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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바늘 등록일 : 2009-11-11 17:08

루브르와 대영박물관을 채우고 있는 고대 문명의 문화 유산들, 그 화려한 모습 뒤에 숨은 박물관의 탐욕과 약소국의 비통한 역사를 보라!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은 문화유산과 관련한 서적이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와 책 중간중간의 문화유산 관련 사진들을 보고 이 책이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처럼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끼며 읽을법한 내용의 글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큰 오산이 될 듯 싶다.

'세계 문화유산 약탈사'라는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분명 문화 유산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문화 유산 그 자체보다도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자행되어 왔던 문화재 약탈, 그리고 그 속에서 살펴 볼 수 있는 강대국들의 탐욕과 위선을 파헤침으로써 문화섹션이 아닌 정치ㆍ외교섹션에 어울린다고 생각된다.

실제로 지은이 김경임은 문화외교분야의 전문 외교관으로서, 프랑스와의 외규장각 도서 반환 협상 당시 자문위원으로 활동했기도 했다.

이 책이 꽤나 난해할 수도 있었던 주제를 쉽게 풀어내었던 까닭은 아마도 구성의 힘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ㆍ식민통치 하에서 저질러진 강대국들의 문화재 약탈상과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 오늘날 피해국의 정당한 문화재 반환 요구에 대한 유명 서양박물관의 변명 등을 30개의 문화 유산을 통하여 30개의 이야기로 만들어 내었다. 이렇게 문화 유산 하나하나에 얽힌 이야기와 그것에 대한 약탈, 그리고 현재의 상황 등을 되짚어 나가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글쓴이의 생각이 읽는 이에게 보다 효율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음을 느꼈다.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은 바로 '오벨리스크'를 의미한다.

오벨리스크라는 명칭이 낯선 사람들조차도 아마 그 형상에는 친숙할 듯 싶다. 그 이유는 파리 콩코드 광장을 비롯하여 뉴욕 센트럴 파크, 런던 템스 강변 등 유럽의 주요 관광지에 뾰족하게 세워진 탑은 누가 보기에도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이 오벨리스크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을테지만 정작 이 문화 유산이 이집트 고대 문명의 상징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듯 싶다. 물론 서양문명의 집결지인 파리 한복판에 쌩뚱맞게 이집트의 상징이 서 있는 이유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앞에서 환한 웃음의 기념 사진을 찍는 것도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그앞에서 환한 미소의 사진을 남기신 분들을 욕보이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한복=일본옷', '독도=일본영토'와 같은 표기를 외국에서 접할 때 불쾌감을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 문화재에 대한 우리의 이해 역시 그만큼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짧은 생각일 뿐이다.

문화재냐 예술품이냐

문화재와 예술품의 차이는 무엇일까?

루브르 박물관이나 대영박물관 등은 '문화 유산은 인류 공동의 예술품이기 때문이기에 보관과 관리가 어려운 개도국보다는 영국, 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에서 전시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저자 김경임은 이러한 박물관들의 탐욕을 논리적으로 정확하게 짚어낸다.

박물관은 말 그대로 문화재를 보관하는 곳이다. 그렇기에 만약 박물관이 예술품을 보관하는 곳이라면 그것은 박물관이라는 명칭보다는 미술관이라는 명칭이 더 정확할런지도 모른다. 물론 수백, 수천 년된 문화 유산이 예술적이지 못하다는 말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것들이 예술적 가치를 얼마나 지녔던 간에 그것들은 한 특정 국가와 특정 문화의 시간과 공간적 특수성이 깃든 민족적 자산이라는 점이다.

그렇기에 때문에 오벨리스크, 베닌 브론즈, 크니도스 비너스, 함무라비법전 비문 등이 인류 공동의 문화재이기에 런던에 혹은 파리에 보관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말에서 느껴지는 탐욕과 위선은 그 뻔히 보이는 속셈에 속을 거북하게 만든다.

문화유산

문화재는 남에게 자랑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와 문화적 필요성에서 탄생된 것이라는, 우리의 문화재는 우리의 주권을 상징한다는 저자의 말은 약탈 문화재의 반환과 관련하여 진정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 자신을 부끄럽게 만드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 세계에 '일본해ㆍ다께시마'로 잘못 알려진 '동해ㆍ독도'를 바로잡는 일도 중요하고 간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도 중요할 터이지만 지난 암울했던 시절 우리도 모르게 약탈 당하였던 우리의 소중한 민족 유산을 되찾는 일도 그 모든 것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다.

저자가 말했듯 문화유산은 그것이 태어난 땅, 그것을 만든 민족의 품 안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도 서양문화와 동양문화가 뒤섞인 백화점식 박물관의 앞에서

그 휘황찬란한 유물들의 피상에 눈이 멀어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약탈 문화재의 슬픈 운명만큼이나 슬픈 일인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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