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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전령사...금둔사 납월매 (홍매화) 등록일 : 2007-02-26 10:21






남도에 은은한 봄의 향기… 금둔사 '납월매'

마침내 금둔사 매화가 피었다.
얼마 전 사나운 바람이 몰아친 전남 순천의 산자락. 하지만 얼음장 같은 한겨울 날씨를 이긴 매화는 당당했다. 손톱만한 꽃잎이 한파를 이기고 북풍한설에 맞서는 모습은 참으로 옹골차다. 겨울 추위를 물리치는 꽃의 기개다.

“뭐 할라고 이 추운 겨울에 피는지 모르겄네.”


금둔사 지허(66) 스님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곳 매화는 음력 12월(납월)에 눈송이를 떨쳐내고 망울을 터뜨린다. 그래서 ‘납월매’. 금둔사 납월매는 봄의 전령 매화 중에서도 가장 먼저 봄의 조짐을 알아챈다. 남몰래 봄을 느끼고 싶은 풍류객은 시끌벅적한 매화축제에 가지 않고, 금둔사에 들른다.


천지팔방이 지옥 같을 때, 납월매는 선구자처럼 핀다. 영하권을 오르내리는 날씨엔 벌도 나비도 없다. 꽃가루를 실어보낼 수 없으니 일생 최대의 숙업인 ‘사랑’도 할 수 없다. 식물에 지옥 같고 연옥 같은 엄동설한에 홀로 피는 기개. 그래서 매화는 선비에게, 승려에게 사랑을 받아왔다. 이들과 달리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는 뭇 중생에겐 흠모의 대상이었다.


“석가모니 같은 꽃 아니겠능가.”


지허 스님은 경내를 소요하면서 매화를 칭송한다. 납월매는 2600여년 전, 부귀와 안락을 버리고 고행길에 들어선 석가모니를 닮았다. 성불하지 못한 수도승은 납월매를 보면 슬프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날은 납월 8일. 하물며 납월을 송두리째 넘기고도 아직 경지에 닿지 못한 승려는 비애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은은하게 퍼지는 매향은 수도승에겐 아름다움이면서 채찍이다.


지허 스님은 1980∼83년 매화씨를 금둔사 곳곳에 심었다. 싹을 틔운 건 고작 7그루. 그나마 다년간의 실험과 시행착오 끝에 건진 매화다. 수는 적지만 매 겨울 부처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흡족하다.
재래종인 납월매는 꽃이 성글다. 마치 바짝 마른 부처의 몸매 같다. 하얀 꽃이 나뭇가지를 빽빽하게 덮은 개량종에 비하면 못나 보인다. 열매도 부실하며 번식력도 약하다. 하지만, 눈을 뚫고 나온 납월매는 향이 짙다. 매서운 추위가 뼈에 사무쳐야 코를 찌르는 향기를 얻을 수 있는 법이다.


“꽃의 생명은 향기인데, 그것을 아는 이가 많지 않지.”


우리네 꽃에 대한 정서는 향기에 있다. 선인들은 수익성 작물 따위는 잘 몰랐다. 화려한 것도 둘째로 쳤다.
옛 선비들이 그린 수묵화에 매화는 드문드문 피어 있다. 시련에 당당한 것은 사람이나 꽃이나 희소하게 마련. 꽃이 주렁주렁한 개량종은 보기에 푸짐하지만 향기가 옅다. 수명도 짧아 재래종은 수백년을 살지만 개량종은 40∼50년밖에 살지 못한다. 어쩐지 다산에 시달린 아낙 같은 인상이다.


금둔사는 순천시 낙안면 상송리 금전산(金錢山·667m)의 깎아지른 기암 에 둘려 있다. 대웅전, 설선당(說禪堂), 점화당(拈花堂), 유리광전(瑠璃光殿) 등 단아한 건물과 금둔사지 3층석탑(보물 945호), 금둔사지 석불비상(보물 946호)이 어우러져 있다. 납월매뿐만 아니라 백매(白梅), 홍매(紅梅) 등 재래종 100여 그루가 사찰의 빈 공간을 메운다. 전국을 통틀어 이만큼 매화가 많은 절이 없다. 모든 매화가 만개하는 3월엔 눈부신 ‘극락정토’가 펼쳐진다.


금둔사엔 대문이 없다. 매화향을 들이쉬면서 봄을 맞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사찰은 열려 있다. 이미 마당엔 매향에 이끌려 이곳저곳 서성거리는 손님이 보인다. 그래도 겨울바람인데 옷깃 여미는 것도 잊고 있다.


매향이 슬슬 남도에 번지고 있다. 눈을 감으니 코끝에 걸리는 금둔사 매향. 벌과 나비는 보이지 않아도 이미 봄이 닥친 모양이다.


순천=글·사진 심재천, 그래픽 최진영 기자
jayshim@segye.com
낙안읍성 위 금둔사쪽으로 향했다. 북풍한설 속에 신선한 진분홍 매화와 매혹적인 그 매향을 애인이듯 그리며… .


