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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광양]남쪽 곳곳에 함초롬한 자태로.. 등록일 : 2007-02-26 10:23

순천 금둔사 홍매화

겨울 같지 않은 겨울. 제대로 이름값 한 날이라곤 손에 꼽을 정도다. 덕분에 봄만 신났다. 이제 설이 갓 지났을 뿐인데 새순을 낸다, 꽃을 피운다 하며 온통 호들갑이다. 특히 남도는 이미 '반 봄'이다. 예년보다 10일 이상 일찍 망울을 터뜨린 꽃들이 그 증인이다. 아직은 드문드문 눈에 띌 정도지만 보름 안쪽이면 절반, 다음달 초엔 온 산을 다 물들일 기세다. 새 생명의 기운 가득한 '봄의 최전선' 남도를 돌아봤다.

<여수·광양> 글=김한별 기자 <
idstar@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
shotgun@joongang.co.kr>

여수 향일암 야산 ▶ 야생화들의 합창 교향곡

이른 봄 야생화는 눈 밝은 사람만 즐길 수 있는 호사다. 등산로 밖 거친 자갈밭이나 길섶 키 큰 덤불 아래 피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외래종에 비해 꽃잎도 꽃받침도 아주 작다. '눈' 없는 사람은 코앞에 핀 것도 못 보고 지나치기 십상이다. 여수 돌산읍 향일암 근처 야산에 있다는 '야생화 밭'을 구경하고 싶어 사진작가 한창호씨에게 SOS를 쳤다. 인근 무슬목에서 17년째 매일 일출 사진을 찍고 있는 그는 돌산읍이라면 손금 보듯 훤하다. "사람 손 타면 금방 망가진다"며 걱정하는 그를 졸라 별천지로 들어섰다.

여수 향일암 야산에 핀 변산바람꽃
우산처럼 갈라진 흰 꽃받침, 촘촘히 들어찬 여린 수술, 그 위로 빠끔 고개를 내민 깔때기를 닮은 노란 꽃잎…. '심 봤다!' 이른 봄 아주 잠깐만 꽃을 피워 야생화 중에서도 유독 보기 힘들다는 변산바람꽃이다. 어쩌다 한 송이 만나도 행운이라는데 아예 무더기다. 크고, 작고, 만개하고, 막 망울을 맺고…. 크기와 꽃 모양은 제각각이지만 봄 기운을 머금은 함초롬한 자태는 한가지다.

연분홍 꽃잎이 우아한 노루귀도 보인다. 4월에나 피는 꽃인데 올해는 벌써 봄노래를 시작했다. 나무 사이로 스며든 햇살에 고운 솜털이 한 올 한 올 살아 움직인다. 만지면 부서질 듯, 불면 날아갈 듯한 모습. 이런 가녀린 몸으로 어떻게 시린 겨울을 이기고 가장 먼저 꽃을 피웠을까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작고 여린 놈이 크고 튼튼한 놈들보다도 일찍 꽃을 피우니 더 대견한 것 아닙니까" 한창호 작가의 야생화 예찬은 끝이 없다.

돌아서는 길목에 야생화 몇 송이가 더 눈에 띄었다. 보통 5~6월에나 핀다는 봄까치풀.별꽃이다. 이쯤 되니 도통 헛갈리기 시작한다. 꽃이 성급한 걸까, 사람이 느린 걸까.

풀밭을 메울 정도로 빽빽이 떨어진 오동도 동백꽃
오동도 ▶ 섬을 온통 적시는 '동백꽃 비'

여수 오동도는 원래 겨울이 힘을 못 쓰는 '치외법권 지대'다. 함박눈 속에도 꽃을 피우는 겨울 동백 덕이다. 보통 1월에서 4월에 걸쳐 피는데 3월 중순 이후 절정을 맞는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올해는 꽃 번지는 속도가 다르다. 동백은 원래 가장 아름다울 때 송이째 뚝 떨어지는 걸로 유명한 꽃. 그 '동백꽃 비'가 벌써 섬 곳곳을 적시고 있다. 특히 섬 북쪽 전망대에서 갯바위.용굴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이미 붉게 물든 지 오래다. 쉴 새 없이 '삑삑' 거리는 동박새 울음까지 더해져 동백 군락지에만 들어서면 한순간 눈과 귀가 아득해질 지경이다.

광양 청매실 농원에 핀 매화

오동도 관리사무소 김재호 계장은 "동백꽃 피는 속도가 예년보다 10일 이상 빠르다"며 "3월 초면 만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1월 1일부터 입장료가 없어진 데다 꽃소식까지 일찍 들려오자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주말 관광객만 이미 3000~4000명을 웃돌 정도다. 평년보다 70% 이상 늘어난 수치라는 게 관리사무소 측 얘기다.

