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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보내온 러브레터 - 담양 등록일 : 2007-10-25 10:56


늘 이맘때가 문제다. 긴팔은 덥고 반팔은 춥다. 낮에는 그늘이 그립지만, 아침·저녁으론 선뜻선뜻하다. 언제 쏟아질지 모를 빗방울도 골칫거리. 어디로 가야 할지 주말 나들이 길이 망설여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럴 때 아이디어 하나! 더워도 좋고 서늘해도 좋은 곳, 해나도 좋고 비 와도 좋은 곳으로 떠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자 같은 곳 말이다. 해나면 선들선들 바람 통해 시원하지, 비 오면 똑똑 처마 끝 낙숫물 소리 그윽하지, 양수겸장 아닌가. 전남 담양에는 옛 선비들의 자취 오롯한 정자가 60여 채나 남아 있다. 책 한 권 들고 훌쩍 정자 기행을 떠나 보자. 배롱나무꽃도 끝물이니 서두르는 게 좋겠다.

면앙정 - 바람이 찾아드는 집
면앙정은 조선 중기의 문신 송순의 정자다. 그의 가사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간 지어 내니……’에 나오는 초려(草廬)가 바로 면앙정이다. 하지만 말이 초려지,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와정(瓦亭·기와를 올린 정자)이다. 17세기부터 여러 차례 보수했고, 현재의 지붕은 1979년 올렸다고 한다.

면앙정이 자리 잡은 곳은 삼면이 절벽이다. 현판이 걸린 앞쪽으론 대숲 깊은 산이 뻗어 있고 뒤쪽으로 봉산 벌판이 드넓다. 신을 벗고 마루에 오른다. 모름지기 정자는 발 뻗고 앉아 봐야 제 맛을 아는 법이다. 현판 왼편 마루에 붙어 있는 송순의 ‘면앙정삼언가’ 편액이 눈에 들어온다.

“?有地仰有天(굽어보면 땅이요, 우러러보면 하늘이라)/ 亭其中興浩然(그 가운데 정자를 지으니 흥취가 호연하다)/ 招風月揖山川(바람과 달을 불러들이고 산천을 끌어들여)/ 扶藜杖送百年(청려장 지팡이 짚고 백년을 보내리)”

송순이 이 정자를 짓고 얼마나 흐뭇했을까 상상이 가는 대목이다. 중재실(中齋室)을 돌아 정자 뒤편에 자리를 잡았다. 봉산 벌판을 바라보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책을 꺼내 읽는다. 난간에 슬쩍 다리도 올려본다. 앞뒤로 활짝 열어놓은 중재실 문 사이로 뒷산 바람이 찾아든다.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기분, 이런 거구나 싶다.

명옥헌 - 천·지·인이 하나
정자 건축에도 철학이 있다. 정자 앞 연못은 사각형으로 판다. 땅의 상징이다. 그 연못 가운데 두는 섬은 동그랗다. 하늘의 의미다. 정자는 사람이다. 셋을 합해 하늘과 땅·사람(天地人)을 다 담는 것이다. 명옥헌이 딱 그대로다. 정자 앞에 동서 20m, 남북 40m 크기의 사각형 연못이 있고 가운데 원형의 섬이 있다.

명옥헌은 사철 언제 찾아도 좋지만 여름부터 초가을까지가 최고다. 연못 둘레에 빙 돌아가며 심어진 수십 그루의 배롱나무가 화사한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나무라 해서 붙은 이름. 보통 7월 초부터 9월 초까지가 절정이고, 추석을 전후해 꽃이 다 진다.

명옥헌 배롱나무는 키가 크고 가지가 무성해 꽃송이가 풍성하기로 유명하다. 꽃이 한창일 때는 연못 주위로 꽃분홍 구름이 내려앉은 듯하다. 소쇄원과 더불어 담양의 2대 원림(園林)으로 꼽히지만, 목백일홍이 한창일 땐 명옥헌을 한 수 위로 치기도 한다. 소쇄원보다 덜 붐비고 입장료도 없으니 금상첨화.

식영정 - 앞마루 넉넉한 정자
호남지방 정자만의 특징이 하나 있다. 보통 한쪽 구석에 있게 마련인 온돌방이 정자 한가운데 있는 것이다. 소위 중재실 구조. 호남 지역을 빼고 이런 정자를 볼 수 있는 곳은 경상도 서쪽 지리산 인근과 충청도 남쪽 지방 정도다. 담양의 정자들도 호남 정자의 양식을 그대로 잇고 있다. 면앙정·송강정·명옥헌 등 이름난 정자 대부분이 그렇다. 식영정만이 예외다.

식영정은 온돌방이 뒤로 붙어 있고 정면과 측면만 마루를 둘렀다. 특히 앞마루가 널찍하다. 온돌방과 앞마루가 거의 반반이다. 방문도 여닫이가 아니라 문 전체가 통째로 위로 들리는 들문이다. 이 때문에 방에 들어앉으면 정면이 훤히 터진 느낌이 든다.

왜 이런 구조로 정자를 만들었을까? 모든 정자 자리가 그렇긴 하지만 식영정 자리는 특히 천하명당이다. 주변 풍광이 ‘그림자도 쉬어갈 만큼(息影)’ 아름답다. 뒤는 성산이요, 앞은 키 큰 소나무에 가리긴 했지만 광주호·창계천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다. 뉘엿뉘엿 해 질 무렵 식영정에 오르면 광주호에 반사된 빛이 정자 오른쪽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정면을 강조한 구조는 이런 절경을 더 잘 감상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답은 정자를 지은 서하당 김성원만이 알 일이다.

김성원은 송강 정철과 인근 환벽당에서 동문 수학한 사이. 송강이 “어떤 길손이 성산에 머물면서/ 서하당 식영정 주인아 내 말 듣소……”로 시작되는 성산별곡을 지은 곳이 바로 이곳 식영정이다.

■교통편=호남고속도로 담양IC로 나와 고서 방면으로 내려오면 면앙정→송강정→명옥헌→식영정→한국가사문학관→소쇄원의 순으로 둘러볼 수 있다. 환벽당과 취가정은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에 속하지만 식영정에서 다리 하나 건너면 바로다.

■버스투어=담양군청(www.damyang.go.kr)에서는 명옥헌·식영정·소쇄원과 관방제림·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등 담양의 다른 명소를 함께 둘러보는 일일 투어버스를 운영 중이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광주역 광장에서 출발. 요금은 중식과 입장료를 포함해 1인당 1만7000원이다. 061-380-3154.

■맛집=식영정 인근에 있는 성산산장에 가면 광주호에서 잡은 붕어로 만든 찜을 맛볼 수 있다. 그리 맵지 않으며 민물 생선 특유의 비린내나 흙냄새가 나지 않는다. 우거지도 넉넉하게 깔린다. 네 식구가 먹기 적당한 중(中)자가 2만5000원. 061-383-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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