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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너는 왜 아픈 곳에서 피어나니? 등록일 : 2008-04-0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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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단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
물기를 잔득 머금은 소나무 숲길로 들어선다. 송전탑이 높게 서 있는 산길을 따라 올라서니 오리나무 꽃들이 애벌레처럼 몸을 늘이고서 땅으로 툭툭 떨어진다. 오르는 길에 뒤를 돌아보니 하얀 연기를 연신 뿜어내고 있는 공장들이 커다란 울타리를 만들었다. 그 안에 갇힌 채로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중흥마을이다.
여수 석유화학단지가 조성될 무렵 작은 마을이었다. 인근 지역에서 땅을 내어준 이주민들이 가까운 곳으로 찾아들었고 점차 커다란 마을이 되었다. 그리고 삼십년이 지난 지금은 화학공장에서 나온 공해에 찌들었다. 다른 지역보다 질병 발병율이 높고 공단 악취로 살기 힘들어지면서 끊임없는 투쟁 끝에 이주결정을 받아냈다. 마을은 이주가 확정된 표시로 담장마다 빨간 페인트 숫자를 하나씩 받았다.
산으로 점차 올라가면서 코끝을 시큼하게 자극한다. 공단에서 배출하는 악취다. 암모니아(?) 냄새가 숲속을 지나 나의 코 속으로 들어온다. 역겹다. 몇 십 년 동안 이런 냄새와 함께 생활한 마을 사람들이 철인 같이 느껴진다.
산불이 난 자리에 피어난 진달래꽃
길 중간 중간에 진달래꽃이 피었다. 만개한 진달래꽃은 봄비에 고개를 숙이고서 먼 길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첫 번째로 만나는 봉우리 끝에는 나무들이 뼈만 남았다. 다가갈수록 스산한 분위기가 묻어나온다. 산불에 생기를 잃었는데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 그 아래로 진달래가 붉게 피어나고 있다. ‘너는 왜 산이 아픈 곳에 피어나니? 너가 울지 않아도 산이 아픈 줄 아는데.’
산길은 다시 정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거의 직선으로 이어진 산길은 굽이쳐 넘어간다. 비가 와서인지 아니면 산길에 인적이 드물어서인지 마주치는 사람이 없다. 홀로 산길을 걸어가는 걸음은 자꾸만 바빠진다. 더 이상 코를 자극하는 냄새는 나지 않는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연신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는 공장들이 얄미워 보인다.
또 한 봉우리 위에 섰다. 아래로 정유공장이 내려다보인다. 너머로 광양제철소가 보이고 광양항이 어우러져 있다. 이제는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되는 석유화학제품, 철제품 등의 원료를 만들어내는 공장이 이곳에 모여 있다. 사람들은 공장이 있어 지역경제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공해물질을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도 과연 그렇게 생각할까?
너무 이른가. 정상 양쪽으로 보이는 진달래 군락지에 붉은 색은 묻어나지 않는다. 봉우재 쪽으로 내려섰다. 내내 감추고 있던 햇살이 따스하게 부서진다. 나무계단을 통통거리며 내려온다. 봉우재에는 아이스크림이며, 뻥튀기를 팔고 있다. 벌써 축제분위기. 많은 사람들이 들뜬 기분으로 한두 개씩 꽃망울을 터뜨린 진달래를 즐기고 있다.
봄으로 깨어나는 계곡을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