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MBC

검색

커뮤니티 추천여행지

진남관 등록일 : 2008-05-21 16:26



1479년 여수에 전라좌도 수군 절도사영 설치. 왜놈들 막는 전략 요충지.

“아빠, 왜 이 동네 이름이 여수麗水야?”

왕건이 이 고을을 찾았다.

“애들아 우째 여인들이 이리 이쁘냐? 전부 얼짱에 몸짱이네.”

“물이 좋아서 그렇사옵니다.”

“이 마을 이름이 뭔데?”

“고을의 사투리 고으리이옵니다.”

“앞으로는 여수라고 불러라. 아름다운 물의 마을.”

“아빠, 고을은 뭐야?”

“군부대가 있는 마을.”

1593년 여수에 삼도 수군 통제영이 설치된다. 경상, 전라, 충청을 아우르는 해군 총사령부. 수군절도사는 진해루에 앉아 왜군들 동태를 살폈다. 수군 절도사는 지금으로 말하면 해군 3성 장군. 별 별 별. 1597년 정유재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4만 대군을 끌고 쳐들어온다. 당시 여수 인구는 5천명. 군병력은 1천명. 두고 보자. 진해루 전소. 수군통제사 원균 전사. 투옥중인 이순신 긴급 투입. 왜군 전멸.

1599년 이시언(1545-1628)이 전라좌수사로 여수를 찾았다. 조선은 해군 총사령관인 수군 통제사 아래 전라도와 경상도에 좌우 지역사령관을 두어 왜군의 침략에 대응. 전라도는 여수에 좌수영, 해남에 우수영. 경상도는 부산에 좌수영, 충무에 우수영을 두었다. 하도 싸우다 보니 당시 여수는 전라도 최고의 센 도시가 된다. 총알만 날아다니는 게 아니고 문화도 날아다니니.

“아빠, 이시언이 누구야? 첨 듣는 이름인데.”

본관 전주. 왕족. 1576년 32살에 정시 문과 갑과로 합격. 전국에서 3등 안에 든 수재. 1589년 평단군수를 끝으로 사직. 좀 쉬자. 그게 되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재등용. 1601년 청백리 녹선. 조선 6백년사에 219명에 불과한 최고의 영예를 안은 선비. 학덕이 높으면서 재물을 탐하지 않아야 오를 수 있는. 난 청백리 얘기만 나오면 주눅이 든다. 인세 언제 들어오지. 1627년 정묘호란. 이번엔 중국군. 조선의 제 16대 왕 인조 모시고 강화도행. 거기서 간다. 너무 힘들어. 시언 선상님 수고하셨습니다. 오늘도 뉴스는 돈 스캔들로 와글와글. 흑백리들. 까마귀들.


한양에서 여수 가는 길은 천릿길. 한 달 내내 말 타고 사령부에 도착하니 초가집. 아이고, 히프 아파라. 임지로 가다가 도중에 해임되어 한양으로 복귀한 벼슬아치도 부지기수 일 정도로 먼 길.

“어라 진해루 어디 갔냐?‘

“왜놈들이 불 질러서리.”

다시 지어라. 수석 건축가는 이시언. 전면으로 15개, 측면으로 5개의 기둥을 죽 세운다. 75칸. 심플. 원래 센 건축은 단순한 법.

“애들아 그럼 기둥이 전부 몇 개냐?”

“68개이옵니다.”

“그럼 됐네. 지붕 올려라.”

“벽은 안 세웁니까.”

“시끄러 인마. 바람 잘 통하니 좀 좋냐. 바다도 잘 보이고.”

240평의 장대한 공간. 끝도 없고 시작도 없는. 난 50년 만에 첨으로 이 진남관을 찾아 넋을 놨다. 머야, 이거. 음. 너무 센 놈이 많아. 240평이 2400평으로 보이잖아. 기둥과 기둥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산과 바다가 하나가 되잖아. 1716년 전소.

1716년 이제면(1652-1718)이 전라좌수사로 여수를 찾았다. 어라, 또 초가집이네. 내 이것들을.

“아빠, 이제면도 첨 듣는 이름인데?”

본관 전의. 1681년 무과 급제. 절충장군. 정 3품 당상관. 지금으로 말하면 3성 장군.

“아빠, 절충折衝이 먼 뜻이야?”

“적의 창끝을 꺾고 막는다.”

진남관 복원. 현판을 직접 쓴다. 鎭南館. ‘남쪽의 왜구를 진압해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집.’

계좌정향癸坐丁向. 계방을 등지고 앉는다.

“아빠, 계방이 머야?”

“이십사방위의 하나. 정북에서 동으로 15도 되는 방위를 중심으로 한 15도 각도 안의 방향.”

전쟁도 끝나고 이제 진남관은 군사령부에서 객사로 변신. 궐례. 매일 북향사배. 임금님 잘 주무셨지라우. 산 사람에겐 한 번, 죽은 사람에겐 두 번, 임금에겐 네 번 하는 거 아시죠.


저 멀리 1984년 완공된 돌산대교가 보인다. 남산동과 돌산읍을 잇는 연륙교(連陸橋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 파도 넘실넘실. 구름도 떠다니고. 이제 진남관은 우주가 된다. 없는 게 없는. 있는 것도 없고.

1972년 여수공항 들어서며 도약을 꿈꾸지만 하세월. 인구 30만 명. 이제 뭐 먹고 살지. 한때는 천하를 호령하던 여수. 왜놈들 또 안 쳐들어 오나. 회한. 이제 흙먼지만 날린다. 그럼 여수를 살리는 방법은.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 진남관을 전 세계에 알리는 거다. 너네 이런 거 있어. 딸과 함께 진남관을 찾아 난 무릎 꿇었지만 방문객 전무. 불 지를까봐 할아버지 세분이 지키고 있는 슬픈 곳.

국보 제 304호. 나이 294살. 온몸이 아파 시름시름 않고 있는 진남관. 나도 아프고. 물 좋고 인심 좋고 아가씨도 이쁘고. 진남관은 죽이고. 한번 들 가보시죠. 돈 따라 다니지 말고.

“화영이 엄마.”

“예.”

“인세 들어 왔냐.”

“아니요.”

“내 이것들을.”

여러분의 의견을 남겨주세요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해 주세요.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