광양 섬진마을 ▶ 30여만 평에 매화 향기

다음달 매화축제를 준비 중인 광양 청매실농원 홍쌍리 여사는 요즘 그저 함박웃음이다. 농장 매화나무 가지가지마다 잔뜩 물이 올랐기 때문이다. 3월 초순에나 피던 매화가 이미 막 터지기 직전이다. 요즘 같은 날씨가 계속된다면 축제 시작 무렵에는 제법 제대로 익은 매향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단다. 언제 만개하겠느냐는 우문에 현답이 돌아온다. "꼭 다 펴야 맛인가. 만개한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막 피어나는 매화를 더 높게 치는 사람도 많아. 특히 스님이나 그림 그리는 분들은 어린 꽃을 더 어여뻐 하시지." 어쨌거나 대략 다음달 10일께면 한창일 거란다.

노루귀꽃

광양 섬진마을의 매화는 강변에서 시작된다. 섬진강가 밭둑과 강변도로를 하얗게 물들이고 내처 산 능선까지 숨가쁘게 차올라온다. 대략 30여 만 평 100만여 그루 규모. 지금은 일부 인가 주변에 홍매, 강변도로변에 백매 몇 그루가 핀 정도지만, 매화농장의 청매가 '대세몰이'에 나설 날도 머지않았다는 게 섬진마을 사람들 얘기다.

여행정보

■사진작가 한창호씨 홈페이지(www.musulmok.com)를 방문하면 향일암 인근에 핀 다양한 야생화와 신비로운 무슬목 일출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교통편=남해고속도로 순천IC를 빠져 나와 17번 국도→여수→돌산대교를 건넌다. 죽포를 지나 7번 국도를 달리면 향일암 아래 임포마을에 닿는다.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러우면 버스로 여수까지 간 후 시외버스터미널 내 금호렌터카(061-642-8000)에서 차를 빌려 여행하는 방법도 있다(소형차 기준, 24시간에 5만6000원). 여수에서 17번.2번 국도를 이어 달리면 순천을 거쳐 광양 청매실농원까지 갈 수 있다. 여수시청에서 차로 1시간30분.

■숙소=여수시청 주위에 깨끗한 모텔이 많다. 한국관광공사 우수숙박업소 인증을 받은 자이모텔(061-683-2266) 일반실 1박 4만원.

■먹거리=임포마을에서 향일암 올라가는 길에 돌산 갓김치를 파는 집이 많다. 돌산 갓은 타지 것에 비해 억세지 않고 부드럽기로 유명하다. 돌산대교에서 어항단지 가는 길에 있는 산골식당(061-642-3455)은 장어요리로 이름이 났다. 된장을 진하게 풀고 쑥.숙주를 듬뿍 넣어 느끼한 맛을 없앤 장어탕 7000원, 양념.소금구이 각 1만원. 탕.구이 모두 생물만 쓴다. 청매실농원(www.maesil.co.kr/061-772-4066)에선 사탕.젤리부터 간장.된장까지 '매실로 만든 모든 것'을 판다.

■축제=매년 3월 열리던 오동도 동백꽃 축제는 올해 여수 EXPO 유치 기원 행사 관계로 열리지 않는다. 광양 청매실농원 매화축제 다음달 1일부터 40일간. 입장료.주차료 무료다. 광양시에서 주관하는 매화문화축제(www.maehwa.org) 다음달 17일부터 25일까지. 061-797-3333.

동백꽃과 붉은 옷 여인

(여수=연합뉴스) 남현호 기자 = 동백이 정절의 꽃망울을 터트리자 이를 보던 여인들이 수줍은 미소로 답했다.

전국 제일로 알려진 동백꽃 천국 오동도. 군락지에서 아예 흐드러져 연방 카메라 세례를 받자 붉디붉은 꽃잎은 더 붉어졌다.

예년보다 따뜻한 날씨로 오동도 동백이 일찍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난 1월 1일부터 무료입장이 가능해진 오동도에 갈수록 인파가 늘고 있다.

돌고돌아 가는 길마다 동백이요, 시누대다. 동백이 머리위로 터널을 이뤄 금세 환상에 젖는다.

남의 눈치 볼 것 없다. 순간 여배우로 변신, 화려한 스크린에 자신을 넣어보는 것도 무죄다.

군락지에 어지럽게 떨어진 동백꽃마저 감미롭다. 여느 꽃들은 색이 바랜채 떨어진다. 하지만 동백은 이들과 다르다.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양분의 70%를 소모하면 나머지 30%를 간직한 채 `낙하'한다.

붉은 빛깔을 간직한 채 떨어진 동백 `무덤'을 보면 그대로 눕고 싶다.

방파제에서는 낚시꾼이 낚싯대를 드리우느라 여념이 없고 동네 아이들은 아직은 찬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조만간 큰 동백나무 70여그루가 방파제와 광장 사이에 조성되고 음악분수대에 워터 스크린이 설치되면 오동도에 또다른 볼거리가 생기게 된다.

특히 올 봄에는 오동도 구경이 더 쉬워질 것 같다. 지난달 서방파제 인도 768m를 우레탄으로 깔아 발길을 편안하게 한데 이어 3월말 이전에 주차관리소 건물이 확장되고 최첨단 주차장발권기가 마련된다.

관광홍보안내원을 두 곳에 배치, 시민과 전국 관광객들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을 제공할 계획이다.

오동도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부족한 주차장 시설의 보완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전국 제일의 관광명소 오동도 동백꽃은 지금이 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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