△ 전남 순천 승주 금둔사 대웅전 옆에 핀 홍매화. 봄볕을 받아 싱그러운 모습과 그윽한 향기가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금둔사 홍매화-이 땅의 토종 꽃 가운데 해마다 앞장서 피어나 예쁜 자태와 향내에 있어서 뒤이어 피어나는 꽃들의 추종을 불허하는 물건이다. 그 홍매화는 지난 설날(12일) 아침 이 땅에 서광을 내리듯 홀연히 피어나 은은하고 감동적인 매향으로 세상을 적셔주고 있다. 지난 해 보다 일주일 가량 빠른 일이다.

금둔사 홍매화는 지난 83년 지허스님이 금둔사 아래 낙안읍성마을 민가에서 5년 자란 것을 얻어와 심은 것이다. 그 가운데 다섯 그루가 이제 딱 매화의 진가를 발휘하기에 알맞는 2미터~3미터의 키로 자라 꽃을 피우고 있다.

매화가 눈물겹도록 반가운 것은, 엄동설한이 채 끝나기 전에 우리에게 따스한 봄기운을 전해주면서 삶의 아름다움을 상기시켜주는 미덕 때문이다. 매화는 눈을 이고 피어나기도 하고 핀 뒤에 잔뜩 함박눈을 맞아도 움츠리는 법이 없어 `설중매'(雪中梅)라 불리기도 한다. 그러길래 기품을 중히 여겼던 우리 조상들은 해마다 이 무렵 산중 눈 속에 피는 매화를 찾아나서는 일을 지나칠 수 없는 연례행사로 여겼다. 매화를 그리고 매향시를 짓는 일은 조상들의 큰 즐거움이었다. 눈 색깔과 같은 백매화나 청매화도 눈을 이고 피어나는 모습이 가상하기 그지없을진대 더구나 홍매화가 백설 속에서 진분홍 입술과 노란 속눈썹을 내미는 자태란 제아무리 시흥이 출중한 글꾼일지라도 아예 시 짓기를 포기해 버렸을지 모른다. 설중 홍매화에 대해 읊은 구절이 눈에 띄지 않으니 말이다.

금둔사 홍매화는 겹꽃이다. 20~30개의 꽃잎이 겹으로 지름 1cm 안팎의 크기로 열린다. 꽃잎 안쪽에는 20~30개의 노란 꽃술이 돋아있다. 그리고 꽃의 개체들은 서로 2~3cm의 간격을 두고 줄기에 돌아가며 달린다. 매화의 향이나 매실의 약효는 홍매화, 청매화, 백매화 순이다. 따라서 금둔사 홍매화는 가장 먼저 피고 가장 깊고 그윽한 향기를 피워 주길래 겨울 끝자락 이땅에서 이만한 진객이 없다는 것이다.

△ 한국차와 매향의 만남. 선암사에서 나는 한국 전통차에 홍매화 한송이를 띄우면 여느 기품있는 미인도 따르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향기로움 그 자체이다. 녹차와 왜매로는 이룰 수 없는 품격이다.

금둔사 홍매화가 일찍 피는 것은 절이 남서향이어서 햇볕이 많이 들고 주위를 겹겹이 둘러싼 산자락이 찬 바람을 막아주기 때문이다. 금둔사에는 대웅전 왼쪽 계곡 옆 낮은 돌담가와 그 안쪽에 각각 한 그루씩의 홍매화가 있다. 또 대웅전 오른쪽 계단 위 샘 오른 쪽 지붕 가에 작은 홍매화나무가 한 그루 있고 대웅전 윗쪽 칠성각 앞에 두 그루의 홍매화나무가 있다. 이들은 지난 설날 아침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해 지난 주말까지 반 정도가 피었다. 매화는 보통 20일 가량 꽃을 피우기에 3월초까지 가면 금둔사 홍매화를 만날 수 있겠다.

금둔사 홍매화가 지면 산등성이를 하나 넘어 선암사 청매화 3월 중순에 꽃망울을 터뜨리고 또 그 뒤를 이어 3월 하순~4월 초 무렵 길 건너 구례 화엄사 흑매화가 이 땅의 진실한 매객(梅客)들을 맞는다. 선암매는 꽃술 나온 부분에 녹색 기운이 짙고 화엄사 흑매와는 꽃색깔이 흑장미처럼 진홍색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금둔사 홍매화, 선암사의 선암매, 화엄사의 흑매는 모두 600여 년 씩 묵은 이 땅의 진귀한 토종매의 원조이거나 그 자손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이땅에선 일제때 일본에서 들어온 개량종 `왜매'가 `토종매'로 위장하고 `매실 상업주의' 상혼을 퍼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풍 `매화축제'와 `매실건강 만능주의'의 선동은 선조들이 토종매와 더불어 이룩해 놓은 격조높은 `매향정신'을 밀어내고 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군자의 덕'에 관해 생각할 겨를마저 빼앗아가고 있다.

