 영혼에게 희망과 치유의 메시지가 담긴 아름다운 등불이 되어 줍니다.

바다는 시간이 흐르지 않습니다. 먼 이상향의 세계를 머금고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우리에게 영원한 현재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입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도 미래에 대한 헛된 꿈도 없이 스스로 현재를 만들어가는 고고한 질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느끼지 못하지만 영원한 현재를 살고 있습니다. 만약 내세가 있다면 현재의 시간이 흘러 내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현재 속에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을 느끼는 사람은 과거에 집착하지도 않고 미래로 도피하지도 않습니다. 오직 현재와의 진지한 만남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깨면서 숭고한 삶과 조우하며 살고자합니다. 오늘의 나와 만날 때, 그 진실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만나고 얘기하며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바다는 오늘도 우리에게 파도를 물어다주며 삶의 해답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잃고 이리저리 쓸려 다니며 살던 기자는 무작정 떠나온 바다 앞에 서서 곤한 일상의 매듭을 풀어봅니다. 홀로 하늘을 날다 제자리에 멈춘 갈매기들과 인사하며 뭔가를 해보겠다고 요란스럽게 사는 나를 꾸짖기도 하고 만물의 흐름에 잠식되어 되돌아 보지 못하고 표류하는 나 자신도 찾아 봅니다. 세속의 시름과 아픔의 시간이 평안과 안식의 이름으로 바뀌며 지친 내 영혼이 새살로 채워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바다 앞에 서면 이렇게 넉넉하고 평화롭고 고요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은 고뇌와 성찰로 매진했던 삶의 양심도 잠시 하늘 높이 날려버리고 잊힌 추억들을 회상하며 구멍나고 찢긴 상처도 어루만져 보렵니다.

코끝에 스며드는 깊은 갯벌 내음, 그리움을 가득 간직한 스산한 바람, 외진 몸으로 웅크린 고단한 호미질, 외로이 잠들지 않는 수런거리는 안개속 거리, 삶을 이고 날개짓하는 갈매기, 바다의 일상을 간직한 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영상의 주인공이 되어 그리운 이름들을 되뇌어 봅니다.

△어둠이 내린 제부도의 개펄 - 개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난 날의 추억이 생각납니다. 그 중에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다면, 그것은 내 청춘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어린 시절의 강렬한 열정입니다. 부끄럽게도... ⓒ민중의소리



그리운 영혼과 함께하는 제부도에서의 하룻밤

설레임이 밀물처럼 부풀어 오르고 썰물처럼 사라지며 민박집 주인아저씨를 따라 제부도에 들어갔을 때는 하루 내내 바다가 갈라지는 해할 현상을 관찰할 수 있는 조금 때였습니다.

(참고: 해할현상은 해저지형의 영향으로 조석의 저조시에 주위보다 높은 해저지영이 해상으로 노출되어 바다를 양쪽으로 갈라 놓은 것 같이 보이는 자연현상으로 우리나라의 남.서해 안과 같이 해저 지형이 복잡하고 조차가 큰 지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진도, 여천, 무창포, 해간도, 제부도가 있습니다.)

바다 사이로 잠겼을 시멘트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는 기분은 작은 도시의 허름한 여인숙에 서 방랑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던 추억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미 밤은 깊어 바다인지, 길인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자정근처의 섬과 내륙 사이의 길은 때묻은 내 영혼을 생각해 보기에도 충분할 만큼 길고 포근했습니다. 한 움큼 수면제를 입에 털어넣어도 아깝지 않은 그 느낌......

그러나 제부도를 향해가는 차창 밖에는 바다로 내리뜬 내 검은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는 웅크린 영혼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저린 발걸음으로, 녹아 흐르지 않는 깊은 사랑을 찾아 헤맵니다. 붉어져 내린 눈시울로 가슴속 후벼 패인 무거운 삶의 찌꺼기를 짊어지고 노을 닮은 아름다운 사랑을 찾아 맴돌고 있습니다. 나, 어떻게 이 길을 되돌아 갈까요. 하루하루 말도 못하고 그리워만 하다가 보내온 세월, 이 현실의 무게를 어떻게 감당할까요. 오늘은 바다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싶습니다.

