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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초당 (전남 강진군) 등록일 : 2007-04-26 00:07

다산초당
위    치 :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귤동 
관 리 자 : 군청 문화관광과(061-430-3224)

개    요 : 강진만이 한눈에 굽어보이는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은 조선시대 후기 실학
           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선생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강진 귤동 뒷산 이름으로 이 기슭에 머물고 계시면서 자신의 호로 써 왔다.         
천일각과 강진만 전경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인 다산선생이 1801년 강진에 유배되어 18년여 동안 적거생활하시는 동안『목민심서』『경세유표』등 500여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하면서 조선시대 성리학의 공리 공론적이며 관념론적인 학풍을 실용적인 과학사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실사구시의 실학을 집대성한 곳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28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병조참지, 형조참의 등을 지냈으며 1801년 신유사옥으로 경상도 장기로 유배되 었다가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다시 강진으로 유배되었다. 처음에는 강진읍 동문밖 주막과 고성사의 보은산방, 제자 이학래 집 등에서 8년을 보낸 후 1808년 봄에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겨 해배되던 1818년 9월까지 10여년동안을 다산초당에서 생활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저술을 하였으며, 다산의 위대한 업적이 대부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다산초당에서 바라본 서암. 다산의 제자들이 기거하던 곳이다. 정약용이 학문 연구와 저술 활동을 한 동암
다산초당은 노후로 붕괴되었던 것을 다산유적보존회에서 1957년 복원하였고 그후 다산선생이 거처하였던 동암과 제자들의 유숙처였던 서암을 복원하였다.
           
           다산초당에는 이밖에도 다산선생의 재취가 남아있는 다산4경이 있다.
           다산선생 직접 병풍바위에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
           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 등 다산사경과 
           흑산도로 귀양간 둘째형 약전을 그리며 고향이 그리울때 심회를 달래던 장소에 
           세워진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연못 가운데 조그만 산처럼 쌓아놓은 연지석가산직접 수맥을 찾아 차를 끓이던 약수인 약천
「丁石」이라는 글자를 직접 새긴 정석바위차를 끓였던 반석인 다조
다산은 1818년 57세로 강진에서 유배가 풀려나 고향 마재로 돌아가 1836년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다산의 독백서를 보면 고향에 가서도 다산에서의 추억 을 잊지 못함을 알 수 있다.
정약용의 글씨를 집자(集字)하여 만든 현판김정희의 글씨로 된‘보정산방(寶丁山房) 집자 현판

도로안내 : 강진버스터미널 앞→해남 완도 방면 18번 국도→(2km)→강진군→학명리 추도 3거리 (좌회전)→도암 방면 2번 군도→(7km)→다산초당 현지교통 : 강진-망호,송학행 군내버스 이용, 12회 운행/20분 소요(첫차 06:30,막차 19:15) 현지숙박 : 다산촌 민박 (061)433-5555 다산슈퍼민박 432-0098 만덕슈퍼민박 434-7291 다산농원민박 432-0096 알뜰슈퍼민박 434-8487 송학횟집민박 433-8545 안내전화 : 강진군 다산사업소 (061)430-3345 강진군내버스터미널 (061)432-9618 고려청자 사업소 (061)430-3565 강진군 문화관광과 관광진흥계(061)430-3224
오솔길오솔길 안내판
정보제공자 : 527-800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108-1 강진군 문화관광과 (061-430-3224) 다산사업소(061-430-3345)
작성기준일 2006년 11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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