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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너는 왜 아픈 곳에서 피어나니? 등록일 : 2008-04-01 08:43

▲ 진달래 처절한 아픔을 표현하는 진달래. 거친 곳에 피어날 수록 더울 아름답게 보인다.

▲ 산길에 핀 진달래 봄비를 잔뜩 머금고 피어있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하늘이 촉촉하다. 다음주에 진달래 축제를 한다는 영취산을 올라보고 싶다. 삼일동사무소 뒤로 등산로가 있다고 하여 무작정 삼일동사무소로 찾아갔다. 휴일인데도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이 근처에서 영취산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고 하던데요?” 동사무소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밖에까지 나와서는 길을 알려준다. 정식 등산로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올라 다니던 산길이라고 한다.

▲ 등산 리본 '자연을 살립시다'라고 쓴 빨간 리본 뒤로 공장의 하얀 연기들을 뱉어내고 있다.
동사무소와 파출소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을 보고 올라가니 교회가 나온다. 아침 예배를 참석하기 위해 신도들이 들어서고 있다. 맞은편 산길로 빨간 리본이 눈길을 끈다. 복숭아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산길로 들어서는 길은 밭을 따라 올라간다. 비에 젖어 미끄러진다. 겨울을 지낸 노란 배추꽃이 풋풋한 봄을 노래하고 있다.

공단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

물기를 잔득 머금은 소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송전탑이 높게 서 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서니 오리나무 꽃들이 애벌레처럼 몸을 늘이고서 땅으로 툭툭 떨어진다. 오르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하얀 연기를 연신 뿜어내고 있는 공장들이 커다란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 안에 갇힌 채로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중흥마을이다.

여수 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될 무렵 작은 마을이었다. 인근 지역에서 땅을 내어준 이주민들이 가까운 곳으로 찾아들었고 점차 커다란 마을이 되었다. 그리고 삼십년이 지난 지금은 화학공장에서 나온 공해에 찌들었다. 다른 지역보다 질병 발병율이 높고 공단 악취로 살기 힘들어지면서 끊임없는 투쟁 끝에 이주결정을 받아냈다. 마을은 이주가 확정된 표시로 담장마다 빨간 페인트 숫자를 하나씩 받았다.

▲ 공단에 갇힌 중흥동 공단과 함께 오랜 시간을 살아오다 최근에는 이별을 준비중이다.
▲ 동네 풍경 담장마다 빨간 번호를 달고서 철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산으로 점차 올라가면서 코끝을 시큼하게 자극한다. 공단에서 배출하는 악취다. 암모니아(?) 냄새가 숲속을 지나 나의 코 속으로 들어온다. 역겹다. 몇 십 년 동안 이런 냄새와 함께 생활한 마을 사람들이 철인 같이 느껴진다.

산불이 난 자리에 피어난 진달래꽃

길 중간 중간에 진달래꽃이 피었다. 만개한 진달래꽃은 봄비에 고개를 숙이고서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첫 번째로 만나는 봉우리 끝에는 나무들이 뼈만 남았다. 다가갈수록 스산한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산불에 생기를 잃었는데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그 아래로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고 있다. ‘너는 왜 산이 아픈 곳에 피어나니? 너가 울지 않아도 산이 아픈 줄 아는데.’

▲ 산불 난 곳에 핀 진달래 아름다움과 함께 아픔이 배어나온다.
▲ 산불난 곳에 붉게 피어난 진달래와 공장에서 내어 놓은 하얀 연기가 대비 된다.
진달래 군락지는 대부분 산불이나 공단인근에 훼손된 지역에서 피어난다. 산이 파괴된 곳에서 이른 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김소월은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진달래꽃을 보면 즐거움 보다는 아픔이 먼저 떠올려진다.

산길은 다시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의 직선으로 이어진 산길은 굽이쳐 넘어간다.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산길에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마주치는 사람이 없다. 홀로 산길을 걸어가는 걸음은 자꾸만 바빠진다. 더 이상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연신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는 공장들이 얄미워 보인다.

또 한 봉우리 위에 섰다. 아래로 정유공장이 내려다보인다. 너머로 광양제철소가 보이고 광양항이 어우러져 있다. 이제는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석유화학제품, 철제품 등의 원료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이곳에 모여 있다. 사람들은 공장이 있어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공해물질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 진달래 뒤로 정유공장이 보인다.
영취산 진달래는 아직 절정이 아니다
진례산으로 오르는 마지막 능선길. 진달래는 아직 꽃들을 피우지 못하고 있다. 산길은 큰 나무들이 줄어들고 주변을 훤히 드러내 놓고 있다. 산정 가까이에서니 아래로 도솔암이 내려보인다. 산정으로부터 왁자지껄한 즐거움이 넘쳐난다. 서둘러 꽃구경을 온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다.

▲ 영취산 진달래 군락지 풍경 여기저기서 진달래가 피어난다.

너무 이른가. 정상 양쪽으로 보이는 진달래 군락지에 붉은 색은 묻어나지 않는다. 봉우재 쪽으로 내려섰다. 내내 감추고 있던 햇살이 따스하게 부서진다. 나무계단을 통통거리며 내려온다. 봉우재에는 아이스크림이며, 뻥튀기를 팔고 있다. 벌써 축제분위기. 많은 사람들이 들뜬 기분으로 한두 개씩 꽃망울을 터뜨린 진달래를 즐기고 있다.

봄으로 깨어나는 계곡을 따라

흥국사로 내려서니 계곡으로 물소리가 힘차게 들린다. 바위틈을 돌아서 힘차게 부서지며 흘러간다. 배낭을 벗고 물가에 앉아 손을 씻는다. 손끝으로 봄이 스며들어 온다. 계곡을 사이에 둔 나무들은 맑은 초록색으로 새순을 달고 있다. 싱그러움이 넘쳐난다. 재잘거리는 봄의 웃음소리로 들려온다.
산길은 봄을 주체하지 못한 나무들이 한꺼번에 내어놓은 물들로 물길을 만들었다. 철벅철벅 물을 튀기며 걸어도 기분이 좋다. 다시 시작되는 진달래꽃들과 웃음을 나눈다. 봄을 즐기려고 물병 하나만 가볍게 준비하고서 올라가는 상춘객과 가벼운 인사를 나눈다. “안녕하세요?” 그저 모든 게 즐겁기만 하다.
▲ 내려오는 길 흥국사로 내려오는 길은 봄이 넘쳐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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