매화 보며 군자의 덕 배웠더니...

60평생을 토종 선암매와 더불어 온 선암사 주지 지허스님(061-754-5636)의 증언에 따르면, 매화는 겨울이 혹독할수록 향기를 짙게 내는 `군자의 덕'을 지녔다. 꽃봉오리가 얼어서 도저히 꽃이 안 되겠다 싶을 때 더욱 그윽한 향기를 내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또 가지를 잘라 줄수록 몸 전체의 균형을 아름답게 잡아간다. 이는 부처님이 6년 동안의 설산수도 뒤 도를 이룩한 것이나 정 다산처럼 선비가 귀양갈 것을 무릅쓰고 직언을 하여 훗날을 위한 업적을 남기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 덕성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매화의 덕을 기려 매화(열매가 아닌 꽃)와 그 향기를 가까이 하고 완상하는 것만으로 큰 줄거움으로 삼았다. 비료와 농약을 주는 대규모 매실농원의 매화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매화(매실)에 관한 후세인들의 인식은 크게 오염돼 있다. 오늘날엔 꽃이나 향기를 귀중히 여기는 게 아니라 매실의 양과 수익에만 초점을 맞추고 매실음식을 팔고 먹는 것으로 직성을 풀려고 한다. 이는 일본의 양산위주 개량매(왜매)가 이 땅에 들어와 저질러놓은 일제 `매실 상업주의'의 노림수이다. 왜매는 꽃과 열매가 가지에 빈 틈 없이 덕지덕지 달린다. 향기는 꽃 주위에서만 머물다 금방 사라진다. 이에 비해 우리 토종매는 꽃이 띄엄띄엄 달리고 열매도 작다. 향기는 동구밖까지 퍼진다. 요즘 광양 섬진강가 일대 대규모 매실농장들에 있는 것은 대부분 일본 개량종 왜매다.

우리 조상들은 매실로 오직 `짠지'(짠 김치) 하나만을 만들어 먹었다. 토종매실의 신 맛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따서 소금물에 한 번 담가 그늘에 말리고, 또 다시 그 소금물에 담가서 그늘에 말려 수분을 제거하며 매실성분을 농축시킨다. 쪼글쪼글해지면 항아리에 `매실-소엽(기관지에 좋은 한약재)-매실-소엽'의 순으로 켜켜이 넣고 소금물을 달여 붓는다. 푸른 빛이 도는 밤색으로 익어 나온다. 이것을 8월초에 담가 한 여름에 `봄 매화'를 그리며 밥 한 그릇에 한 두 알 찬으로 먹는다. 식사 뒤에도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리며 다니다가 매실냄새가 다 가실 즈음 마당 한 구석에 퉤 하고 뱉어버린다. 입맛 없는 시기의 별난 반찬이자 여름철 배탈을 막아주는 효과도 있었다.

일본의 우메보시는 우리의 매실짠지가 건너가 일본인들 입맛에 맞게 덜 짜고 달게 변형된 것이다. 일본인들은 습한 기후 때문에 장이 약하고 체질적으로 이질에 치명적이어서 예방효과를 고려해 매실을 좋아한다. 또 날 생선을 많이 먹는 일본인들의 식단에서 매실은 비린내를 없애주는 구실도 한다. 이렇게 풍토와 체질이 다른 일본인들이 매실의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개량한 것을 일제때 녹차(이것도 한국 전통차와는 종과 제다법이 다른 일본차이다)와 함께 들여와 이 땅에 퍼뜨렸다. 이런 일제 잔재 청산에 대한 각성없이 오늘날 일본 것과 흡사한 매화축제와 매실음식이 판을 치고 있다. 우려할만한 것은 체질이 다른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처럼 매실음료나 매실음식을 많이 먹어도 되느냐이다. 매실음료는 위장엔 일시적으로 좋을 수 있으나 결국은 신 맛이 위산과다를 일으키기 쉽다. 또 간의 기운이 실할(셀) 때 매실음식을 먹으면 간과 담(쓸개)에 다 해롭다고 민간에 전해온다. 한 마디로 매실은 한국인들의 체질에는 맞지 않고 서양인의 비만성 체질이나 이질에 약한 일본인들에게 효험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매실농사를 많이 짓는 집안에 위암환자나 간장질환 환자가 많이 난다는 속설도 있다.

금둔사 가는길

순천에서 낙안읍성을 거쳐 간다. 낙안읍성에서 위쪽(북쪽)으로 5km 지점에 금둔사가 있다. 금둔사에서 북쪽으로 상사호를 지나 11㎞ 지점에 선암사가 있다. 상사호 순환도로 중간에 호반호텔 `호텔 아젤리아'(061-754-60000)가 있다. 숙식은 낙안읍성이나 선암사 사하촌 식당가(민박가능)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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