마음씨 후덕하게 보이는 민박집 주인장의 차에서 내려 미리 예약해둔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깨끗하고 정갈하게 깔리어진 시트, 방금 씻겨진 듯 청결한 샤워실과 시원하게 밖이 내다보이는 풍경. 편안함과 감성이 상큼한 조화를 이룬 그 방은 주인장 말씀대로 시설 좋고 조용하고 나른하기 이를 때 없는 곳이었습니다. 나는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유리창 앞에서 창을 열고 가슴을 풀어 헤쳤습니다. 검은 기운이 내려앉아 내 모습이 반사되어 보이는 창문에 갇힌 내가 싫었나 봅니다. 그냥 같이 살을 대고 싶었습니다. 이 창이 아닌 저 바다 앞에 있는 것처럼......

△제부도의 조개구이 - 자연으로부터의 위안을 새삼 느꼈습니다. 우리가 여행하는 동안 착찹하게 느꼈던 모든 것들을 단순함으로 이끌어 주는 것은 역시 먹는 것이더군요. 술도 한잔 곁들여서... ⓒ민중의소리



자유롭게 부르고 싶은 나만의 이름

제부도의 바다는 아름답거나 깨끗한 편은 아니지만, 기린 목처럼 긴 낙조를 벗 삼아 흐르는 낱개 구름에 눈이 멀며 키보다 높이 자란 수풀 한가운데 서서 시원한 바람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온몸을 전율케 하는 자연의 소리를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또 바닷가 근처 식당에서 파도와 나란히 어깨동무하며 통통하게 익은 굴밥과 갖은 생선회, 조개구이를 먹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마치, 어릴 적 친구들과 시냇가에 앉아 헤엄치는 물고기들을 처음으로 봤던 경험처럼 감질 맛나는 추억을 선사합니다.

제부도 남쪽 가장자리엔 제 마음대로 자유롭게 솟아오른 여러 바위들이 제부도의 고요한 일상을 생동감 넘치는 모습으로 바꿔줍니다. 그 중 가장 큰 바위는 앉아있는 매의 모습과 흡사하기도 하고, 예전에는 매들이 둥지를 틀고 새끼를 친 곳이라 하여 매바위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세월의 마모 앞에 향수만 가득 간직한 전설이 되어버렸습니다. 매바위는 썰물 때 밑바닥까지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주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진 속 한 장면으로 채워지기도 합니다.

파도에 부서지며 짠 거품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바위주변 위로는 갈매기들의 활기찬 날갯짓이 풍요한 오후의 영상을 연출합니다.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굴과 조개들이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손색이 없고, 특히 해가 넘어가는 일몰의 장관이 연출될 때면 숙연하고 경건한 모습으로 사람들의 욕심과 어리석음과 성냄을 씻어주고 일상의 번뇌를 잠시 잊게 해줍니다.

매바위 옆, 서쪽 해안선을 따라 1km가량의 해수욕장이 길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화방조제 이후로 모래와 개펄이 거칠어지고 지역민들의 마음마저 멍들게 했지만, 한나절 서울을 빠져 나와 바다의 싱그러움을 선사 받기에는 충분합니다. 밀물 때는 해수욕을 즐기고 썰물 때는 싱싱한 해산물 맛볼 수 있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낙조진 오후의 해안선을 따라 사랑하는 가족, 연인과 걷는 즐거움은 짧은 일정으로 떠나고 싶은 바다여행에는 그만입니다.

제부도의 맛은 수라청쌀, 꿀참외, 불낙지 등도 유명하지만 역시 조개구입니다. 민박집 아저씨의 소개로 찾아간 조개구이집은 인심만으로 이미 맛있는 곳이었습니다. 크고 넉넉함을 간직한 아주머니의 웃음처럼 담백한 항아리 칼국수와 시원하게 목줄기에 스며드는 지하수로 끓이는 조개탕이 별미입니다. 특히 싱싱한 회와 뜨거운 번개탄 위에서 체액을 뿜으며 제 몸을 적쇠삼아 구워지는 조개들을 까먹는 재미까지 어우러지다 보면 낙원이 따로 없음을 느낄 것입니다. 손수 설익은 굴을 까주시는 민박집 아저씨의 손맛과 이런저런 인생이야기 속에서 바다가 아닌 술 안에서 숨 쉬는 조개들과 사람들과 함께 제부도의 여정을 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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